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문학을 통해 만난 조선의 유배자들
입력 : 2016-02-29 11:37:02 수정 : 2016-02-29 11:37:02
옛 역사를 담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주요인물들이 유배를 가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나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임금의 노기를 사 고향을 등지고 귀양살이를 떠나는 경우인데요. 그런데 이 유배 떠나는 길이 마치 판에 박은 것처럼 똑같이 그려지는 경우가 많지요. 소 달구지를 타고 호위를 받으며 당도한 유배지에서 흰 옷을 입은 채 경거망동하지 않고 살아가는 선비의 모습이 주를 이룹니다. 그런데 조선시대 유배자들이 정말 그런 모습이었까요. 오늘 소개할 책 '유배, 그 무섭고도 특별한 여행(염은열 지음, 꽃핀자리 펴냄)'은 다채로운 유배 생활에 대해 소개함으로써 유배에 대한 선입견(?)을 걷어내고자 하는 책입니다.
 
각양각색의 유배기
 
청주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조선시대 가사 문학을 통해 유배자들의 생생한 삶을 복원해내는 시도를 합니다. 역사와 문학 분야의 옛 자료들을 들춰 유배형의 집행과정부터 실제 유배자들의 다양한 생활 모습까지 상세하게 짚어가며 유배의 다양한 의미를 추출해내는데요. 때로는 생각보다 훨씬 더 비참하기도 하고, 때로는 예상밖으로 호화스럽기도 한 유배기가 이 한 권의 책에 담겨 있습니다.
 
유배는 결국 떠남과 적응의 문제라는 게 저자의 생각인데요. 여러가지 유배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 중 중심을 이루는 것은 18세기 말 안도환과 19세기 중반 청사 김진형의 유배입니다. 이들은 각각 '만언사'와 '북천가'라는 가사문학을 지음으로써 자신들이 보고 겪은 것에 대한 생생한 기록을 남겼는데요. 특히 이들의 책이 인기리에 유통됐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만언사'의 경우 궁녀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당시의 민간 도서대여업자라고 할 수 있는 세책가가 책을 두 권으로 분권시켜 유통시킬 정도였다고 하네요. '북천가'의 경우 아예 규방의 여성독자를 대상으로 지은 가사문학이었습니다.
 
안도환의 경우 개인 비리로, 김진형은 상소로 문제를 일으켜 각각 유배를 가게 되는데요. 한양에서 호위호식 하던 중인 안도환은 추자도로 유배돼 보리동냥을 다니는 신세가 되었고, 영남 양반인 김진형은 유배지에서 군산월이라는 기생을 만나 명승지로 유람을 다닐 정도로 호위호식했다고 합니다. 입장은 비록 달랐지만 이들은 자신의 생활을 상세한 글로 남겨 후세까지 전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들의 가사문학을 살피며 저자는 유배가 무서운 여행이기도 하지만 특별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수많은 유배자들 중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이들 두 사람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공간에 머물며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개개인을 조명하겠다는 의지로도 읽히는데요. 각자 상황은 달랐지만 유배지에서 관찰한 바들을 기록으로 남기며 오늘날까지 유의미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유배 생활 속 의의를 찾을 수 있겠네요. 이밖에도 저자는 이산해, 고경명, 김려, 정약용, 정약전, 김정, 이건, 이학규, 민규호, 김정희 등을 언급하며 유배지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든 사람들에 대해 조명합니다.
 
이 책의 의의는
 
"저 자신의 고민에서 출발한 책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새로운 곳으로 떠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데요. 이것은 장소에 대한 정체감 같은 것들과 연결된, 굉장히 본질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곳으로 가면 보통 불안을 느끼게 되고, 살아남기 위해 액션도 달리 취하게 돼죠. 저는 이것이 우리가 가진 실존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익숙한 곳으로부터 멀리 떠나게 되는 이 실존적인 상황을 중심 생각으로 삼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인데요. 특히 어떤 상황에 처할 때 그 자체 때문에 삶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그 상황에 대한 사람의 반응이 다 다르게 나오면서 삶이 달라진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유배라는 경험을 해볼 일이 없으니 이를 어디론가 이주하는 경우라고 확대 적용해본다면 어떨까요. 저자 역시 자신이 청주에 연고 없이 처음 갔을 때 지식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며 이들 유배자로부터 영감을 얻게 됐다고 하는데요. 유배지에서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기는 사람들, 이름 없이 소멸하는 사람들, 고통 받는 사람들 등 다양한 모습들이 사실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처럼 문학을 앞세우되 그 자체에 매몰되지 않고 인문학적, 사회학적 의미까지 추출해내는 데 이 책의 의의가 있다 하겠습니다. 저자는 이후에도 유배자들의 감정토로에 집중하는 문학적 접근 방식, 제도나 행정 중심으로 푸는 역사학적 접근 방식 모두를 아우르는 저술을 계속 이어갈 예정이라고 하네요. 
 
김나볏 기자 freenb@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 김나볏

뉴스토마토 김나볏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