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 한국 정부가 이렇게까지 무능했다니…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부산엑스포 유치 참패, 다시 톺아봐야
입력 : 2024-10-10 15:03:04 수정 : 2024-10-10 15:03:04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사진=뉴시스)
 
단 1표 차이에 불과했으니, 외교부와 국정원 정보력이 대단하다고 해야 할까요?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부산 유치' 참패 문제와 관련해,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지난해 국제박람회기구(BIE) 투표(11월 28일) 일주일 전에 외교부가 BIE회원국 주재 공관에 보낸 '2030부산세계박람회 판세 메시지 송부' 공문을 공개했습니다. 지난 7일 외교부에 대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 자리였습니다.
 
한국 외교관들 "2차 투표서 한국 과반 득표" 장담
 
이 공문은 "본부의 판세 분석에 따르면 사우디 측의 주장과 같이 사우디의 120표 이상 확보는 절대 실현 불가능한 것이나, 판세에 대한 상세 상황을 모르는 일부 국가들의 표심을 우리 경쟁국에 유리한 쪽으로 자극할 가능성이 있음"이라고 했습니다.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교섭 판세 메시지>라는 챕터에서는 "1차 투표에서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며, 2차 투표에서 한국이 과반을 득표해 유치에 성공할 것임"이라며 "1차 투표에서 약간의 표 차이가 나올 수 있으나, 한국은 이를 만회하고도 남을 정도로 2차 투표 시 지지를 이미 확보함"이라고 했습니다. BIE회원국 주재 우리 외교관들에게 이런 내용으로 '유치교섭'을 하라고 기본 판세 분석 자료를 제공한 겁니다.
 
"(대외비 전제로) 대다수 국가들도 2차 투표에서 유치국이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는 바, 1차 투표 시 경쟁국을 지지한 다수의 회원국이 2차 투표 시 한국을 지지하고 있음"이라며 "사우디를 지지했던 국가들 중 다수가 지지 입장을 변경하거나 2차 투표에서 한국 지지를 표명 중"이라고도 했습니다.
 
결국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가 119표를 얻어 1차 없이 박람회를 유치했고, 한국은 29표를 얻었습니다. 엑스포 유치 역사상 3곳 이상 도시가 나서 투표했는데, 결선 투표도 못 가고 1차 투표에서 개최지가 결정된 것은 역대 처음이었습니다. 이 '판세 메시지' 공문은 "사우디의 120표 이상 확보는 절대 실현 불가능한 것"이라 '판세 분석'을 했으니, 정확한 것이기는 합니다.
 
윤석열 대통이 지난해 11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 관련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이런 터무니없는 자료를 기초로 한국 외교관들이 BIE 회원국 외교관들을 만났을 것을 생각하니, 황당하기 그지없습니다. "(대외비 전제로)"라는 말까지 붙여서 "대다수 국가들도 2차 투표에서 유치국이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는 바, 1차 투표 시 경쟁국을 지지한 다수의 회원국이 2차 투표 시 한국을 지지하고 있음"이라는 대목은 아찔하기까지 합니다. 그 '대다수 국가들', 이미 사우디 지지를 굳혔을 100개가 넘는 그 많은 국가 인사들은 한국 외교관들의 황당한 주장을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문 외교안보 매체 <디플로매트>는 지난해 12월 4일 자 "한국의 세계 엑스포 유치 실패, 처음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사과하도록 만들다"(South Korea's Failed World Expo Bid Sparks President Yoon’s First Apology) 기사에서 "대부분의 외부관찰자들은 리야드가 (다음 엑스포 개최지로) 선택될 것이라고 예상했고 뉴스나 언론 매체의 기사 등도 리야드가 유리하다고 봤다"고 표결 전 상황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와 언론만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한국인들이 이걸 믿었다"며 "집단적 편견, 확증편향에 빠져 있었다"고도 했습니다.
 
당시 상황을 날카롭고, 정확하게 짚어냈지만, 모두 다 정확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부산시쪽에서 "부산은 확실한 2등", "유치 불가능, 출구전략 필요"라는 건의가 이미 그 몇 달전부터 나왔고, 부산 엑스포 유치 작업의 한 축이었던 '글로벌 기업'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망신 코리아'의 증거물인 이 '판세 메시지'의 기본 자료를 제공했을 국가정보원인들 현실을 몰랐겠습니까?
 
그런데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였을 뿐입니다. "아니 되옵니다"라는 말을 누구도 꺼내지 못한 겁니다.
 
정보학 ABC, 수요자가 원하는 정보만 수집·보고
 
이유는 뻔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렇게 만든 겁니다. 최종수요자가 원하는 정보만이 수집·보고된다는 것은 정보학의 ABC입니다.
 
김대남 전 대통령 비서실 시민소통비서관 직무대리가 "(대통령실에서) 옆에서 좀 이렇게 (대통령께 충고) 해주는 사람들 없나?"라는 이명수 <서울의 소리> 기자에게 "얘기해 봐야 괜히 뭐 본전도 못 찾으니 그냥 입 다물고 있는 거지"라며 "전문 경영인이 떠들면 자기가 자기 주장대로 다 해버리니까 다들 입 꾹 다물고 가만히 있지. 자기가 하고 싶은 말 자기가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싶은 말만 하는 거야"라고 답한 대목은, 이에 대한 생생한 실증사례입니다.
 
2022년, 2023년 부산 엑스포 유치 관련 예산은 5744억원에 달합니다. 무형의 피해는 측정하기도 어렵습니다. 한국의 국제행사 유치 역사에서 일찍이 없었던 대참패였습니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사과 한마디로 끝낸 뒤 재벌 총수들을 병풍 세우고 부산을 방문했습니다. 유치 작업을 주도한 박진 외교부 장관과 장성민 대통령실 미래전략기획관은 국민의힘 공천을 받아 총선에 출마하기까지 했습니다. 이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김준형 의원이 '3급 기밀'을 공개했다는 외교부와 국민의힘은 유출 과정을 캐면서 '국기문란'이라고 공격하고 있습니다. '기밀 유출' 논란을 키워 문제의 본질을 덮어보겠다는 꼼수에 불과합니다. 유출 논란은 논란대로 처리하면 될 일이나, 공문이 드러낸 '윤석열 외교'의 적나라한 현실은 그와는 비교할 수 없이 처참합니다.
 
국회 국정조사는 물론이고 감사원 감사를 통해 전모를 밝혀야 합니다. '감사원은 대통령 국정운영 지원 기관"이라는 것이 이 정부의 감사원이니, 이 정부가 안 된다면 다음 정부에서라도 톺아봐야 합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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