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기동성 떨어지는 ‘기동카’
박용준 공동체팀장
입력 : 2024-02-15 06:00:00 수정 : 2024-02-15 06:00:00
2022년 독일은 러·우 전쟁으로 물가가 폭등하자 시민의 부담을 덜고자 한시적으로 ‘9유로 티켓’을 판매했습니다. 약 1만2000원의 돈을 내면 한 달 동안 전국 대부분의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 가능합니다. 9유로 티켓은 독일 인구 2/3에 달하는 5200만장이 팔렸고, 대중교통 이용률 증가,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 물가 상승 억제 효과로 나타났습니다.
 
9유로 티켓의 성공을 바탕으로 독일 정부는 교통업계의 손실보전금을 합리화해 49유로 티켓을 작년 5월 내놓았고, 49유로 티켓 역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웃나라 프랑스에서도 49유로 티켓을 도입키로 결정하는 등 우럽은 각자 버전의 49유로 티켓을 내놓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얼마 전 출시한 기후동행카드도 독일의 49유로 티켓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대중교통 무제한 이용, 최대 6만8000원이라는 비용 등이 유사합니다. 아직 출시 한 달도 안 됐지만 일일 사용자 20만명을 넘어서며 빠르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선 ‘기동카’란 줄임말로 불리기도 합니다.
 
기동카엔 기동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수도권은 메가시티를 논의할 정도로 한 생활권이나 다름없는데 서울 대중교통만 이용 가능한 현실입니다. 명동과 사당을 하루에도 수십 차례 오가는 광역버스, 88번 버스처럼 서울 안까지 운행하는 인천·경기발 버스, 서울을 통과해 인천·경기까지 다니는 지하철의 일부 구간은 기동카의 혜택을 볼 수 없습니다. 
 
국토부, 경기도, 인천시도 대중교통 할인제도로 K패스, The경기패스, 인천I패스를 내놓고 있습니다. 이들은 통합에 대해선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론 합칠 수 있지만, 일단 사업 시행 후 효과를 검증받겠다는 계획입니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도 “주민들 패턴에 맞게 점차 업그레이드해 나가는 게 맞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수요자인 시민 입장에선 여러 번 생각할 필요도 없이 하나로 합치는 방안이 바람직합니다. 독일의 49유로 티켓이 성공한 이유도 연방정부와 지방정부가 예산 분담을 통해 독일 전역의 대중교통이 이용 가능하도록 힘을 합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역이나 나이, 이용횟수에 따라 각기 다른 정책으로 나뉘며 이용자마저 뿔뿔이 흩어놓고 있습니다.
 
서울시도 물론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경기도와의 광역 대 광역의 협의보다 기초지자체와의 협상을 통해 하나씩 확대하겠다는 전략입니다. 광역인 인천을 필두로 기초인 김포·군포·과천까지 기동카에 합류하고 있습니다. 다만, 합류가 확정된 지자체들은 단체장들이 모두 서울시장과 같은 정당 소속입니다. 아시다시피 경기도지사는 서울시장과 다른 정당 소속입니다.
 
9유로 티켓은 독일 자유민주당 출신 장관이 처음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평소 대중교통을 강조하던 녹색당이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여기에 사회민주당 소속 총리까지 가세하며 정책엔 힘이 붙기 시작했고, 이는 대성공으로 이어졌습니다. 지난 연말 예산 부담을 이유로 독일에서도 49유로 티켓의 가격이 인상될 위기에 놓였으나 연방정부와 주정부 간의 협의 끝에 일단 한숨돌렸습니다.
 
기동카는 아직 시범사업 단계입니다. 기동카가 목표했던 대중교통 이용 활성화 효과를 거두려면 실질적인 이용자 증가가 필수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수도권, 나아가 전국 어디든 저렴한 비용으로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동카에 기동성을 기대합니다.  
 
박용준 공동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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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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