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동교동으로 옮겨 재개업한 '을지OB베어'…"유산가치 이어갈 것"
최수영 사장 "손님들이 소문내줘…벅차다"
강호신 사장 "애간장 끊어지는 고통 겪었지만 치열히 지킬 것"
입력 : 2023-03-29 22:00:41 수정 : 2023-03-30 15:59:45
[뉴스토마토 변소인 기자] 서울 동교동에 위치한 경의선책거리를 따라 걸으니 만개한 벚꽃 사이로 익숙한 이름의 간판이 눈에 띕니다. 진짜 '을지OB베어'입니다. 비닐 안을 들여다보니 을지로에 있던 그 노가리골목의 터줏대감인 을지OB베어의 옛간판이 맞습니다. 오리지널 을지OB베어가 이곳에 문을 열게 된 겁니다.
 
을지로 노가리골목에 있던 을지OB베어는 지난 23일 동교동에서 다시 가게 문을 열었습니다. 강제 철거된 지 약 11개월 만입니다. 옛 간판도, '백년가게' 현판도 그대로입니다. 다만 원래의 자리에서 6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겨 거의 1년 만에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동교동에 위치한 을지OB베어 바깥 간판에는 을지OB베어에 '와우'라는 단어가 붙었습니다. 다시 을지로에 을지OB베어 가게를 열겠다는 최수영 을지OB베어 사장의 의지가 담긴 것이라 합니다.
 
'을지OB베어공동대책위원회'는 29일 저녁 재개업 예배 및 기념식을 진행했습니다. 예배를 시작하기도 전에 약 70명이 가게를 가득 메웠습니다. 기뻐서 미소를 감추지 못하는 손님과 활동가가 있는가하면 벅찬 마음이라며 눈물을 꾸역꾸역 삼키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날 최 사장은 가게를 찾은 모든 이들에게 무료로 맥주 한 잔과 노가리를 나눴습니다. 재개업까지 관심을 갖고 도와준 이들에 대한 감사함의 표현입니다.
 
최수영 을지OB베어 사장이 29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서 열린 을지OB베어 재개업 예배 및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진=변소인 기자)
 
중소벤처기업부가 지정한 백년가게이기도 한 을지OB베어는 지난해 4월 임대인이 제기한 명도소송에서 패소하면서 강제 철거됐습니다. 을지로에서 처음 문을 연 생맥줏집이자 42년간 3대가 몸담은 가게였지만 자본력과 법 앞에서 힘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을지OB베어 관계자와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옥바라지선교센터 등이 모여 을지OB베어 가게가 있던 자리에서 문화제를 열었습니다. 지난해 12월부터는 중구청 앞으로 자리를 옮겨 문화제를 이어왔습니다.
 
최 사장은 을지OB베어가 철거된 후 1년을 넘기기 전, 잊히기 전에 다시 가게를 열고 싶었다고 합니다. 이곳 동교동에 재개업을 하게 된 연유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을지로3가에 가게를 열고 싶다는 최 사장은 연신 을지로를 언급했습니다. 최 사장이 인사말에 나서자 가게를 찾은 이들은 큰 소리로 최 사장을 연호하며 환호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최 사장은 "을지OB베어 간판이 걸리던 날 굉장히 벅찬 일들이 생겼다. 아무런 정보 없이 지나치다가 설치돼 있는 간판만 보고 들어와서 저희들을 확인하신 손님이 한 두 분이 아니었다. 여러 손님들이 가게에 와서 친구들과 사진을 공유하고 재개업에 대한 소문을 내주셨다"며 "그래서 두렵기보다는 더 많은 가능성을 봤다. 기존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 분들, 새로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분들과 함께 100년이 되는 가치와 추억을 다시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습니다.
 
29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위치한 을지OB베어와우. (사진=변소인 기자)
 
이어 "동교동에 재오픈을 하지만 을지로3가에 계속 가게(자리)를 찾고 있다. 지금 이곳보다 더 많이 신경을 써서 찾고 있다"며 "한동안 저희 가족들은 동교동 가게에 몰두를 하고 열심히 할 것이다. 경쟁논리로 돈만 찾기보다는 꾸준히 연결되는 유산적 가치를 지키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강호신 을지OB베어 사장은 "지금 절반의 시작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간판이 달린 후부터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만약 성공을 못하면 을지로 노가리골목 덕분에 잘됐던 거였다는 얘기가 나올 것이고, 여기서 만약 성공한다면 그것은 저희 아버지가 늘 말씀하셨던 여러분과의 신뢰에서 이기는 것"이라고 운을 뗐습니다.
 
29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위치한 을지OB베어와우 내부. (사진=변소인 기자)
 
그러면서 강 사장은 "지금까지 애간장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을 겪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누군가 저를 이끌고 밀어주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며 "제가 가장 존경했던 아버지가 지난 겨울 하늘나라로 가시면서 자신이 하셨던 것처럼 저도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었으면 한다고 하시면서 생을 마감하셨다. 행복한 공간이 되도록 치열하게 을지OB베어를 지키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재개업 예배에서 강 사장은 이따금씩 눈물을 훔치곤 했습니다.
 
그러나 을지OB베어의 동교동 재개업이 숙제를 해결해 준 것은 아닙니다. 우선 을지로에 마땅한 가게를 다시 찾아야 합니다. 수많은 송사도 남아있습니다. 2021년 용역 100여 명을 동원한 강제집행 시도 당시의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와 지난해 4월 강제집행 당시 부동산강제집행효용침해 혐의, 강제집행 이후 을지로노가리골목에서 7개월여 간 진행한 문화제에 대한 영업방해금지가처분 등을 해결해야 합니다.
 
29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위치한 을지OB베어와우에 옛 을지OB베어 간판이 달려있다. (사진=변소인 기자)
 
이를 위해 을지OB베어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22일부터 투쟁벌금 모금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또한 오는 4월5일로 잡힌 특수공무집행방해에 대한 공판과 관련해 시민을 대상으로 자필 탄원서와 온라인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을지OB베어가 다시 손님과 만날 수 있게는 됐지만, 여러 과제들을 안고 있기에 재개업의 반가움도 잠시, 가게를 나오는 발걸음은 어느새 다시 무거워졌습니다.
 
변소인 기자 bylin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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