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볼썽사나운 '책임 떠넘기기'
입력 : 2024-09-04 09:00:00 수정 : 2024-09-04 09:00:00
가계부채 등 각종 경제 현안을 두고 정부의 책임 떠넘기기 행태가 도를 넘어섰습니다. 가계부채가 늘어난 것은 은행권의 대출금리가 낮아서, 내수 진작이 부진한 것은 한국은행이 제때 금리를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가계부채의 경우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시행 연기, 신생아특례대출 공급 확대 등으로 대출 수요를 자극한 정부는 이제와서 은행 탓을 하고 있습니다.
 
가계대출 증가세를 누르기 위해 은행들에 대출 관리 강화를 주문했던 정부와 금융당국이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올리는 쉬운 길을 택했다'고 비판하는 것은 궁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당국은 다른 방식으로 은행 가계대출 총량을 관리하고 있는데요. 다만 급진적인 총량 규제의 실패가 부른 폐해는 이미 이전 정부에서 목격한 바 있습니다.
 
가계대출이 폭증하던 2021년 8월 시중은행들은 연말까지 4개월여나 남겨둔 상황에서 이미 금융당국이 권고한 가계대출 총량 증가율 목표치를 훌쩍 넘어서자 총량규제라는 극약처방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대출이 언제 막힐지 모른다'는 공포심이 퍼지면서 단기간 마이너스통장 개설이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급기야 대출 수요가 상호금융 등 2금융권으로 몰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났고, 금융권 전반에 대출중단, 금리인상, 지점별 한도 제한 등의 조치가 연쇄적으로 번졌습니다. 정작 서민·실수요자들이 돈을 제때 못빌리는 부작용이 나타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독립성이 보장돼야 할 한은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3.5%를 동결하자 대통령실은 "내수진작 측면에서 아쉬움이 있다"는 별도 평가를 내놨습니다. 
 
추석을 앞둔 데다 한은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까지 낮춰잡을 정도로 내수가 불안한 만큼 금리를 내릴 요건이 갖춰졌다는 얘기입니다. 무엇보다 최근 내수부진의 책임을 한은에 떠넘기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한은이 금리를 내리지 못한 이유는 결국 정부 때문인데요. 부동산 가격, 가계대출 관리 실패로 통화정책 여력을 제한시킨 책임에서 정부가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정부의 책임 떠넘기기는 결과적으로 시장 불안을 야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부동산 정책에서 실패를 거듭한 직전 정부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며 대출규제를 합리적으로 정비하고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는 현 정권의 포부는 온데간데 사라진 형국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는 서민과 시장 참여자들이 떠앉게 된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이종용 금융산업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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