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노동시장 구조개편의 출발점
입력 : 2015-05-25 18:00:00 수정 : 2015-05-25 18:00:00
노동시장 구조개편을 위한 노사정 대화가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무산됐다. 노사정위원장은 사의를 표명했고, 협상의 각 주체들은 합의 결렬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꼴사나운 모습이다.
 
협상에서 논의된 각종 사안들이 고용노사관계의 핵심 의제라는 점에서 대화 실패의 원인을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구조개편에는 공감했지만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한 이유는 노사정간 비전 공유 및 상호신뢰의 부족에 있다. 노사정 각 주체들은 노동시장 구조개편에 따른 미래 전망에 대한 공동의 비전을 갖지 못했다. 비정규직 및 간접고용 노동자의 급증, 기업 규모별 임금격차의 확대, 청년실업의 원인을 다르게 진단했고 ‘제 논에 물대기 식’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경영계는 규제 완화와 노동 유연화라는 구식 레퍼토리만 반복할 뿐 책임 있는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최저임금 인상은 영세자영업자의 몰락을 가져온다고 반대하고, 비정규직 규제는 시장경제의 원리에 반한다고 노동계를 몰아세웠다. 노동시장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모든 정책에도 수세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노동계도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자원의 불균등 배분, 경제성과의 집중과 독점이 노동시장 양극화의 원인이며 경제민주화가 궁극적 해법이라고 구조 개혁을 강조했지만 노동 내부의 격차 해소를 위한 연대임금정책에는 인색했다.
 
노사관계의 자율적 조정기제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질서를 바로 잡는 역할은 정부의 몫이다. 그러나 노동시장 개혁을 주창한 정부의 태도는 어정쩡했고, 노사 중립이라는 기계적 균형론에 빠졌다. 정부의 정책 방향은 시간이 갈수록 경영계의 목소리와 같아졌다. 상시 지속적인 일자리에도 비정규직을 남용하고, 불법파견의 제공자인 기업을 단죄하지 못한 정부가 거꾸로 비정규직 확산의 주범으로 정규직노동자를 지목했다. “정규직이 과보호돼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기업들이 겁이 나 정규직을 못 뽑는다.”는 경제부총리의 발언은 이를 웅변한다.
 
결국 정부의 칼날은 과보호된 노동자들의 보호 시스템 해소에 집중된다. 비정규직 종합 대책은 비정규직의 사용기간을 4년으로 연장하고, 고령자의 파견업종을 전면 확대하는 것이다. 왜곡된 현실 진단은 잘못된 처방을 낳았다. 경영계에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정부 정책의 기계적 균형은 현상 유지거나 개악으로 귀결된다. 한국 사회의 노동 문제는 노사 양측의 생각을 절충해서 해소할 수 없는 ‘곪아터진 종기’기 때문이다.
 
노동시장 개혁은 현 상황에 대한 공동의 인식과 진단에서 출발해야 한다. 빈부격차 심화, OECD국가 중 최고 수준의 저임금노동자 비중, 비정규직 고용이 일반화된 고용불안정, 세계 최장 노동시간 등은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의심케하는 고용노동의 현실이다.
 
이제 대화는 정부와 기업의 선도적인 실천에서 시작돼야 한다. 그 방향은 경제생태계의 분수효과(fountain effect)와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의 결합에서 찾아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 등 저임금노동자의 실질임금 증가 정책이 분수효과의 핵심 정책이라면, 대기업이 만든 경제성과를 대·중소기업 상생을 통해 국민경제 전체로 확산시키는 것이 낙수효과다. ‘손바닥도 부딪혀야 소리가 난다’고 노동개혁은 권한을 갖고 있는 대기업의 고통분담과 솔선수범에서 시작돼야 한다. 노동개혁의 목표는 전체 국민이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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