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나토의 우크라이나 파병론을 어떻게 볼 것인가?
입력 : 2024-03-25 06:00:00 수정 : 2024-03-25 06:00:00
우크라이나에 유럽 군대 파병 가능성을 제기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발언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월 27일 마크롱은 “유럽의 미래가 위태롭다”며 전쟁 승리를 위해 “어떤 것도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그러자 독일,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스웨덴, 폴란드 등 유럽 대부분 국가들은 일제히 파병 가능성을 일축하고 나섰다. 미국 백악관과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도 나토 동맹의 전투 병력 투입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마크롱의 돌출적 발언에 대해서는 비판론이 중론이다. 조율되지 않은 발언으로 유럽의 분열상만 노출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옹호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리투아니아와 에스토니아는 모든 옵션이 테이블에 올려져야 한다며 마크롱을 두둔하고 있다.
 
그동안 금기로 여겨져 왔던 나토 파병이 논란이 되는 것은 그만큼 전황이 암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3년 차로 접어든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의 패색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 따라서 나토 파병, 장거리 공격무기 제공, 러시아 영토 성역화 재고 등 전쟁 수행 방식에 새로운 접근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크롱이 불 지핀 파병론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대다수 유럽국가들이 취하고 있는 신중론이 옳은 것인가, 아니면 더 이상 스스로 손발을 묶고 싸워서는 안 된다는 마크롱 옹호론이 맞는 것인가? 이와 관련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 쟁점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쟁점은 ‘나토가 직접적으로 군사 개입하거나 전쟁이 러시아 영토로 확장될 경우 핵 확전의 위험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사실 나토 병력이 우크라이나 영토로 진입하지 못한 이유는 다름 아닌 러시아의 핵 억제력이다. 약 4,500개에 이르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러시아는 미국을 30분 만에 재로 만들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나라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나토 병력이 우크라이나 영토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금번 파병 논란에서 드러나듯이 핵 확전을 두려워한 서방의 자기 절제에 의문을 제기하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의 핵 사용 위협은 공갈일 뿐이며 실제 가능성이 희박하므로 서방이 좀 더 과감한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핵 확전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핵무기 사용에 따른 비용과 편익 관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즉,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전투 주도권 확보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감당하기 힘든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국제적 비난과 러시아의 고립을 불러오고, 무엇보다 러시아가 그토록 막고자 했던 나토의 군사 개입을 오히려 유발시킬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나토가 참전할 경우에도 이런 비용·편익 계산이 유지될 것인가다. 러시아가 핵 사용을 자제했던 것은 재래식 전력만으로 전쟁 수행이 가능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장기적 수행 능력 면에서 우크라이나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토가 직접 개입한다면 이 기본 전제가 달라진다. 나토에 비해 재래식 전력이 열세에 있기 때문에 굴욕적 패배를 감수하지 않으려면 핵 사용 카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유럽의 파병론에 신중론이 압도적인 데에는 이런 합리적 우려가 있다고 판단된다.
 
두 번째 쟁점은 러시아와 나토의 직접 충돌을 배제했을 경우의 질문이다. 나토가 파병과 장거리 무기 제공을 자제함으로써 만약 전쟁이 우크라이나의 패배 또는 불만족스러운 타협으로 끝난다면 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핵 확전의 위험을 피하고자 현재의 전쟁 수행 방식을 고수할 경우, 서방이 불가피하게 맞닥뜨려야 할 문제다. 서방의 주류 시각은 러시아의 침공을 저지하지 못할 경우, 푸틴의 야심이 우크라이나에서 멈추지 않을 것으로 우려한다. 우크라이나 다음엔 몰도바, 조지아, 발트 3국 등이 희생자가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푸틴에 승리를 허용할 수 없다는 서방의 각오는 이런 이유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전쟁이 타협으로 종료된다고 해서 규칙 기반 질서가 무너지거나 유럽의 안보가 위험해진다는 우려는 지나친 비관주의일지 모른다. 푸틴의 제국적 야심과 러시아의 객관적 역량은 별개의 문제다. 폴란드와 같은 동유럽 국가들을 비롯해 대서양의 32개 국가가 이미 나토의 보호막 안에 위치하고 있다. 다시 말해 러시아가 미국과의 직접적 충돌을 감수하지 않는 한 건드려 볼 만한 유럽 국가가 거의 없는 상태다. 따라서 푸틴의 제국적 야심은 그의 가슴 속엔 있을지 모르지만, 현실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크롱이 불 지핀 이번 논란은 푸틴에 승리를 허용할 수 없다는 결의와 핵전쟁의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함께 얽혀서 벌어지고 있다. 금번 논란은 단순히 전쟁 수행 방식의 변경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러시아의 안보적 민감성을 얼마나 존중해 줘야 하는지, 그래서 애초에 전쟁 책임 소재가 어디에 있는지의 질문과도 무관하지 않다. 또한 전쟁을 어떻게 종결시켜야 하고, 전후 서방과 러시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의 선택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러시아의 제국적 열망, 핵 억제력과 세력권 존중 문제, 그리고 유라시아 질서에서 러시아의 적절한 위치 등 근본적 질문들이 전황이 어려워지자 더욱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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