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인사이트)미국, 획일적인 평준화교육 대신 자율성 택했다
오바마, 기존법 폐단 줄인 새 교육법안 서명…페이스북 등 민간기업 학교 개혁에 동참
입력 : 2016-01-14 14:53:37 수정 : 2016-01-14 15:12:18
지난달 1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상원의회에서 85대 12의 압도적 표차로 통과된 '모든 학생 성공법(Every Student Succeeds Act)'에 서명했다. 획일적 평준화를 표방했던 '낙제아동 방지법(No Child Left Behind)'을 대체할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마련한 것이다. 새 교육법안은 학생과 학부모들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쪽에 방점을 뒀다. 지난 10여 년 간의 교육 실험이 사실상 실패했음을 인정한 셈이다.
 
미국, 낙제아동방지법 대신할 새 교육법 마련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 제정된 '낙제아동 방지법'은 학업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을 최소화하자는 좋은 취지로 시작됐다. 전국의 5000만여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동일한 내용의 표준 시험을 매년 치르고 이를 근거로 학생과 교사, 학교를 평가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했다. 읽기와 산수 등 특정 과목으로 실력을 평가하는 시험에 낙제자가 줄어들기는 커녕 등교를 거부하고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늘어난 것이다. 낙제 학생들이 대부분 저소득층과 이민자 자녀들이었던 탓에 불평등도 더욱 심화됐다. 시험 성적이 유일한 평가 잣대인 까닭에 교사들은 인성교육이나 창의교육 대신 시험 준비에 더 몰두했다. 우수 학생에 대한 차별화된 교육은 뒤로 미뤄두고 낙제 학생 성적 향상에만 집중했다.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획일적 평준화 대신 학생과 학부형의 자율성을 더 강조하는 새 교육법안에 서명을 했다. 사진은 미국 오클라호마시티 부차난초등학교 학생들이 컴퓨터를 이용한 수업을 듣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AP
 
새 교육법안은 이 같은 폐단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5000만 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례 시험은 유지하지만, 이를 통해 교사들을 평가하고 학교에 대한 제재나 지원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지양키로 했다. 낙제 학생을 줄이기 위한 당초 목표에 맞춰 시험 결과를 지역별, 소득별로 상세히 분석해 시험결과가 좋지 않은 학생은 공적·사적 보충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저소득층의 경우 별도의 교육비도 지원한다.
 
이와 함께 연방정부가 주로 갖고 있던 공교육에 대한 권한을 주정부로 상당 부분 이관했다. 교육 목표나 평가기준, 성취도 향상 등에 대한 의사 결정 대부분을 주정부와 산하 교육구가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했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주소지에 따라 학교를 배정받는 것 말고도 특성화 공립학교인 '차터스쿨'에 지원할 수도 있다. 차터스쿨은 저소득층 특화, 영재교육 특화, 인성교육 특화 등 다양한 형태로 구성돼 있다.
 
공교육 강화 위한 10년 노력 결실
 
미국의 새 교육법안은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시행해 온 교육 개혁의 연장선상에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공교육 수준 향상을 주요 정책 목표 중 하나로 삼았다. 이는 취임 첫 해 연설에서도 잘 드러난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모든 아이들이 태어나는 그 날 부터 직장을 구할 때까지 완전하고 경쟁적인 교육에 접근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미국 학생들의 경쟁력이 다른 나라 학생들보다 떨어지는 상황을 개선하고, 인종·사회경제적인 불평등도 해소하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을 총괄하는 K-12에 대해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를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수렁에서 벗어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음에도 관련 예산의 8분의 1 가량인 1000억달러를 K-12 교육에 썼다. 저소득층에 대한 학비 지원 프로그램인 펠 그랜트의 펀딩 규모를 두 배까지 늘리려 애썼으며, 교육세 공제 규모도 세 배로 확대코자 했다.
 
