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의 K-국방)국방 분야 학술·출판, 어떻게 발전시킬까
출판물, 학술행사 등 정보 편식 심각
인·태전략, 한·미·일 안보협력 등 토론 부족
"지식 역량이 안보" 외국 풍토 흥미로워
균형 갖춘 국방포럼 행사에 눈길
입력 : 2024-06-25 06:00:00 수정 : 2024-06-25 06:00:00
합동참모본부는 지난 1월 15일부터 17일까지 제주남방 공해상에서 한미일 해상훈련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이번 훈련에는 우리 해군 이지스구축함 세종대왕함 등 2척, 미국 해군 제1항모강습단 소속의 항공모함 칼빈슨함 등 5척, 일본 해상자위대 이지스구축함 콩고함 등 2척, 총 9척이 참가했다. 오른쪽 아래쪽부터 미국 해군 이지스구축함 키드함, 미국 해군 순양함 프린스턴함, 한국 해군 이지스구축함 세종대왕함, 미국 해군 항공모함 칼빈슨함, 일본 해상자위대 이지스구축함 콩고함, 한국 해군 구축함 왕건함, 미국 해군 이지스구축함 스터릿함. (사진=뉴시스)
 
필자는 국방홍보원장으로 근무할 때 국방안보 분야 신간 동향을 챙겨보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좋은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국방일보>가 매주 신간 소개 코너를 운영하는데 매체 특성상 국방 분야 책은 빠트리지 않죠. 괜찮다 싶은 신간을 요즘도 같은 방법으로 찾아 읽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국방부 기획조정실장을 지낸 김정섭 박사(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가 <세 개의 전쟁>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태평양전쟁, 우크라이나 전쟁, 장래 일어날지 모르는 대만전쟁을 두고 강대국이 왜? 어떻게? 전쟁을 결정하는가를 분석했습니다. 글이 역사적 사실에 탄탄하게 기반을 두었고 보수 성향, 리버럴 성향 학자들의 다양한 해석을 소개했습니다. 한국이 평화와 국익을 지키려면 강대국 국제정치를 알아두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임기훈 국방대 총장(육군 중장)이 2022년에 낸 <주한 미군과 주일 미군>도 수작입니다. 국제정치 이론을 토대로 동아시아 미군 기능과 전략을 치밀하게 분석했죠. 한국국방기술학회(이사장 박영욱)가 2022년에 펴낸 <과학기술, 미래 국방과 만나다>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국방과학기술 전문가 22명이 항공우주, 인공지능, 소재와 부품 등 영역별로 최신 지식을 정리해 담았죠.
 
좋은 책, 좋은 글은 기준이 뭘까요? 첫째, 근거가 충실해야 합니다. 근거를 대지 않거나 약하게 대면서 무엇을 주장한다면 설득력이 없죠. 둘째, 객관적인 자세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 분석해야죠. 진보, 보수 어느 관점으로 분석하든 관계없이 정보 수집은 균형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기존 관념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한 걸음 나아가는 독창성이 있어야죠. 이를 위해 자유로운 토론 풍토를 조성해야 합니다.
 
아쉽게 생각합니다. 우리 국방 분야 출판·학술 동향을 보면 좋은 책, 좋은 글이 쏟아져 나오고 좋은 학술행사가 활발히 열린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단행본이나 잡지, 논문, 보고서 수량은 다른 분야에 비해 적지 않습니다. 내용을 보면 정보 수집에 균형을 잃거나 약한 근거를 바탕으로 거대 담론을 과하게 주장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인도·태평양(인·태) 전략과 한·미·일 안보협력이 요즘 뜨거운 현안입니다. 미국과 일본은 중국과 세력 경쟁을 벌이는 차원에서 인·태 전략과 한·미·일 안보협력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주제를 연구한다면 미국, 일본뿐 아니라 중국 쪽 정보와 견해도 검토하는 게 기본입니다. 전쟁 때도 적의 정보를 수집하려고 스파이를 보내는 법이죠. 우리 지식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어느 한쪽 정보만을 갖고 목소리만 높이는 글을 종종 봅니다.
 
