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축구협회, '팀보다 위대한 기성용' 만들고 명예 잃어
입력 : 2013-07-11 09:31:12 수정 : 2013-07-11 09:34:13
[뉴스토마토 이준혁기자] 앞으로 대한민국 축구계에서는 국가대표 코칭스태프나 대선배를 조롱할 지라도 추후 사과문 한 장 올리면 없던 일처럼 모두 감출 수 있게 됐다. 이미 유명한 공인 선례도 생겨 설령 과거에 비해서 훨씬 나쁜 징계가 내려질 경우 형평성 논란을 제기해볼 여지도 생겼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10일 '기성용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파문'의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이번에 발표된 입장은 허정무 협회 부회장 이하 부회장단과 분과위원회 위원장들이 모두 참석한 임원 회의를 통해서 결정된 것이다.
 
협회는 회의 이후 발표한 입장 보도자료를 통해 "최근 SNS를 통해 개인적인 견해를 밝혀 물의를 일으킨 기성용 선수의 건과 관련해 국가대표선수 관리와 관련된 책무와 소임을 다 하지 못한 것에 대해 겸허히 사과드린다"고 전했다.
 
이어 "물의를 일으킨 기성용 선수는 사과와 반성의 뜻을 밝혀왔다"며 "국가대표팀에 대한 공헌과 그 업적을 고려해 협회 차원에서 엄중 경고 조치하되, 징계위원회 회부는 하지 않기로 했다"고 이번 파문에 대한 입장을 짧게 밝혔다.
 
결국 기성용이 물의를 일으킨 것은 맞지만 그동안 대표팀에 공헌했던 바가 있기에 그냥 덮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의 공헌이 있다고 징계위 회부조차 덮는 것이 온당할까?
 
잘못한 것이 있으면 응당 그것에 대한 처벌을 받음이 맞고, 설령 용서하게 되더라도 관련 절차를 거친다. 더불어 그러한 징계는 조직 내부에서 해당 구성원의 과거 공헌도와 무관하게 사안 자체로서 객관 평가됨이 맞다.
 
또한 개별적 외부 변수로 사람의 차등을 두지 말아야 한다. 공정한 관련 절차를 통해 처리해 이를 누구든지 수긍할 수 있도록 징계해야 한다. 정상적인 공적 조직이면 당연히 그래야 하며 대다수 조직에서는 그렇게 한다.
 
협회가 밝힌 것처럼 SNS를 이용한 분란 조장은 대표팀의 역사상 처음이다. 그런데 협회는 향후 이같은 사례 처리의 선례가 될 이번 파문의 처리에 있어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기성용은 조국을 위해 뛰도록 선택받은 대표팀 선수다.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한국을 대표하는 경기에 나서 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선수이며 앞으로도 계속 자랑스런 태극기를 달고 경기에 나설 일이 많은 선수다. 더군다나 주전이다.
 
기성용이 만약 소속팀에서 현재 논란이 되는 행동을 저질렀다면 협회가 나서 벌줄 필요는 없다. 국가대표팀의 구성원 중 하나로 국가대표팀의 기강을 흔들었고 지휘관을 조롱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상황과 논란이 발생한 것이다.
 
그는 SNS를 통해 "다음부턴 그 오만한 모습 보이지 않길 바란다. 해외파 건들면 다친다"는 말을 여과없이 사용해 대표팀의 파벌을 조장하며 팀내 분란을 획책했고 감독을 조롱하며 훈계했다. 더불어 대표팀 실력을 다른 나라의 2부리그 기량과 맞춰 비교해 한국의 축구와 대표팀의 명예를 훼손했다.
 
게다가 사과문 이후 다시 SNS를 통해 시를 올리며 주변을 간보는 모습도 보였다. 이석희 시인의 시 '누가 그랬다'를 올린 것이다.
 
"누가 그랬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고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고. (중략) 누가 그랬다.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그저 덜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안아주는 거다"는 시의 내용을 통해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는 등 논란을 더욱 확산시켰다.
 
결국 축구팬 사이에 시의 해석본(?)이 떠도는 등 논란은 이상한 방향으로 커졌고, 협회와 대표팀의 모양새도 상당히 우스워졌다.
 
그럼에도 협회는 현재 사태를 덮는 데에만 급급했다. 협회 스스로 기성용의 행동이 각종 물의를 만든 잘못임을 지적하면서도 정상참작 등을 논했다. 한국 축구 전체, 그리고 미래에 벌어질 상황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섣부른 결정이다. 축구계 내부를 제외한 많은 사람의 비난 의견이 폭주했던 원인이다.
 
이번 협회의 '무징계' 결정은 나쁜 선례로서 작용할 가능성이 상당히 다분하다. 선수 인선과 기타 각종 불만에 대해 개인 SNS에 글을 남겨도(은유적인 문구로 글을 남겼을 경우라면 더욱) 협회의 징계 명분은 없어졌기 때문이다.
 
결정의 이면에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를 상세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덜 아픈' 협회는 '더 아픈' 상황을 주장한 기성용을 품에 안으며 국민들의 비난을 대신 떠안았다. 그리고 협회는 공정성과 명예를 잃었다.
 
협회의 운영 규정 13조에 명시된 '선수의 의무' 항목은 "대표 선수로 품위를 유지하고 선수 상호 간의 인화단결을 도모할 것"이라고 정의한다. 12조는 대표팀과 축구인의 명예를 실추시킨 선수에게 최소 1년 출전 정지부터 최대 제명까지 징계를 하도록 돼있다.
 
단순 몇 경기 출전 정지도 아닌 상당히 중한 징계가 관련 규정으로 이미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를 완전히 뭉개버릴 정도로 더욱 중요한 뭔가가 존재했던 것일까? 더불어 단순히 성적만이 최고인 것일까?
 
대표팀 감독 기자회견 당시 홍명보 감독이 내세운 슬로건 '하나의 팀, 하나의 정신, 하나의 목표(One Team, One Spirit, One Goal)'은 이번 조치로 인해 빛이 바랬다. 기성용은 이미 팀보다 위대한 선수가 됐다. 협회는 이를 방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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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준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