10년 가까운 시간동안 일관되게 추진된 개혁은 긍정적인 결실을 맺었다. 오바마의 집권 초기 73%에 그쳤던 고등학교 졸업률은 지난해 기준 82%로 높아졌고, 수준높은 공립 차터스쿨도 많아져 아이들에게 가장 적합한 학교를 보낼 수 있는 선택지도 넓어졌다. 민주당의 교육 개혁 정책을 지원하는 정치행동위원회 DFER의 쉐이버 제프리 대표는 허핑턴포스트의 기고문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많은 성과 중 교육 부문의 개혁을 가장 높게 평가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이 같은 진보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란 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2일 임기 마지막 신년 국정연설에서 "모든 미국인들은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는 교육과 훈련을 받을 동등한 기회를 가진다"며 "지난 몇 년간의 발전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아이들이 프리K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하고 학교 교과과정의 학생들에게는 실생활에 바로 응용 가능한 컴퓨터 공학 및 수학 교육을 실시하겠다고 했다. 능력이 뛰어난 선생님도 다수 채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차터스쿨 프로그램에는 올해에만 3억3300만달러를 지원할 예정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모든 변화의 출발은 낙제아동 방지법이라고 강조했다. 
 
학교의 '재구조화' 한창…기술과의 결합도 주목
 
미국의 교육 개혁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2000년대 초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예상한 교육의 미래 시나리오 중 일부와 유사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01년 OECD 산하 교육연구혁신센터(CERI)가 발간한 '미래의 학교교육(schooling for tommorow)' 보고서는 약 15~20년 후 학교가 크게 세 가지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측했다. 관료 시스템이나 시장경제 모델에 순응해 '현상유지'에 머물든지, 학교의 역할과 형태가 크게 바뀌어 '재구조화' 되든지, 학교 시스템 붕괴를 포함한 '탈학교화' 한다는 것이다.
 
15년이 지난 지금 미국의 사례로만 보자면 현상유지와 재구조화의 경계에 있는 듯 하다. 학생과 학부모가 자유롭게 자신의 취향과 능력에 맞는 교육을 선택할 수 있고, 획일적 규제가 아닌 평가와 인증이 그 선택을 돕는 '시장확장형 모델' 시나리오와 학교가 지역공동체의 가치와 규범을 지키는 사회센터로 변화하는 '핵심사회센터 모델' 시나리오가 혼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립학교와 같은 규제를 받으면서도 특화교육을 하는 차터스쿨이나 "학교는 지역 공동체의 삶과 연결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육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스쿨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 기관과 비영리단체 주도의 학교 개혁에 힘이 붙으면서 민간 기업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페이스북의 경우 지난 2010년 뉴왁·뉴저지 지역의 도시학교 시스템 개혁 프로젝트에 1억달러를 투자했고, 저소득 지역 학교에도 1억2000만달러를 기부했다. 최근에는 학교들에 무상으로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또한 마크 주커버그와 그의 아내 프리실라 챈은 페이스북 본사와 멀지 않은 캘리포니아주 이스트팔로알토에 저소득층과 유색인종 가정을 위한 학교를 설립키로 했다. 오는 8월 개교 예정인 이 학교는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함은 물론 학생들의 가족에까지 주기적인 건강검진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전세계를 점점 더 작은 공간으로 만들고 있는 기술은 다른 산업에 그러했듯이 교육에도 많은 변화를 야기할 것이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개방형 온라인 강좌(MOOCs)가 증강현실(VR) 기술과 만나 가상화 교육으로 발전할 것이란 전망도 그 중 하나다. 세계경제포럼(WEF)의 '미래의 교육' 보고서에서는 장소나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으면서 낮은 비용으로 양질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가상화 MOOCs가 저소득층, 특히 개발도상국의 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데 혁신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지난해 1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포춘의 글로벌 포럼에서 "불평등한 교육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격차를 해소하는 데 기술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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