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아동' 줄일 출생통보제에 '고삐'…보호출산제 우려는 '여전'
출생 미신고 없게 병원이 통보 의무…국회 처리 가닥
"생명권 먼저" vs "양육 포기 부추겨"…보호출산제는 대립
복지부 "출생 미신고 아동 전수조사 조속 완료할 것"
입력 : 2023-06-29 05:00:00 수정 : 2023-06-29 05:00:00
 
 
[뉴스토마토 주혜린 기자] 출생 미신고의 영아 살해·유기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자, 지난 십 수 년간 답보상태였던 '출생통보제' 도입 움직임에 속도가 붙고 있습니다. 하지만 산모의 '병원 밖 출산'을 막기 위한 '보호출산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찬반 논란이 적지 않습니다.
 
영아의 '생명권'을 우선해야한다는 입장에는 공감대가 크지만 양육 포기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습니다. 보호출산제가 아닌 보편적 출생통보제로 아동의 뿌리, 정체성 권리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정부와 여당은 28일 부모의 출생신고가 없어도 의료기관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출생 통보를 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 병행 도입을 위한 입법 조치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출생통보제는 부모가 고의로 출생신고를 누락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 의료기관이 출생 정보를 직접 지자체에 통보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당정은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즉시 제도가 시행될 수 있도록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의료기관과 심평원을 통한 출생통보장치도 마련합니다.
 
의료기관·심평원에 의해 출생이 통보됐음에도 부모에 의해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에 대해서는 일정한 절차를 거쳐 정부가 보호하기로 했습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료기관과 심평원이 출생을 통보하면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부모에 의한) 출생신고 여부를 확인하고, 출생신고가 안 되면 최고한 후 필요시에는 지자체가 출생신고를 하게 된다"며 "그 이후부터는 정부의 사회보장시스템 내에서 보호받게 된다"고 밝혔습니다.
 
현행 우리나라에서 출생신고는 오직 부모에 달렸습니다.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도 형사 책임에서 자유롭고, 5만원의 과태료만 내면 됩니다. 이런 탓에 제도권 밖에서 소외·방치되고 있는 영유아들이 존재하지만, 시스템상 알아차리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출생통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제기됐습니다. 지난 18대 국회부터 발의돼 왔던 출생통보제가 번번이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은 의료계의 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의료계는 신생아의 분만 진료비를 청구하는 과정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출생 사실을 통보하고 있다며, 지자체 통보 책임까지 이중으로 의료기관에 맡기는 건 행정 편의주의라고 반발해왔습니다.
 
그러나 여야는 출생통보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데 동의하고 빠른 도입에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전해집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이날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출생통보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논의했습니다. 법안이 통과되면 29일 법사위 전체회의를 거쳐 30일 본회의에서 처리될 것으로 보입니다.
 
당정은 28일 부모의 출생신고가 없어도 의료기관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출생 통보를 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 병행 도입을 위한 입법 조치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사진은 의류수거함에 붙은 유기된 영아 추모 메시지. (사진=뉴시스)
 
아울러 이날 당과 정부는 의료기관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를 병행 도입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고, 입장을 재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보호출산제는 산모가 원한다면 신원이나 개인정보를 밝히지 않아도 의료기관에서 출산할 수 있고, 익명으로 출생신고와 입양신청도 할 수 있도록 한 게 핵심입니다.
 
동의하는 측은 영아의 '생명권'이 가장 우선돼야 하며 무엇보다 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와야 국가가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보호출산법 시민연대는 "지금도 어딘지 모르는 원룸이나 화장실에서, 모텔에서 고시원에서 위태로운 목숨이 태어나고 있다"며 "위기 임산부와 아이를 살리고자 만든 보호출산법의 조속한 통과가 필요하다"고 촉구했습니다.
 
반면 위기 임신부에 대한 지원 체계 논의 없이 보호출산제부터 도입하는 경우 임신부들의 양육 포기를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습니다. 또 아이를 뿌리 없는 사람으로 자라게 만든다는 반대 목소리도 큽니다.
 
김민정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미혼모를 위한 제도라고 하면서 일단 숨기려고 하는 것부터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며 양육 포기나 입양을 돕기보다 출산과 양육을 택한 미혼모를 위한 지원이 우선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보호출산제로 태어난 아이는 나중에 엄마의 정보를 찾고 싶을 때 찾을 수가 없다"며 "보호출산제가 아니라 보편적 출생통보제로 가는 것이 모든 아이들의 권리"라고 강조했습니다.
 
시민연대체인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는 "오히려 아동의 뿌리를 알고 정체성을 가질 권리, 양육과 보호의 청구권을 영구히 박탈하는 것"이라며 "익명출산제가 사실상 시행되는 국가에서도 영아 살해, 아동 유기가 계속되고 있다는 건 결코 간과해선 안 될 경험적 증거"라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전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심사소위에서 논의된 보호출산제 법안은 소위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논의는 다음 달로 넘어가면서 이번 달 국회 통과는 어렵게 됐습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28일부터 감사원 감사 과정에서 확인된 임시 신생아번호로 남아 있는 아동의 출생신고 여부와 소재·안전 확인을 위한 전수조사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조규홍 장관은 "전수조사를 통해 아동의 소재·안전 확인에 만전을 기하되, 이번 조사가 일회적인 조치에 그치지 않고 모든 아동이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를 더욱 촘촘히 보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당정은 28일 부모의 출생신고가 없어도 의료기관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출생 통보를 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 병행 도입을 위한 입법 조치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사진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사진=뉴시스)
 
세종=주혜린 기자 joojoosk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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