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금융·지역투자' 지자체 금고 평가 '글쎄'
100점 만점 중 평가배점 1~2점 불과
"자금관리 역량 평가 취지와 무관" 지적도
입력 : 2024-07-25 08:00:00 수정 : 2024-07-25 08:11:47
 
[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정부가 녹색금융이나 지역 재투자 실적이 우수한 금융기관에 우대점수를 주는 방식으로 지방자치단체(지자체) 금고 선정 기준을 손질하고 있습니다. 막강한 자금력을 가진 대형 은행들의 참전으로 입지가 위태로워진 지방은행에 기회를 주자는 취지도 있습니다. 다만 자금관리 역량이 가장 중요한 금고 선정의 본래 취지와 무관한 데다 친환경·지역재투자 배점 비중이 1%대에 불과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친환경·지역재투자 배점 확대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지자체 금고 유치의 변수로 탈석탄 등 녹색금융 실적과 지역재투자 평가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지자체가 금고 선정 평가 배점에서 관련 평가 항목을 신설하거나 비중을 늘리도록 유도하고 있는데요. 일부 지자체는 조례 개정을 통해 하반기 금고 선정부터 새 기준을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지자체 금고는 지자체와 계약을 맺고 세금 등을 도맡아 수납하고 관리하는 은행을 말합니다. 지자체 금고 은행에 지정되면 해당 지역의 금고를 도맡는 만큼 은행 입장에선 놓칠 수 없는 주요 고객입니다. 정부 교부금과 지방세, 각종 기금 등을 예치 받고 세출, 교부금 등의 출납업무로 수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금고 유치전에서는 은행들이 제시하는 출연금(협력사업비)이 당락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특정 금고를 유치하기 위해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과도한 출연금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하나 4대 은행의 지난해 지방자치단체 출연금은 1910억원입니다.
 
지난해 상생금융 압박이 거세게 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년 출연금 2072억원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지자체 금고로 선정된 은행은 협력사업비라는 출연금을 내고 있습니다. 출연금은 금고은행에서 자치단체에 용도 지정 없이 출연하는 현금인데, 일반재원에 해당해 지자체 예산으로 활용됩니다.
 
지자체 금고 선정 기준을 변경하는 것은 수도권 외 지역에 연고를 둔 지방은행에 금고 선정 기회를 주자는 의미도 있습니다. 자금력을 갖춘 시중은행들이 거액의 출연금을 동원해 지방으로 세를 확장하면서 지방은행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행안부의 '2023년 지자체 금고 현황'에 따르면 전국 174개 지자체(자치구 제외) 금고 가운데 지방은행이 차지하는 비율은 36%(63곳)로 나타났습니다. 각 지자체는 3~4년 주기로 금고(1·2금고)은행을 선정해 정부 교부금, 지방세 등을 예치하고 관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1금고만 놓고 봤을 때 지방은행의 비중은 5%(10곳)에 불과합니다.
 
경기도 금고 지정 기준을 보면 '기후금융' 관련 항목 배점은 100점 만점에 1.5점에 불과하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영업점 늘리느니 지역기여 포기
 
앞으로 부산시 금고를 필두로 경기도, 광주시 등 금고은행 약정이 만료되는 만큼 은행권에서는 치열한 유치전이 예상됩니다. 새 금고 선정 기준을 적용할 경우 시중은행과 농협은행이 독식하고 있는 지자체 금고 입찰에서 지방은행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은행들은 탈석탄 등 친환경 정책을 과거부터 실천해 오고 있어 특별한 이견을 내지 않고 있지만 관련 배점이 낮아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예를 들어 경기도의 도금고 선정 기준을 보면 기타사항에 '기후금융' 항목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배점은 100점 만점 가운데 1.5점에 불과합니다. 광주시의 경우 탈석탄·재생에너지 항목에 각각 1점씩 배정하고 있습니다.
 
탈석탄 선언 여부와 기존 석탄발전 투자금 출구계획, 기후금융 국제기구 가입 여부 등을 따지는 것인데요. 국내 시중은행들은 지난 2020년을 기점으로 줄줄이 탈석탄을 선언했고 녹색금융을 확대하고 있어 차별성을 찾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오히려 지방은행의 경우 녹색금융 실적이 저조한 편입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자체 금고 선정은 은행들이 지자체 예산을 투명하고 체계적,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평가하는 것"이라며 "석탄발전소 투자 여부에 따라 금고지정 평가에 불이익을 주는 건 금고 선정의 본질과 동떨어진다"고 지적했습니다.
 
지역재투자 관련 배점 확대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지역재투자 항목에는 지역 내 인프라(영업점, ATM) 투자 실적, 지역 중소기업·저신용자 대출 등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은행들은 디지털 전환에 따라 오프라인 영업점 운영에 대한 필요성이 크지 않아 지방 지역을 중심으로 영업점을 줄이는 추세입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지자체 금고 지정 기준은 은행 신용도 및 재무구조 안전성, 대출 및 예금금리 등 여러 가지"라며 "지역재투자 평가에서 조금 더 점수를 받느라고 수익이 나지 않는 영업점을 늘리거나 계속 유지할 지는 의문"이라고 전했습니다.
 
올해 부산시 금고를 비롯해 경기도, 광주시 등 지자체 금고은행이 만돼 시중은행과 지방은행의 치열한 유치전이 예상된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건물에 설치된 현금자동입출금기.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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