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경제민주화, 쓰나미가 온다!
①재벌그룹들 "지배구조 개선만은 막아라"
입력 : 2012-10-09 16:19:11 수정 : 2012-10-09 16:20:46
[뉴스토마토 김기성기자] 18대 대선 정국이 가열되면서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움직임도 한층 빨라지고 있다. 더 이상 소수 재벌그룹만을 위한 성장 지상주의가 아닌 민생을 함께 아우르는 경제민주화의 기치가 2012년 대한민국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재벌개혁, 특히 지배구조 개선이 있다. 동시에 재계, 특히 개혁의 대상으로 떠오른 10대 그룹의 긴장감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순환출자 금지를 비롯해 출총제 부활, 금산분리 강화, 재벌총수 사면 금지,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 등 경제민주화 방안들이 우리 재계의 체질을 어떻게 바꿀지, 또 이에 맞서 재벌그룹들은 어떤 대응전략을 마련 중인지 살펴본다. [편집자]
 
18대 대선 최대 화두로 떠오른 경제민주화가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여러 변수가 남아 있지만 큰 물줄기는 이미 정해졌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되돌리기엔 성난 민심이 너무나도 부담스럽고, 오히려 목전으로 다가온 대선 일정 탓에 여야 간 속도 경쟁까지 할 정도다.
 
경제민주화 논의가 촉발됐던 지난해 7월만 하더라도 이토록 광풍으로 급변할 줄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당내 경제민주화특위를 출범시키며 불씨를 당겼던 당시 민주당 관계자들조차 "상전벽해"라고 입을 모았다. 18대 국회 절대 과반을 차지했던 한나라당은 예상대로 포퓰리즘 카드를 꺼내들었다. 재계와 보수언론 등 주류세력의 지원사격 하에 그리 어렵지 않게 무마할 수 있다고 여겼다. 오산이었다.
 
◇반전..4·11 총선, 재반전
 
헌법 119조 1항과 2항을 둘러싼 여야 간 논쟁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의해 종지부가 찍혔다. 민심이 선거를 통해 답을 내렸다. 혜성처럼 등장한 안철수 현상도 기존 정당정치 근간을 뒤흔드는 위협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경제민주화를 부채질했다. 무상급식에 이어 경제민주화마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승패가 갈리면서 정책 방향은 결정됐다. 남은 건 수위 경쟁이었다.
 
여당은 과감히 기존의 외투를 벗어던졌다. 변화된 모습을 보이지 않고서는 존폐 자체를 보장할 수 없었다. 당내 쇄신파가 열어젖힌 공간으로 박근혜가 자리를 틀었다. 마지막 패였다. 말을 갈아탄 여당은 당 간판마저 끌어내렸다. 절대권력 행사 속에 김종인이 합류했다. 경제민주화 입안자로, 사실상 비즈니스 프렌들리와의 결별이었다. 더 이상의 시장 지상주의는 없었다.
 
이어지는 4·11 총선은 경제민주화의 장(場)이었다. 여야는 한목소리로 경제민주화 적임자를 자처했다. 청와대 비호 아래 몇몇 재벌그룹에 집중됐던 부는 피폐해진 민생과 대조되면서 부메랑이 됐다. 이 대통령이 공언했던 낙수효과는 고사하고, 대기업의 사내 유보금만 쌓이는 부의 편중이 심화되면서 양극화는 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가계부채에, 실업난에, 고(高)물가에, 집값폭락에, 전·월세난에, 보육문제에 민생이 온통 시름이었다.
 
◇대기업 횡포에 성난 민심 "재벌개혁" 요구
 
계열사엔 일감을 몰아주면서 중소기업에겐 납품단가를 후려치는, 가격담합 등 불공정 행위를 서슴지 않으면서 공정위 조사마저 거리낌 없이 방해하는, 심지어 돈이 된다면 동네빵집 등 골목상권마저 유린하는 대기업의 무분별한 행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상생은커녕 총수 일가의 안녕이 최우선이었고,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가 성행하면서 여론이 들끓었다.
 
◇여야 재벌개혁 입법발의안 비교 분석 <자료=뉴스토마토 정리>
 
정치권의 논의는 당연히 재벌개혁으로 초점이 맞춰졌다. 특히 경제민주화 어젠다를 빼앗기며 여권에 일격을 당했던 야권이 당력을 총결집했다. 지배구조 개선이 핵심으로 떠올랐다. 1% 내외의 지분으로 전 계열사를 좌지우지하는 총수 1인 지배구조 체제가 주적이 됐다. 삼성, 현대차, SK 등 10대 그룹으로 칼끝이 겨눠졌다.
 
경제민주화 광풍 속에 출범한 19대 국회가 12월 대선 일정을 염두에 두며 경제민주화 법안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새누리당은 김종인의 엄호 속에 당내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 순차적으로 법안 발의에 나섰다. 출자총액제한제 부활을 제외한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강화, 연기금 주주권 행사, 총수 사면 제한 등 손댈 수 있는 내용들은 모두 꺼내들었다. 후퇴는 곧 중도층의 표 이탈을 의미하기 때문에 박근혜 후보로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란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민주통합당은 가히 전 분야에 걸쳐 강도 높은 경제민주화 법안들을 쏟아냈다. 여당과의 차별화를 위해 강경 노선이 한층 짙어졌다. 단일화 대상인 안철수 후보마저 경제민주화를 기치로 내건 이상 접점 찾기를 위해서라도 화두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문재인 후보는 머뭇거리는 박 후보와 달리 연일 재벌개혁에 대한 의지를 재천명했고, 당 또한 일사불란하게 지원 태세를 갖췄다. 결국 승부처는 중도층 표심이 걸린 경제민주화로 모아졌다.
 
