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노동개혁 논란)'독일 하르츠 개혁' 유연화만 닮고, 사회안전망은 외면
독일, 노동 유연화로 실업률 낮췄지만 노동시장 양극화
'유연안정성' 모델 배우려면 사회안전망부터 갖춰야
입력 : 2015-08-19 11:05:24 수정 : 2015-08-19 11:05:24
"독일은 노사간 협력관계 구축과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등의 개혁을 이뤄내 국내 투자와 고용을 늘리는 데 성공했고, 이제는 유럽 최강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일 대국민 담화에서 "노동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대통령은 2000년대 초반 독일의 노동시장 개혁인 '하르츠 개혁'을 모범사례로 꼽는다. 독일은 한때 400만명이 넘었던 실업자 수를 반으로 줄이고, 고용률 70%를 기록했다. 단시간 노동 확대와 노동시장 규제 완화를 통해서였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말은 반만 맞고, 반은 틀리다. 독일은 탄탄한 사회안전망과 복지로 '노동 유연화'의 충격파를 흡수했기 때문이다. 그같은 절반의 진실을 감춘 채 겉으로 드러나는 조치들만 끌어오고 있는 것이다.
 
독일 경제는 1990년대 통일과 유로 단일 화폐 도입 등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높은 실업률과 재정적자가 이어졌고, 경기는 침체일로를 걸었다. 1998년 정권 교체를 이룬 사민당 정부가 '신중도' 노선을 표방하며 작은 정부와 기업 친화적 정책을 내세운 이유다.
 
2003년 3월 당시 슈뢰더 총리는 노동·복지 개혁안인 '아젠다 2010'을 꺼내든다. 정리해고 요건 완화, 실업수당 삭감, 연금제도 개혁 등 대수술에 들어갔다. 여기에는 자동차 회사 폭스바겐 노무담당 이사였던 페터 하르츠를 위원장으로 한 '하르츠 위원회' 법안도 포함됐다.
 
하르츠 개혁의 핵심은 노동 유연화다. 노동 유연화는 노동시장이 경제 여건에 대응할 수 있도록 고용, 임금, 노동시간 등에 변화를 주는 것을 말한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만큼 인원을 늘리거나 줄이고, 파견노동 등으로 고용을 조절하는 식이다. 성과를 바탕으로 임금을 달리 주는 방식도 해당된다. 독일은 하르츠 개혁으로 해고 규제를 완화하고, 실업급여는 줄였다. 대신 시간제 일자리를 크게 늘렸다. 독일의 시간제 고용 비중은 지난 1991년 11.8%에서 지난 2011년 25.7%로 2배 이상 많아졌다.
 
독일 경제는 세계 금융 위기에도 성장세를 달렸지만, 불안 요소도 곳곳에 숨어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지난 2월 '2015년 독일 노동시장 전망'에서 "독일 노동시장은 전반적으로 양극화가 심화된 모습을 보여준다"며 "50만명 이상의 생산가능연령 인구가 노동시장에서 영구 배제되고, 약 250만명이 낮은 소득 또는 고용불안정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네덜란드도 실업 문제가 떠오르면서 1980년대 초반 '네덜란드 병'을 겪었다. 경제활동 인구의 14%인 80만명이 실업자였고, 복지 지출도 크게 늘어났다.
 
네덜란드는 1982년 사회적 대타협인 '바세나르 협약'으로 이를 극복했다. 노사 자율로 협조적 노사관계를 약속했고, 정부는 고용 정책으로 이를 뒷받침했다. 시간제 노동, 즉 비정규직을 대폭 늘리며 1980년대 실업난을 이겨낸 것이다. 네덜란드에선 전체 노동자의 3분의 1가량이 시간제로 일할 정도다. 하지만 비정규직 차별은 없다. 일하는 시간만 다르고, 급여와 복지는 정규직과 차이가 없다. 이른바 '유연 안정성' 모델이다.
 
유럽연합(EU)은 지난 2006년 '유연 안정성'을 새로운 사회경제 모델로 정했다. 덴마크가 대표적이다. 덴마크는 유연한 노동시장을 사회보장과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으로 떠받친다. 해마다 전체 노동인구의 30% 정도가 일자리를 잃었을 정도로 해고가 쉽지만, 4년 동안 실업수당을 받고 직업훈련 프로그램도 활발하게 가동된다. 일자리보다 사람을 보호하며 위기에 대응하는 것이다.
 
한국은 이들 나라와 절반만 닮았다. 평균 근속기간은 5.6년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짧다. 반면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은 가장 낮다.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노동자는 14.7%에 달한다.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은 "독일이나 네덜란드와 달리 재벌이 경제를 독식하는 한국에선 노사가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는 것을 기대하기 힘들다"며 "노동자들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할 정도로 비정상적인 경제 상황에서 대기업이 고용을 늘리고, 공정한 경쟁으로 기업 생태계부터 뿌리내리면서 사회안전망을 갖춰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순민 기자 soonza00@etomato.com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 '하르츠 개혁'을 모범사례로 꼽으며 노동개혁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박 대통령이 지난해 3월26일 독일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후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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