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동산에 투자했다가 낭패를 본 사람이 많은데요. 특히 지식산업센터에 투자했다가 손해 본 사례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지산'으로 줄여 부르는 지식산업센터는 쉽게 말해 '아파트형 공장'입니다. 한때 최고의 투자처로 각광받던 지산은 이제 '노후자금의 무덤'이라 불릴 만큼 많은 피해자를 만들고 있습니다. 큰 건물에 다수의 소규모 공장을 효율적으로 유치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수요를 고려하지 않은 과잉공급이 문제였습니다. 어쩌다 지산이 골칫거리로 전락했는지 토마토Pick이 분석해봤습니다.
'공실 지옥'이 된 지산
아파트형 공장은 말 그대로 아파트 같은 건물에 공장이 들어선 형태입니다. 작은 공장만 들어갈 수 있으니, 자연스럽게 제조업처럼 넓은 공간이 필요한 업종은 제한됐습니다. 하지만 수도권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수도권은 어차피 대형 공장에 대한 규제가 심했기 때문에 지산이 좋은 대체제로 각광받았습니다.
일반 오피스 건물과 다른 입지조건도 지산의 매력으로 꼽혔습니다. 3종일반주거지역이나 준주거지역에 지산을 건설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지역 입장에서는 활용도가 낮은 땅에 일자리가 생기는 건물을 지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신도시 역세권에 지산이 많이 들어선 이유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지산이 들어선 곳들이 주거 입지는 비교적 좋지만, 원래 기업들이 있던 자리는 아니었습니다. 지산이 들어서는 규모와 속도에 비해 입주할 기업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공실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경기도 신도시 중에선 고양시 향동지구, 하남시 미사강변도시 등이 이런 경우에 해당됐습니다. 남양주 다산신도시도 주거환경은 좋지만, 과잉공급된 지산은 공실 문제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평택 고덕신도시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고덕은 삼성전자와 연관된 중소기업이 입주할 거란 기대감에 많은 지산이 건설됐지만, 지금은 '공실 지옥'으로 불립니다.
'노후자금의 무덤' 전락
부동산 시장이 호황일 때 건설사는 수도권 곳곳에 지산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중소건설사는 아파트보다 지산을 선호했습니다. 규제를 피해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산은 부동산 대출 규제에서 자유로워 금융권에서 최대 90%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분양권도 전매제한 없이 자유롭게 거래가 가능했습니다. 건설사들이 일제히 뛰어들다 보니, 신도시와 재개발 지역, 역세권 곳곳에서 지산이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고금리 시대가 열리고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서 상황은 급반전했습니다. 분양이 안 되고 공실이 넘치면서 지산이 골칫덩이가 된 것이죠. 완공된 지산을 어떻게든 팔아보려는 건설사들은 분양하우스를 멋지게 꾸미고 '입주할 기업이 많다'고 홍보했습니다. 유혹에 넘어간 투자자들 상당수는 대출을 끼고 노후자금을 합쳐 투자했는데요. 이들 대부분은 입주할 임차인, 즉 기업을 찾지 못해 대출금을 갚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렇게 지산은 '노후자금의 무덤'이 됐습니다. 지산 관련 플랫폼 '지식산업센터114'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수도권 지식산업센터 경매 진행 건수는 290건으로 전 분기(182건) 대비 59% 증가했습니다.
수요 예측의 실패
지산의 비극은 실수요자와 투자자가 불일치하면서 시작됐다고 봐야겠습니다. 건설사들이 실수요자, 즉 입주할 기업이 제한적이라는 점은 고려하지 않고, 일단 투자자에게 판매할 생각만 했던 것이죠. 지산을 분양받은 소유주와 인근 지역주민은 지산에 IT업종이 입주하는 걸 희망합니다. IT업종은 소음이나 분진 같은 공해를 일으키지 않고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창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IT기업은 일부 지역에 밀집해 있고, 그 지역을 중심으로 인력이 모이는 특성이 있습니다. 서울의 4대 업무지구와 더불어 서울의 가산 G밸리, 경기도 성남의 판교테크노밸리가 대표적입니다. 이를 제외한 지역은 IT인재를 모집하기 어렵고, 자연스레 IT기업도 입주를 꺼려하게 되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정에 대한 고려 없이 일단 지산을 지어놓고 IT업종 입주를 바라니, 성공할 리 없습니다.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지산 정도 규모의 대형 부동산을 건설하려면 당연히 지자체의 허가가 필요합니다. 건물을 지으려면 수요예측이 필요하지만 그건 지차체가 간섭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문제였습니다. 법적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지자체는 건설 허가에 부담을 느끼지 않습니다. 심지어 지산 건설이 지자체의 자랑거리이기도 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지자체장은 유휴부지에 지산을 유치하려 애썼습니다. 그래서 심심치 않게 '지식산업센터 유치 성공' 현수막을 볼 수 있었는데요. 지산이 애물단지가 된 지금, 건설을 허가한 행정가는 여전히 아무런 책임이 없고, 피해는 전적으로 투자한 사람의 몫이 됐습니다.
일각에선 투자자, 즉 건물주를 걱정할 필요가 있냐고 반문합니다. 어차피 돈 많은 사람이니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투자자 대부분은 건설사의 그럴싸한 분양 홍보에 넘어간 사람들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노후자금을 투자한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 피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뛰어든 건설사도 위기
지산 문제는 개인 투자자 피해를 넘어 건설사 부도로도 이어졌습니다. 초기에 지산이 돈이 되자 건설사들은 앞다퉈 부지를 매입했고, 대형 건설사는 지산 브랜드까지 만들었습니다. 현대건설은 클러스터, SK건설은 V1, 한화건설은 비즈메트로, 현대엔지니어링은 테라타워 등을 사용합니다. 이렇게 공을 들였지만, 최근엔 지산 건설 계획을 취소하고 손해를 감수하며 부지를 반납하고 있습니다. 충북지역의 중견 건설사 HS건설은 평택 지산 사업에서 발생한 부실채권을 해결하지 못하며 법정관리를 신청했습니다. 업계 16위 태영건설도 서울 성수 지산 PF 대출 연장에 실패해 워크아웃에 들어갔습니다.
정치권에선 지산에 입주 가능한 업종을 넓혀 공실 문제를 해결하자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규제를 완화해 거래 활성화를 노리겠다는 전략인데요. 하지만 정반대의 시각도 있습니다. 오히려 주거용 부동산처럼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지산이 규제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탓에 지금의 문제가 생겼다고 보는 것이죠. 부동산 활황기가 오면 언제든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기 대문에 대출 규제와 전매제한 등 과잉공급과 투기를 막을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