얼마 전 인·태 전략을 다루는 포럼을 참관했습니다. 꽤 직위가 높은 발표자가 청중석을 향해 "이 자리에 중국에서 온 분 없죠?"라고 하면서 한국과 미국, 일본이 국방비를 합치면 북한과 중국, 러시아 국방비 합계보다 많고, 그런 방법으로 한·미·일이 북·중·러를 압도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진영 대결은 부작용이 큽니다. 가령 한국과 중국이 적대 관계가 된다면 안보와 경제가 어려워지고 우리 국익이 위축되기 쉽죠. 연구자답지 않게 흥분해, 근거가 약한 주장을 강하게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글로벌국방연구포럼이 지난 21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센터에서 '한·미·일 안보협력의 성과와 한계'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사진=글로벌국방연구포럼 제공)
 
국방 임무를 수행하려면 지식보다는 실행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국방안보는 진보 보수, 여와 야가 없이 일사불란하게 같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미국만 봐도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베트남 전쟁에서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르기까지 안보 쟁점이 생길 때마다 다양한 전문가들이 총출동해 대응 전략을 놓고 치열하게 논쟁합니다.
 
트럼프 대통령때 미 육군 3성 장군 출신인 허버트 맥매스터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습니다. 그는 "나는 히스토리언(역사 연구가)"이라고 자부할 정도로 지식 역량을 갖췄습니다. 해병대 장성 출신으로 국방 장관을 지낸 제임스 매티스는 전쟁터에서도 책을 더블백에 가득 담아 다닐 정도로 열정적인 독서가였습니다. 지식 역량을 갖춰야 국방안보 지도자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글로벌국방연구포럼(회장 심승섭 전 해군참모총장)이라는 전문가 단체가 6월21일 '한·미·일 안보협력의 성과와 한계-인·태 전략과의 상관관계'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원장이 발제를 통해 세계질서 변화와 미국과 중국 경쟁 전망을 분석하고 미국이 동맹정책을 바꾸면서 한·미·일 안보협력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권태환 국방외교협회 회장은 발제를 통해 미일 동맹 강화 흐름과 함께 일본이 대만 유사사태 등을 가정하고 대외 군사적 대응을 대폭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소개했습니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지정토론을 통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동맹과 우방국 국방역량을 통합해 중국을 견제한다는 구상, 즉 아시아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비슷한 기구를 만들겠다는 구상이 유럽과 아시아의 조건 차이로 볼 때 실현될 수 있겠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필자도 지정토론자로 참여했는데요. 필자는 한·미·일 안보협력에 따라 군사적 차원과 경제적 차원에서 이익과 부담이 함께 생기고 있음을 설명하고 이념보다는 국익 차원에서 득과 실을 점검하며 유연하게 상황을 관리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국방 분야 학술행사를 가보면 생각이 똑같은 발표자, 토론자가 모여서 일방적인 주장을 늘어놓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토론회가 아닌 단합대회나 결의대회 느낌이 들죠. 글로벌국방연구포럼 세미나가 달랐습니다. 다양한 견해를 가진 연구자와 언론인이 의견을 주고받았습니다.
 
미국에선 "지식 역량이 안보 역량"이라고 하는데, 우리라고 다를 바 없죠. 국방 분야 출판물과 학술행사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정보 편식을 경계하고 자유로운 토론 풍토를 조성해야 합니다. 
 
■필자 소개 / 박창식 / 언론인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광운대에서 언론학 석사와 박사를 했습니다. 한겨레신문 문화부장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지내고 국방부 국방홍보원장으로 일했습니다. 국방 커뮤니케이션, 위기관리와 소통, 말과 글로 행복해지는 기술 등을 주제로 글을 쓰고 강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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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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