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원영적 감정’은 가능한가?
입력 : 2024-05-29 06:00:00 수정 : 2024-06-04 16:06:30
최근 ‘원영적 사고’를 유행시킨 장원영 씨가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어떻게 팬들과 소통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느냐”며 팬서비스의 비결을 묻는 질문을 받는다. 비결은 단순했다. “팬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팬들을 실제로 사랑해야 그들을 향한 여러 말과 행동이 자연스럽게 따라 나온다는 것이다. 이렇듯 진리는 자주 동어반복에 있다. 건강한 사람이 건강하고, 팬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팬들을 사랑한다. 살면서 마주치는 지식과 실천, 겉모습과 실제 사이의 긴장이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한다. 건강한 생활을 하지 않으면서, 혹은 건강을 위한 지식을 따르지는 않으면서 건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팬들을 그다지 사랑하지 않지만 사랑하는 것처럼은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장원영 씨에 따르면 그런 방법은 없다. 이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원영적 사고’보다 더 근본적이다. 현실을 전혀 긍정적으로 바라볼 마음가짐이 없이 생각만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원하는 모습으로 사는 길은 실제로 그런 사람이 되는 것뿐이다.
 
사실 이 문제의 핵심에는 감정이 있다. 우리는 긍정적인 사고가 필요하고, 실제로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안다. 무언가가 지금은 힘들고 불편하더라도 결국에 가서는 좋을 것임도 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를 움직이게끔 하는 것은 감정이라서, 좋은 것과 나쁜 것 각각을 향해 감정이 특정한 방식으로 느껴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가 윤리학적 질문으로 등장할 수 있다.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감정이 우리를 윤리적으로 이끌어준다는 식의 감정윤리학 전통의 주장보다는, 윤리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좋은 것이 무엇이며 그것이 왜 좋은 것인지를 깨닫고 그렇게 살기 위해 감정이나 성격 역시도 그에 맞게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식의 덕 윤리학 전통에 더 가깝다. 덕 윤리학의 시초 격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좋은 것에 기뻐하고 나쁜 것에 고통스러워한다’고 했다. 이렇게 감정의 방식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그가 제시한 방법은 첫째는 교육, 둘째는 습관화이다. 모든 것을 막 배워가는 어린 시기에는 좋은 성격 내지 좋은 감정의 방식을 쉽게 형성할 수 있다. 물론 조금만 나이를 먹어도 감정을 느끼는 방식이 고착화되긴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지난한 실천과 훈련을 통한 습관화라는 방법이 남아있다. 단번에 깨우치고도 부단한 수행이 필요하다는 불교 전통의 한 가르침이 아마도 그런 얘기일 것이다. 
 
어떤 감정이 필요하며 좋은 것인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한 사회를 무대로 해서도 던져질 수 있다. 즉 한 공동체를 이룬 사람들이 함께 공존하며 질서를 이루어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며,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감정의 방식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여러 답이 이미 나와 있지만, 거기에 도달하는 길은 험난하다. 함께 잘 살아가려면 실제로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함께 잘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서로 혐오하고 멀리하는 불쾌한 감정을 ‘무릅쓰고도’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감정을 덜 느끼거나, 느끼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법이나 제도는 새로 만들 수 있고, 지식도 새로 쌓여갈 수 있지만, 과연 이러한 ‘원영적 감정’은 가능한가? 진보라는 희망을 가지려면 정말로 진보라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 나는 이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 그 희망의 시금석이라 생각한다.
 
노경호 독일 본대학 철학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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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순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