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별 의미가 없는 총선
입력 : 2024-02-15 06:00:00 수정 : 2024-02-15 08:20:57
한국 총선은 칸막이 선거다. 유권자의 표가 영향을 끼치는 폭이 매우 좁다.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등등처럼 정당이 지지율대로 의석을 나눠갖는 나라, 즉 한 표 한 표가 의회 전체의 구성을 결정하는 나라와는 정반대다. 소선거구제인 한국에서는 당선자 1명을 찍은 투표용지만 살아남는다. 이조차도 지역구 253석 중 1석만 결정한다. 그나마 사표 발생률이 낮은 비례대표 투표도 전체 의석의 약 15.66% 수준인 47석의 배분에만 쓰인다. 
 
한국 국회에서는 유권자가 정당에 얹어준 한 석 한 석도 별 힘을 갖기 어렵다. 국회 다수파의 질주를 제어하는 국회 선진화법 때문이다. 특정 정당이 확실한 입법 주도권을 쥐려면 60%(180석) 이상의 의석이 있어야 한다. 반대로 40%(120석) 이상의 의석이 있으면 법안 통과를 저지할 수 있다. 한 정당의 의석이 120~179석 범위내에 있으면 입법에서 큰 차이는 없다. 예산안과 그 부수법안은 과반의 찬성으로도 통과되지만, 방대하고 다양한 내용의 예산안은 합의해서 처리하는 경향이 강하다. 
 
총선에서 각당들은 “힘을 실어달라”, “저쪽을 심판해주시라”고 사정하지만, 유권자는 “어차피 누가 제1당이 되든 간에 180석이 안 되면 법안 통과가 어렵지 않은가?”라고 대꾸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여당 승리를 가정하며 공포감을 부채질해도 ”국민의힘이 제1당이라도 180석을 넘지 못하는 이상 윤석열 정권 마음대로 안 된다“고 반론할 수 있다. 여당 국민의힘은 유권자에게 겁을 주는 데 더욱 불리하다. 전체 야권이 180석을 넘고 이들이 연합해 법안들을 통과시켜봤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막히는 것이고, 국민의힘이 100석만 넘어도 재표결에서 법안을 부결시킬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법안 거부권 행사를 남발했고 시행령으로 여러 정책을 밀어붙였다. 여소야대에서도 집행권력으로 실컷 독주했으니, 국회를 여대야소로 뒤집어달라는 호소에 설득력이 실리지 않는다. 민주당은 어떤가. 과반 의석으로 빚은 가장 큰 결과는 ‘방탄 논란’이었다. 노란봉투법, 방송3법, 위성정당 방지법 등 주요 법안들을 여당일 때 추진하지 않았던 것만 두드러진다. 
 
어느 쪽에 표를 주든 입법을 둘러싼 구도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찍을 맛이 나는 정당이라도 있느냐’가 총선의 중대성을 좌우한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 새롭고 대안적인 가치와 세력이 등장한 것도 아니다. 정치권은 도덕성 문제와 사법리스크에 젖어 있는 데다가 거대양당이 각각 내건 ’86 운동권 청산‘과 ’검사 독재 심판‘은 한국사회가 직면한 기후, 재정, 인구, 지방의 절벽과 동떨어져 있다. 제3세력의 대안적 성격도 사상 최저다. 개혁신당의 노선은 거대양당의 틈새에 있고 이낙연·이준석 공동대표는 거대양당 문제의 '핵관'들이었다. '후라이드 대 양념'의 구도를 ‘후라이드 반, 양념 반’으로 허물 수는 없다. 녹색정의당과 진보당 등 소위 진보정당들은 거대양당체제에 올곧게 저항하지 않았고 이것은 지지율에 이미 반영되어 있다. 지금도 민주당이 제안한 위성정당 연합을, 단칼에 물리치기는커녕 곱씹고 있다.
 
많은 시민들은 기꺼이 선택할 만한 정당이 출현하기를 고대하고 있지만 당장은 불가능하다. 정치는 사회의 반영이다. 대안적 사회세력이 없는 곳에는 대안적 정치세력도 없다. 어떤 각도로 봐도 2024년 제22대 총선은 중대하지 않다. 이런 시기에 유권자가 취할 전략과 태도는 간명하다. 어떤 투표를 하든 열정과 시간을 소모하지 말자. 피로와 환멸을 피하자.
 
김수민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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