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이사회에 파생상품 판매 감시 책임 지운다
'비예금상품위' 제기능 못해
금감원, 이사회 적극조치 요구키로
입력 : 2024-05-23 13:29:23 수정 : 2024-05-23 13:29:23
[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금융감독원이 금융지주 및 은행 이사회와 릴레이 면담에 돌입합니다. 금융사 지배구조 개선과 내부통제 강화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는데요.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홍콩 ELS) 불완전판매에 대한 문제가 집중적으로 거론될 전망입니다. ELS 등 고위험 파생상품을 심의하는 은행 내 비예금상품위원회 활동이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이사회의 적극적인 조치를 요구할 예정입니다.
 
이사회, 불완전판매 책임 강화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조만간 국내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이사회들과 면담을 가집니다. 은행 이사회와 릴레이 면담은 은행 개혁 방안의 일환으로 지난해부터 정례화됐습니다. 금융지주와 은행의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개선하고 내부통제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사회의 운영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이번 면담에서 홍콩 ELS 불완전 판매 등에서 비롯한 내부통제 문제는 빠질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금감원은 홍콩 ELS를 판매한 금융사 현장검사에서 불완전판매 정황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특히 금감원 검사 결과 은행권이 비예금상품위원회를 형식적으로 운영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이 마련한 홍콩ELS 배상비율에서 비예금상품위의 형식적 운영을 내부통제 부실 가점으로 책정했다"며 "은행 조직이 파생상품 안전성 점검과 모니터링 등 사후조치에 소홀할 때 보고를 받은 이사회도 형식적으로 보고를 받는데 그쳤다"고 지적했습니다.
 
홍콩 ELS를 주로 판매한 은행들은 고위험 투자상품과 관련한 비예금상품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위원회는 2019년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를 계기로 마련된 '은행 비예금상품 내부통제 모범규준'에 따라 설치된 은행의 비예금 금융상품 관리기구입니다. 리스크관리담당 임원(CRO), 준법감시인, 소비자보호담당 임원(CCO) 등 영업과 관련 없는 임원들로 구성해야 합니다.
 
위험도가 높지 않은 상품은 부서장 협의체 등 하위조직에 상품 심의를 위임할 수 있지만 고난도 금융상품, 해외대체펀드, 위험도가 중간등급 이상인 상품은 직접 심의해야 합니다. 위원 중 객관성과 공정성 문제로 영업담당 임원은 회의를 주재할 수 없고, 회의 소집과 주관은 영업과 관련 없는 조직이 맡습니다. 소비자보호담당 임원이 상품 판매를 반대하면 해당 상품 판매는 보류됩니다.
 
비예금상품위가 상품심의를 포괄적으로 승인하고 실제 개별 상품 선정은 권한이 없는 실무 담당자가 결정했습니다. 모범규준에 따르면 위험도 중간등급 이상(1~3등급) 고난도 상품은 위원회가 직접 심의해야 합니다. 원금비보장형 ELS는 위험도 최고 1등급에 해당합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비예금상품위 심의 결과에 대한 대표이사·이사회 보고의무를 명시했을 뿐 경영진 감시와 견제를 해야할 사외이사(이사회) 역할을 제대로 명시되지 않았다"며 "비예금상품위가 형식적으로 운영되면서 불완전판매 환경이 조성됐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금융지주 이사회 면담 계획
 
금감원은 은행 이사회 면담이 마무리되면 금융지주 이사회와도 면담할 예정입니다. 지난 20일부터 6주간 정기검사가 진행 중인 농협금융과 농협은행, 하반기 검사 대상인 국민은행은 이번 면담에서 제외됐습니다.
 
수천억원대 횡령 등 은행권에서 금융사고가 줄을 잇고 경영진들이 우호세력을 형성해 '셀프연임'하는 관행도 문제점으로 지적되면서 당국은 경영진을 감시하고 견제할 이사회의 적절한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공공재 측면이 있는 은행의 지배구조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이사회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주인 없는 회사인 금융지주나 은행의 이사회는 경영전략과 내부조직 및 지배구조, 리스크관리에 관한 최종 의사결정기구로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와 건전한 지배구조 확립을 위해 이사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습니다.
 
올해 면담에서는 각 은행과 금융지주가 제출한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best practice)' 로드맵을 바탕으로 이사회 기능 강화를 통한 지배구조 개선 문제가 집중 논의될 전망입니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은행권 지배구조의 개선을 유도하기 위해 30개 핵심원칙을 제시한 모범관행을 발표하고 각 금융지주 및 은행별로 과제별 개선 계획을 마련해 제시할 것을 요구한 바 있습니다.
 
금융당국이 제시한 모범관행에는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 구성과 관련해 전문분야, 직군, 성별 등을 각 은행별 특성에 따라 다양화하고 이사회와 위원회, 사외이사의 활동을 연 1회 이상 주기적으로 평가해 사외이사 재선임시 활용토록 한는 방안 등이 담겼습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해 만든 지배구조 모범관행과 관련해 각 지주 및 은행의 로드맵을 제출받았는데 당국이 보는 것과 금융회사가 보는 것 사이에 시각차가 있을 수도 있으니 그런 부분의 논의가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투기자본감시센터와 홍콩지수 ELS 피해자 모임 회원들이 지난달 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열린 시중은행 등 홍콩지수 ELS 손실 관련 고발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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