(시론)대통령의 자리
입력 : 2023-03-07 06:00:00 수정 : 2023-03-07 06:00:00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람이 어떤 직위에 있게 되면 그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변하게 마련이라는 말이다. 또 이 말은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자신이 앉은 자리에 맞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을테다.
 
군대 문화를 경험해 본 사람은 누구나 안다. 나이, 사회적 신분, 배움의 정도와 상관없이, 이등병은 이등병의 미숙함을 보이고, 병장은 병장으로서의 의젓함을 보인다는 것을. 자리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자신이 앉은 자리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현재의 자신을 어떤 존재로 인식하는지 궁금하다. 또 지금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리에 윤 대통령이 단단히 앉아 있는지 실로 의문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월 4일 전직 검사를 국민연금의 상근전문위원으로 임명했다. 며칠 전에는, 후배 검사인 정순신 변호사를 경찰청 최고위직 중 하나인 국가수사본부장에 앉혔다가 아무런 설명없이 사퇴시켰다. 지난 해 6월에는 금융감독원장으로 현직 부장검사이던 이복현을 임명했다. 
 
법무부 장관·차관에 후배 검사를 앉힌 것은 물론이다.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 국무총리 비서실장, 법제처장, 대통령실 비서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 등 요직에 친구 검사 또는 후배 검사를 임명했다. 이러다가 대법원장도 전직 검사를 임명할 태세다.
 
이른바 ‘검사 전성시대’이다. 누구는 ‘검찰공화국’ 또는 ‘검찰왕국’이라고 부른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혹시라도 윤 대통령은 자신을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라, 검찰총장 이상의 초월적 힘을 가진 힘센 검사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라도 윤 대통령은 자신을 검왕(檢王)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권력의 사유화’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권력의 자리에 앉은 사람이, 그 자리의 역할을 마음대로 바꿀 때 벌어진다. 대통령은 대통령의 역할을 해야지, 검통령(檢統領)의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대통령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검사, 힘센 검사, 대통령직에 있는 우두머리 검사를 보고 있을 뿐이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대통령으로 인식되기 보다, 검찰총장 이상의 초월적 힘을 가진 검사로 인식되기를 바라는 것 같다.
 
대통령이 스스로 검왕의 역할로 자신을 한정해서 대통령의 자리를 비우게 되면, 누군가는 반드시 대통령의 역할을 한다. 기능적 의미의 대통령이다. 그는 대통령의 자리로 스며들어 대통령의 역할을 한다. 이미 국민들은 대통령의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언론보도에 누가 많이 나오고 누가 더 많은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는지 살펴보면 그가 누구인지 금방 안다.
 
논어를 보면,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가 무엇인지’를 묻는 장면이 나온다. 그 때,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齊景公問政於孔子, 孔子對曰). “(정치란)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자녀는 자녀다운 것입니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
 
그렇다. 대통령이 대통령의 자리에서 대통령다운 역할을 하면 된다. 그것이 정치다. 대통령은 마땅히 대통령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 아빠는 아빠의 자리에, 엄마는 엄마의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처럼, 대통령은 대통령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 자리에 있으라고, 그 자리를 단단히 지키라고, 국민들이 투표한 것이다. 과거 앉았던 자리와 지금 앉아 있는 자리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대통령의 자리에 제대로 앉아 있어야 한다.
 
과거 대통령을 높이는 말로 ‘각하’라는 말을 썼다. 윤석열 대통령께서 대통령의 자리에 단단히 앉아 계시고 대통령의 역할을 하시면 좋겠다. 그러면 나는 그를 ‘각하’라고 부를 것이다. 아니, ‘폐하’라는 호칭을 원하신다면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 호칭이 무슨 상관이 있으랴.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대통령 자리를 비우지 않고 대통령 자리에 제대로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곽상언 더불어민주당 종로구지역위원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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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순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