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클래식 길잡이, 이보다 친절할 수는 없다
입력 : 2015-08-28 15:25:48 수정 : 2015-08-28 15:25:50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클래식 음악에 대해 좀더 깊이 알고 싶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도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단 어려운 암호명처럼 느껴지는 클래식 음악 곡의 제목부터 커다란 장벽으로 다가오곤 하지요. 요즘 음악들에 비하면 길이도 대부분 깁니다. 어디선가 배경음악으로 접했다가 마음에 들어 막상 곡을 찾아보면 전체를 다 듣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이래저래 클래식 음악은 시간 여유가 많은 호사가들을 위한 음악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클래식 400년의 산책: 몬테베르디에서 하이든까지(이채훈 지음, 호미 펴냄)>는 그런 분들의 클래식 감상 재도전을 위한 맞춤형 책입니다. 클래식 음악에 대해 소개한 책 중에 이렇게 쉽게 다가오는 책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대중적입니다. 저자는 PD 출신 클래식칼럼니스트 이채훈입니다. 문화방송에서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시리즈를 연출했던 교양 PD 출신인데요. 다수의 클래식 음악 다큐멘터리를 만든 경력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학교 1학년 시절부터 클래식에 푹 빠져 지낸 클래식 애호가라는 점이 믿음직스럽습니다. 단단하게만 느껴지는 클래식 음악의 겉껍질을 솜씨있게 도려내고 영양가 있는 속살만을 속속 골라내 보기 좋게 독자에게 진상하는 이 책으로 가을의 문턱에서 다시 한 번 클래식 음악에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야심차게 기획된 세 권짜리 책 중 제1탄
 
권두에 최승호 뉴스타파 앵커가 쓴 추천의 글이 흥미롭습니다. MBC 해직 PD인 최승호는 자신의 헛헛한 마음을 달래줄 음악을 찾다가 저자에게 클래식 음악에 대한 조언을 구합니다. 놀랍게도 저자는 자신이 써주겠다고 답했다는데요. 이 책은 그런 취지로 썼던 쪽 원고들을 모아 엮어낸 책입니다.
 
저자에게 집필 계기를 좀더 자세히 물었더니 "최승호 PD가 클래식을 듣고 싶다고 하는데 입문서로 추천할 게 마땅치가 않아 '이거 한 곡 들어보렴' 하는 식으로 써나가기 시작했는데 쓰다보니 책으로 내도 되겠다 싶었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클래식을 모르는 사람한테 불특정 다수보다 친구가 옆에서 얘기해주듯 하면 더 잘 들어오거든요. 옆에서 들으면서 이야기하고 들려주는 식으로 쓴 거죠."
 
어쩌면 가볍게 끄적인 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책 본문을 읽는 순간 사라집니다. 이 책은 우선 몬테베르디부터 하이든까지 다룹니다. 최초의 오페라라 일컬어지는 <오르페오>를 작곡한 몬테베르디를 시작으로 카치니, 코렐리, 파헬벨, 비탈리, 마르첼로, 알비노니, 비발디, 페르골레지까지 바로크 시대의 거장들의 음악이 차례로 소개되는데요. 바흐와 헨델에게는 각각 '거대한 바다', '런던의 슈퍼스타'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좀더 많은 분량을 할애해 서술합니다.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도 빠질 수 없습니다. 타르티니, 글루크, 모차르트의 작품도 살짝 맛보기로 곁들여지면서 바로크 음악가들과 그들의 세계관에 대해 차근히 설파해나갑니다. 앞으로 나올 2권에서는 베토벤과 모차르트를 조명하고, 3권에서는 슈베르트를 시작으로 19세기부터 20세기의 작곡가들을 다룰 예정이라고 하네요. 책에서는
 
사실 음악보다 음악에 대한 이야기,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이야기에 더 방점이 찍혀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쓰다보니 MBC 파업에 대한 현실 비판적인 내용까지 들어가게 됐는데 해고되면서 파업을 격려하는 내용으로 확장됐어요. 그러다 보니 같은 시대의 아픔을 안고 사는 사람들로 이야기가 확장되면서 위로하고 치유하는 쪽으로 글 자체가 말하자면 진화를 했죠. 해고 이후에는 음악을 통해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으로 제 정체성을 설정하게 되더라고요. 2년 남짓의 시간 동안 생각의 변화가 있었던 거죠." 저자는 클래식 감상의 노하우를 설파하기 보다는 독자를 위해 클래식 감상에 도움이 되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클래식 음악의 치유 기능에 대한 저자의 굳은 믿음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의 장점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음악 외에 음악 주변을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기에 클래식에 대해 호기심만 있다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인데요. 특히 QR코드나 유튜브 같은 매체를 적극 활용해 음악을 손쉽게 들으면서 책을 읽어나가도록 구성한 점이 돋보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의 책읽기가 가능합니다. 책의 한 챕터를 펴놓은 다음 모바일이나 PC로 QR코드를 읽어내거나 유튜브 주소를 입력해 두고 연주실황 음악을 재생합니다. 그리고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어내려가는 건데요. 책을 들여다보다가 연주실황을 들여다보다가 하면서 책 제목 그대로 마치 산책하듯 음악 안에서 노닐 수 있습니다.
 
저자 이채훈의 경우 "내가 확실히 좋아하고 확실히 아는 것을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썼다"는 것을 자신의 책의 강점으로 꼽았습니다. "전문가들이 아무래도 깊이가 훨씬 있겠죠. 하지만 전문가들의 경우 자기 영역을 벗어나기가 사실 어렵습니다. 다양한 통섭적 사고를 하는 것은 어쩌면 아마추어의 권리라고도 볼 수 있고, 또 개인들이 그렇게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됐기도 하죠. 각자도생이라고, 자기 머리로 스스로 통섭해야 살아갈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게 사실 음악 이야기를 하는 데도 어느 정도 통하는 것 같아요." 엄격한 기준 아래 음악을 평가하며 듣는 마니아보다는 '음악을 아는 게 인간과 세상을 아는 것과 같아져야 한다'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시는 분들께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김나볏 기자 freenb@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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