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산업 이대로 좋은가)①화려한 외형 속 내실은 '악화'
입력 : 2012-04-02 15:00:00 수정 : 2012-04-03 08:16:47
[뉴스토마토 정경진·송종호기자] '국내 자본시장 혁신'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형 투자은행(IB) 육성'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갖고 자본시장법이 시행된 지 3년이 지났다. 자본시장법은 2008년 4월 시행령이 입법예고된 시점을 감안하면 올해로 5살이다. 그동안 금융투자업계는 규제완화를 바탕으로 시장규모가 커지는 등 양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하지만 자본시장법을 만들며 구상했던 미래가 현실화되고 있다고 말하는 이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업계의 발전은 정체되고 수익성은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증권산업의 현주소와 향후 개선방향에 대해 5회에 걸쳐 알아본다. [편집자주]
 
국내 중소형 증권사 사장 A씨는 요즘들어 '금융투자업계의 위기'에 대해 끊임없이 강조한다. 자본시장법이 도입된 이후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 업체 수는 급증했지만, 업계의 위상과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오히려 금융투자업계가 특화된 경쟁력을 갖추고 활로를 개척하기보다는 안정된 수익원 찾기에만 골몰하는 바람에 외형 확대에 비해 갈수록 먹거리가 줄어드는 등 속은 곪아터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증권산업이 현재 상태로 방치되면서 제살 깎아먹기식 출혈경쟁만 벌어진다면 결국 공멸을 자초할 것이란 위기감이 대형사와 중소형사를 막론하고 업계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규제완화로 증권산업 외형 급성장
 
현 정부가 자본시장법을 중심으로 규제완화 정책을 시행하면서 금융투자업계는 비약적인 성장을 기록했다.
 
지난 2007년 54개였던 증권사 수는 2011년 62개로 늘어났다. 이 기간에 자산운용사 수는 45개에서 81개로, 투자자문사는 84개에서 153개로 각각 2배 가까이 급증했다.
 
특히 투자자들의 금융자산 증가와 간접투자시장 확대로 인해 자본시장 규모도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00년 연간 2473조원이었던 증권사들의 주식위탁거래대금은 2011년 4335조원으로 75% 이상 증가하면서 지난 10년 동안 국내 증권업에서 가장 큰 수익원이 됐다. 이 기간에 펀드판매 수탁고는 130조원에서 184조원으로 54조원 증가했다.
 
또한 2001년 2조5000억원 규모였던 기업공개와 유상증자 등 주식인수 실적은 서브프라임 사태를 겪은 2008년을 제외한 최근 5년동안 매년 5조원을 웃돌았다. 기업 인수·합병(M&A) 거래대금 역시 2000년대 초반 30조원 규모에서 50조원대로 크게 증가했다.
 
증권사들의 자본력도 크게 증가했다. 2001년 3월 11조원대 였던 증권산업 전체의 자기자본 규모는 2011년 3월 약 34조원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중소형 증권사들의 연간 자기자본 증가율은 25.9%에 달해 같은기간 중대형사 증가율(12.5%)을 크게 웃돌았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금융투자산업실 연구위원은 "자본규모가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중소형사들이 경쟁력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적극적으로 자본력을 확충했다"고 말했다.
 
 
◇수익성 악화…위탁매매 편중 여전
 
이처럼 정부의 금융 규제완화 정책을 바탕으로 증권산업의 외형은 급성장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수익성 악화'라는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다.
 
증권산업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자본시장 규모가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2000년대 중반 20%에 근접하기도 했지만 이후 꾸준하게 하락하는 추세다. 특히 증권산업의 ROE는 2009년과 2010년 각각 8.02%, 7.23%로 크게 낮아졌다.
 
증권산업의 수익성 악화는 한정된 시장에서 벌어지는 출혈경쟁이 대표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자본시장법 제정과 함께 인수합병(M&A)을 통한 대형 투자은행(IB) 등장이나 중소형 증권사들의 통폐합 등에 대한 기대가 높았지만, 당초 기대와 달리 증권사 간의 M&A를 통한 대형화나 통폐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석훈 연구위원은 "많은 증권사들이 경쟁하는 상황에서는 대형사라도 강력한 시장지배력을 구축하기 어렵고 규모의 경제도 이뤄지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증권사 수익구조가 IB 부문에 비해 위탁매매 중심으로 편중돼 있는 현상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주식시장 변화에 민감한 위탁매매 업무는 주식거래 대금이 감소하는 시기에는 증권사의 수익성을 크게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2011년 누적 3분기(4~12월) 증권사 전체 수탁수수료 수입(4조2041억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수수료 수익(6조311억원)의 70%에 육박했다. 반면 같은 기간에 주식인수와 인수합병 등에서 벌어들인 수입은 각각 6.1%, 4.4%에 불과했다.
 
IB 부문의 실적경쟁 심화로 인해 발생하는 증권사 간의 수수료 인하 경쟁도 업계의 수익을 악화시키는 원인이다.
 
   <자료:금융감독원>
 
◇대형 IB 탄생 요원.."M&A 인센티브가 없다"
 
국내 증권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산업구조를 개편하기 위한 경쟁유도 정책과 함께 업계 내에서의 M&A가 원활해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하지만 증권사들이 M&A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통한 대형 IB 출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마다 서로 비슷한 사업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애초부터 M&A를 통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었다"면서 "일부 중소형사의 경우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지 않아도 명맥만 유지하면 된다는 식이어서 경쟁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이석훈 연구위원은 "증권사 1~2개 정도 합병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단기적으로는 합병 움직임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며 "합병을 해서 얻을 수 있는 인센티브가 없고, 시장구조가 자생적으로 변화할 요인도 찾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증권업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통한 대형화를 기대하고 있지만 마땅한 유인책이 없다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많이 늘어난 증권사들이 비슷한 업무를 한다는 문제점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정부가 강제적으로 증권사 간의 합병을 유도할 수는 없고 회사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합쳐지는 게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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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경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