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다단계 늪'에 빠진 이들의 눈물
경기침체속 장기구직자 등에 마수
솜방망이 처벌..새로운 ‘먹잇감’을 노리면 그만
입력 : 2009-09-21 19:36:41 수정 : 2009-09-21 23:04:38


[뉴스토마토 김영택기자]  전라도 광주광역시에 사는 김모(26)씨.
 
그는 지방에서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공무원시험을 준비 중이었다.
 
집안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김씨는 학원비와 용돈을 부모님에게 타 쓰면서 마음 한 편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쌓이는 스트레스와 부담감이었을까 그는 얼마 전에는 공무원시험을 포기하고 일반회사에 취업준비를 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취업을 하지 못해 걱정이던 중 고수익의 아르바이트가 있다는 친구의 말에 집을 나섰다.
 
친구가 데려간 곳은 광주 시내에 있는 다단계회사의 사업교육장.
 
이곳에는 김씨와 비슷한 나이 또래로 보이는 사람들이 40~50명 정도 있었다.
 
이틀간 진행된 사업설명회에서 회사측은 네트워크 마케팅과 사업구조를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통장을 보여주면서 실제 사업의 성공사례들을 부각시켰다.
 
◇ 끊을 수 없는 불법다단계 ‘사슬’
 
이 회사는 현금과 신용카드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대출회사와 연계해 손쉽게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해줬다.
 
그는 결국 700만원 상당의 건강식품과 화장품, 생활용품 등을 구매했으나, 금전적인 부담을 느껴 반품하려 했다. 하지만 물건 반품은 일부 제품만 가능하며, 나머지 제품들은 재판매가 불가능하단 이유로 반품을 거절당했다.
 
김씨는 “나중에 대출 연 이자율이 37~40%라는 말에 물건을 반품하고 나오려 했지만, 회사에 보관해 뒀던 제품들이 모두 사라졌고 일부만 남아 있었다”면서 “대출금을 갚고 이윤을 남기려면 내 아래로 판매원 8명 정도(4천만원)를 모집해야 한다”면서 긴 사슬을 끊을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 솜방망이 처벌..새로운 ‘먹잇감’ 노리면 그만
 
이 회사는 지난 2월 대학생과 노인을 대상으로 허위사실을 알려 거래하는 등 방문판매법을 위반해 고발을 당한 바 있다. 하지만 시정명령과 과태료 부과 등의 솜방망이 처벌만 받았을 뿐, 버젓이 불법 다단계를 자행해 왔다.
 
이처럼 다단계 피해가 사라지지 않는 건 다단계판매 규제체계의 총체적인 실패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서울 YMCA 시민중계실 김혜리 간사는 “불법 다단계 피해는 매년 반복되고 있으며, 유형도 치밀하고 다양해졌다. 이를 근본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법률이 미비하기 때문”이라며 “현재보다 법률을 강화해 사행성이나 투기를 줄일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간사는 “이번에 공정위에서 단속이나 감시를 철저히 하겠다는 발표를 했는데, 이보다도 법개정을 통해 불법 다단계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책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 다급해진 정부대책 ‘실효성’ 의문
 
경기침체 탓에 청년실업자가 40만 명에 육박한 요즘 불법 다단계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다급해진 정부는 20일 불법 다단계업체에 대한 일제 조사에 나서는 등 서민 피해 예방을 위한 종합 대책을 마련했다.
 
공정위는 불법다단계 영업을 한 업체에 대해서 단순한 시정명령보다는 검찰에 고발하거나 수사를 의뢰하고 과징금을 물리는 등 처벌을 강화하기로 했다.
 
3년간 3회 이상, 1년간 2회 이상 등 반복적으로 법을 어긴 업체는 명단과 위반 내용을 매년 공개할 방침이다.
 
또 불법 다단계업체를 신고하면 최대 100만원의 포상금을 주기로 했다.
 
김성환 공정거래위원회 과장은 “이번 종합대책은 직권조치 강화를 골자로 10월과 11월 두달간 집중단속을 편다는 것"이라며 "후원수당 총액 초과지급 행위(매출액 대비 35% 초과), 130만원이상 고가제품 취급행위, 미등록 다단계영업 행위 등을 단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의 이번 대책이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불법 다단계의 대상이 사회 초년생과 노인이며, 이들이 피해신고를 할 수는 있는 곳도 마땅치 않다.
 
또 ‘법의 테두리’를 악용하는 다단계 업체들과 맞설 수 있는 법률 지식도 부족하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신고된 불법 다단계 사건 중 24건이 처리됐고, 올해 9월까지 24건의 사건이 해결됐다”고 밝혔다.
 
수천 건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다단계 피해건수를 감안하면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이와 관련해 김혜리 간사는 “시민들 스스로 다단계를 통해 막연히 꿈과 희망을 이룰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버려야 하고, 다단계 피해 조항이나 대처법을 익혀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불법 다단계 피해는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과(02-3140-9648)나 서울 YMCA 시민중계실(02-725-1400, 1146)로 연락하면 전문적인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뉴스토마토 김영택 기자 ykim98@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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