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기호3번 꼼수 논란, 불공정한 기호순위제를 폐지해야
입력 : 2024-01-29 06:00:00 수정 : 2024-01-31 10:49:53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꼼수 사퇴 비난을 무릅쓰고 사퇴했다. 정의당의 틈새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선거법 위반으로 2심에서 당선무효형이 선고됐는데, 대법원의 확정 때까지 기다렸다 사퇴하게 되면 정의당 의석이 하나 줄기 때문이다. 임기만료 전 120일 이내가 되면 비례대표 의원이 사퇴하더라도 승계할 수 없다고 선거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며칠 뒤면 임기만료 120일 이내가 되는데 당을 위해 그 이전에 사퇴한 것이다. 
 
정의당은 현재 원내 6석으로 제3당이다. 신당들의 이합집산을 두고 봐야겠지만, 이대로라면 22대 총선에서 기호3번을 배정받아 기호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롭게 출범하고 있는 신당들이 현역의원들의 합류를 기대하는 배경에도 이런 기호 효과 문제가 걸려 있다. 그러나 큰 정당 순으로 번호를 매겨 순서를 정해주는 투표용지 게재 방식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공정한 제도이다. 정치참여와 공무담임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요소가 큰 제도이다. 기호 3번 경쟁이 이러할진대 1번 2번을 차지하는 양당의 기득권은 오죽하겠는가. 
 
세계적으로 후보자 순서에 번호를 매기고, 더구나 그 순서를 정당 크기나 현역 우선 같은 기득권을 배려하는 나라는 매우 드물다. 주요 국가 중에서는 독일이 거의 유일하다. 미국, 영국, 일본 모두 번호가 없다. 영국, 일본(벽보순서)은 모두 추첨으로 순서를 정한다. 미국도 주지사나 현역 의원 소속 정당에 우선권을 주는 방식이 위헌 판결을 받기도 했고 30여개 주에서 추첨방식으로 하고 있다. 추첨으로 하더라도 순서 프리미엄이 있기 때문에 투표구별로 순서를 순환시켜 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딱 현재 우리나라 교육감 선거에서 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처럼 2중, 3중으로 기성정당, 특히 큰 정당에 특혜를 주는 나라를 찾지 못했다.  순서가 주는 효과에 대해서는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투표에서 순서효과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학술 논문으로도 입증된 바 있다. 그 순서에 번호까지 매겨지면 그 순서효과는 당연히 배가될 것이다. 큰 정당후보들은 엄청난 프리미엄을 누리게 되고, 작은 정당 소속이나 신진 후보들은 너무 큰 장벽과 맞서야 하는 불평등한 제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추첨으로 순서를 정했었다. 1969년 현재의 방식으로 바뀌기 이전인 1967년 대통령선거에서 제1당 민주공화당의 후보이자 현역 대통령이었던 박정희는 기호 6번으로 당선됐다. 기호순위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위헌심판 청구가 여러 번 있었다. 모두 각하되거나 기각됐다. 불평등한 점이 있지만, 정당정치를 보호하기 위해서 유지될 필요가 있다는 1996년의 헌재 결정(1996.3.28 선고 96헌마9, 77, 84, 90) 이래 그 판단을 그대로 유지했다. 낱낱이 반박할 수 있지만, 정당정치에 대한 보호와 기성 정당에 대한 특혜는 다르다는 점만 지적한다. 
 
우리나라 투표용지에서는 지역구 선거에도 번호 다음에 후보자 이름이 오는 것이 아니라, 정당 이름이 나오고 그다음에 후보자 이름이 나온다. 지역구 후보에 정당 이름이 먼저 나오는 나를 찾아보지 못했다. 정당투표를 가장 강조하는 독일의 경우도 지역구 후보의 경우 후보자 이름 다음에 정당이 나온다. 작은 선거일수록 번호에서 결정돼 버린다. 지방의원 선거의 경우 번호만 보고 찍는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것이다. 
 
현재 우리나의 정당정치의 문제, 양극단의 진영정치 배경으로 양당독과점체제를 말한다. 제도적 차원에서 비례대표제의 확대 등을 대안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핵심 개혁과제는 공직선거법 150조를 통해 만들어주고 있는 ‘기호순위제‘의 폐지다. 소선거제가 유지되더라도 기호순위제만 폐지하면 부익부 빈익빈의 근원적 문제가 해결된다. 국회 정치개혁 특위 등에서 제기하면, 모두 공감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거의 모든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진보적 개혁을 말하는 정의당도 사실은 제3의 틈새 기득권에 기댈 뿐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기득권 세력이 눈 감고 있는 이 문제를 정치개혁 운동으로 관철시키거나 다시 한번 위헌심판 청구를 시도해 보는 것이 그나마 해법인 듯하다.
 
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전 국회입법조사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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