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제, 주권자가 나서야 한다
입력 : 2015-12-30 06:00:00 수정 : 2015-12-30 06:00:00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진실된 사람’이 되라고 부탁한 대통령이 있다. 우여곡절 끝에 열린 세월호 참사 1차 청문회에서 우리도 진실된 사람을 보고자 했다. 하지만 청문회의 어디에도 대통령과 여당은 없었다. 공영방송 조차 생중계를 외면했다. 특히 진실됨은 고사하고 뻔뻔함으로 일관한 우리 공직자들의 언행은 실로 경악스러운 것이었다. 그런 청문회를 보며 우리는 진실과 양심의 가치에 대하여 회의한다.
 
미국 9.11 테러 진상조사위원회는 1년 8개월 동안 1200명이 넘는 사람을 만났고, 총 12차례의 청문회를 열었다. 여러 한계를 드러냈다는 비판이 있지만, 부시 대통령을 비롯해 체니 부통령, 럼스펠드 국방장관, 콜린 파월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까지 전현직 고위 정부인사가 모두 조사를 받거나 증언대에 서야만 했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리처드 클락 백악관 대테러 수석보좌관의 진술이었다.
 
“제가 마침내 9.11 테러 희생자의 가족과 연인들에게 사과드릴 수 있는 자리라는 점에서 청문회에 기쁜 마음으로 임합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과 TV로 보고 계신 여러분, 우리 정부가 여러분을 실망시켰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실패했습니다. 모든 사실이 드러날 때 여러분의 이해와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그의 겸허한 고백이 유족들에게도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애들이 어려서 철이 없어 그런지 위험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고 말하는 해경과 “내가 신이냐”고 반문하며 “저의가 무엇이냐”고 따지는 해경을 보았다. 대통령에 의하면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한결같은 이가 진실된 사람"이다. 저들은 한결같이 참회하지 않는다. 참으로 ‘진실된’ 사람들이다. "무엇을 취하거나 얻기 위해서 마음을 바꾸지 말고 일편단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대통령의 당부를 의식했을까? 이들은 누군가 가르치기라도 한 듯 일제히 입을 맞추어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을 반복했다.
 
"정말 간절히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면서, "누에가 나비가 돼 힘차게 날기 위해서는 누에고치라는 두꺼운 외투를 힘들게 뚫고 나와야 하듯이, 각 부처가 열심히 노력하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것도 이룰 수 있다"고 주문한 대통령이 있다. 아마도 우주의 도움을 받으면 누에가 나방이 아닌 나비로 변하는 창조경제가 성취될 수도 있다는 뜻일 테다. 유족들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정말 간절히 원한다. 그런데 진상 규명을 위해 각 부처가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은 찾을 수 없다. 더구나 그 유명한 ‘대통령의 7시간’이란 철갑은 더욱 단단해져만 간다.
 
현대 민주주의의 요체가 된 권력분립 원리는 결국 법의 지배를 가장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19세기 후반 서구헌법을 연구한 일본에서는 3권을 입법, 사법, ‘행법’으로 번역했다. 얼마 뒤 행법은 ‘행정’으로 변했다. 구체적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법 집행의 현실을 고려해서 일종의 융통성을 부여한 것이다. 이런 해석은 나름 의미있는 것이지만, 3권은 솥발처럼 정립(鼎立)하지 못하고 행정우월, 행정만능의 폐해를 낳았다. 여기에 극단적 국가주의가 결합하면 파쇼가 된다. 오늘 우리의 현실이 우려스러운 이유다. 적법절차 준수와 국민의 인권보장이라는 민주 법치행정의 요체는 빈껍데기가 되어간다.
 
1972년부터 15년간 미 연방대법관을 지낸 루이스 파월은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군인과 법률가가 세상을 움직인다’는 걸 배웠다고 했다. 그의 견해는 5. 16 쿠데타 이후의 한국 사회에서 그대로 꽃을 피웠다. 전두환 시절의 ‘육법당(陸法黨)’이 사라진 줄 알았던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군인과 법률가는 다시 세상을 좌우한다.
 
교수들은 박근혜 시대의 사자성어로 2013년 도행역시(倒行逆施)를 고르더니, 2014년 지록위마(指鹿爲馬)에 이어 2015년 혼용무도(昏庸無道)를 골랐다. 아무리 진리와 정의, 양심과 진실의 실종을 통탄해도, ‘진실된 사람’으로 포장된 총신(寵臣)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긋난 길을 달린다. 가히 주군(主君)만을 위해 달리는 주구(走狗)라고나 할까.
 
이제 이 땅에 민주주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건 오롯이 주권자의 몫이 되었다. 다 함께 부지런히 누에고치를 뚫고 나와 아름다운 꽃과 밝은 빛을 찾자. 3년이 지나는 지금, 저들이 보인 그간의 행각을 보니 분명 그런 기운이 온다. 바쁜 벌꿀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지 않았던가. 전 우주가 나서기 전에 우리가 먼저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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