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리셋’을 꿈꾸고 있나요
입력 : 2024-02-20 06:00:00 수정 : 2024-02-20 06:00:00
잠이 오지 않을 때면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들곤 합니다. 그날 하루 있었던 일부터 내일 해야 할 일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거나 지난 추억에 빠져들 때도 있지요. 하지만 그런 불면의 밤은 대개 후회와 한숨으로 끝날 때가 많습니다. 그때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거기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같은 한탄과 탄식들. 그러다 보면 아예 모조리 지워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잘못된 선택이나 후회할 행동을 하기 전으로, 잊고 싶은 일이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그래서 게임을 리셋하는 것처럼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말이지요.
 
비단 저 혼자만의 이야기는 아닌 듯합니다. 최근 인기를 끄는 컨텐츠를 한데 묶어 회·빙·환이라고 부른다던가요. 회귀, 빙의, 환생의 줄임말입니다. 이미 망해버린 것처럼 보이는 현실의 삶은 그만 접어버리고 새롭게 태어나고 싶다는, 혹은 마음에 들지 않는 자기 자신 대신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또는 시간을 돌려 후회되는 사건을 없었던 일로 만들고 싶다는, 그러한 욕구를 지닌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겠지요. 물론 우리네 인생은 게임과는 다르므로 그저 영화나 소설을 보며 대리만족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요.
 
그런데 이와 같은 소망을 실제로 시도하는 경우도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비록 인터넷상에서이긴 하지만 ID나 이름을 새롭게 바꾸어 다른 사람인 척 꾸미는 것 말입니다. 대다수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이용하고, 온라인 네트워크가 오프라인만큼이나 촘촘하고 풍성하게 연결되어 있는 요즘 세상에서는 이 또한 일종의 리셋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몇 차례 본 적이 있습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문제 되는 행동을 일으켜 계정을 삭제하고, 다른 이름으로 아이디를 만들어 다시 돌아오는 사례를요.
 
흥미로운 건 이와 같은 시도가 잘 풀리는 경우가 좀처럼 없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와 비슷한 패턴을 반복하여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고, 유사한 말과 행동으로 숨겨왔던 정체가 드러나기도 하고요. 이름은 바뀌었지만 결국 비슷한 결과를 맞이하는 것이죠. 그러고 보니 앞서 언급한 회·빙·환 컨텐츠들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인물들은 되살아나거나 다른 이의 몸을 빌리거나 다시 태어나거나 하곤 했지만, 내면과 본질이 그대로인 까닭에 새롭게 주어진 기회를 망치거나 놓쳐 버릴 때가 많았지요.
 
최근에는 언론에서 평상시보다 훨씬 더 많은 정치인의 얼굴을 봅니다. 다시금 선거철이 돌아왔기 때문이겠지요. 과거는 잊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인지, 신당 창당이나 당적 변경 등 새로운 소식 또한 쏟아집니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이름이나 소속만 바꾸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앞서 언급한 회귀나 환생을 소재로 삼는 가상의 컨텐츠에서처럼요. ‘리셋’을 다루는 컨텐츠들에서 새롭게 주어진 기회가 진정으로 효과를 거둔 건,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일을 없었던 것처럼 망각하고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는 대신, 바꿀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지난 잘못과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달라지려고 노력하는 경우뿐이었습니다. 소설 속 이야기이긴 하지만, 아마 현실도 크게 다르진 않겠지요.
 
한승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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