◇엎드린 10대 그룹.."지배구조 개선만은 막아라"
 
정치권의 칼끝이 제 모습을 드러내자 해당 그룹들은 각자도생으로 대응 태세를 꾸렸다. 갓 출범한 19대 국회는 물론 새로 탄생할 정부를 애써 자극하는 무리수를 두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작용은 반작용을 불러오는 법. 힘들여 맞서기보다 적정한 주고받기를 통해 위기를 타개해 나가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또 각 그룹이 마지노선으로 설정한 사안도 각기 달라 한 곳에 목소리(이해)를 집결시키지 않는 측면도 있다.
 
실제 삼성과 현대차는 경영권 승계 작업의 안정적 마무리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양 그룹 관계자들에 따르면 순환출자 금지의 경우 기존 출자까지 소급 적용하는 야당 안(案) 대신 여당 안대로 신규 출자에 제한을 가하는 선에서 마무리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이 경우 의결권 제한만은 피해야 할 경계대상이다.
 
예상을 뒤엎고 야당 안이 관철될 경우 타격은 현대차에 집중될 전망이다. 삼성의 경우 축적된 이건희 회장 일가 재산에 지주사 역할을 담당할 삼성에버랜드에 대한 지분 승계 작업도 마무리됐다. 반면 현대차는 현대모비스가 지주사 역할을 감내할 수밖에 없고, 이 경우 15조원에 육박하는 천문학적 자금 마련을 통해서만 경영권 안정을 가져올 수 있다. 정몽구 회장과 아들 정의선 부회장의 고민이 깊어지는 대목이다.
 
대신 삼성은 금산분리 강화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이 경우 삼성생명을 중간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해야 하는데, 지배구조의 근본적 변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의외로 이재용, 이부진, 이서진 3남매의 그룹 분할을 재촉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은 현재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법무팀에서 각각의 시나리오를 마련 중에 있으며, 법안이 가닥을 잡을 경우 별도의 TF 전담팀을 꾸릴 것으로 전해졌다.
 
SK와 한화의 경우 발등에 떨어진 불이 급선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법정 구속된 것은 올해 재계의 최대 충격이었다. 사령탑을 잃은 한화는 총수 부재에 따른 투자 위축 등 갖가지 부작용을 강조하며 '회장님 구하기'에 전력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달 결심 공판을 앞두고 있다. 김 회장이 앞서 같은 혐의로 구속된 데다 정치권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이 강도를 달리 하면서 그룹 전체를 옥죄고 있다.
 
이외 롯데, 현대중공업, 한진 등 나머지 10대 그룹들도 저마다의 과제를 안고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움직임을 노려보고 있다. 롯데는 복잡하게 얽힌 지배구조 탓에 순환출자 금지에, 한진은 대규모 차입이 뒤따를 출총제 부활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일찌감치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LG그룹만이 유일하게 리스크에서 한발 벗어나 있다.
 
◇경제민주화 수위, '민심의 명령'이 관건
 
10대 그룹들이 각자 염려하는 중점 법안들을 집중 해부하는 동안 전경련, 대한상의 등 경제5단체들은 시간벌기와 함께 여론전으로 맞서는 형국이다. 문제는 민심과 동떨어진 기존의 반론만을 재탕하는 탓에 여론만 더 악화된다는 데 있다. 되레 반기업 정서를 부채질하는 악재로 작용한다는 게 전문가들 중론이다.
 
실제 경제5단체들은 여전히 투자 및 일자리 위축을 이유로 정치권에 협박을 쏟아내고 있으며, 최근에는 경제위기를 틈타 성장 일변도로 회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규제 완화 주장 또한 이들의 단골메뉴다.
 
정치권과 재계의 정면충돌이 불가피해지자 일각에선 장하준 교수의 대타협론(재벌그룹 지배구조는 인정하되 타협의 결과물로 재원을 마련하고, 이를 복지국가 토대로 삼자는 주장)을 실현 가능성을 들어 중재안으로 꺼내들고 있다. 가능성은 지극히 낮지만 대선 결과에 따라 제3의 카드로 급부상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의 재벌개혁 칼날이 명확한 실체를 드러내기까지 재계가 물밑에서 절충점을 찾는 동시에 동반성장과 상생, 투자 및 고용 확대 등 내줄 수 있는 당근을 고루 제시하며 입법 움직임을 무디게 할 것으로 내다봤다. 결국 대선을 70여일 앞둔 현재 칼자루는 정치권에 쥐어졌으며, 이는 민심에 의해서만 수위와 대상이 조정 가능해졌다.  
  
정치와 자본이 성난 민심의 요구대로 오래된 결탁을 끊고 관계를 정상화할 지는 이번 대선이 좌우할 전망이다. 협력과 견제가 상존하는 긴장관계가 모범답안이다. 관성을 견제하는 역할 역시 여론에 달렸다. 재계 지도의 변화는 부차적인 결과물일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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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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