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미술품 가격, 재벌들이 정한다…"사교모임 통해 로비창구 등 정보교환"
삼성의 힘, 미술품 시장 좌지우지…여인천하, 미술품으로 싹텄다
입력 : 2016-04-06 07:00:00 수정 : 2016-04-06 07:00:00
[뉴스토마토 최병호·윤선훈 기자] 국내 미술계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인물은 누구일까.
 
미술계는 입을 모아 한 사람을 꼽는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인 홍라희 관장이다. 홍 관장은 호암미술관장과 리움관장을 겸하고 있다. 미술계가 홍 관장을 영향력 1위로 꼽는 것은 그가 단지 국내 최대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홍 관장이 무슨 작품을 구매하고 어떤 작품에 관심을 가지는지에 따라 미술품 가격이 바뀐다. 
 
강남 C갤러리 관계자는 "미술품은 누가 그렸느냐, 작품성이 어떠냐보다 누가 이 작품을 샀느냐, 누가 이 작품을 소장했느냐가 가격에 더 결정적"이라며 "영향력 있는 큰손들이 작품에 손 댔다는 게 알려지면 미술시장이 요동치는 게 다반사"라고 말했다. 때문에 "모두들 국내 최대 미술관인 호암미술관과 리움의 동향에 주목한다"고 한다. 
 
인사동 D갤러리 관계자는 "리움에 '마망'이라는 설치미술 작품이 있었는데 이 작품을 처음 살 때는 그리 비싸지 않았지만 요즘에는 시세가 600억원까지 올랐다는 게 정설"이라며 "작품 자체가 뛰어나기도 하지만 리움 프리미엄 때문"이라고 말했다.
 
홍 관장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가 또 있다. C갤러리 관계자는 "단색화 작가인 A씨는 이전까지 시장에서 주목받던 작가가 아니었지만 당시 '홍라희 관장을 비롯해 유력 인사가 그 작가를 띄운다'는 소문이 돌았다"며 "그때부터 A작가의 작품이 붐이 일었다"고 설명했다. A작가는 지난해부터 미술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다른 재벌가 미술관의 영향력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인사동 D갤러리 관계자는 "재벌이 운영하는 미술관마다 고미술, 현대미술, 조각, 설치미술 등 관심 분야가 제각각"이라며 "큰손들이 미술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도 하지만 그들은 가격을 좌우한다는 점에서도 무시 못할 존재"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16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서울옥션 본사에서 열린 제139회 미술품 경매(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 없습니다.) 사진/뉴시스
 
이처럼 소수의 재벌이 미술시장을 움직인다는 점에서 시장의 불투명성이 싹튼다.  
 
먼저 공정가격 없이 재벌의 기호에 따라 정해지는 가격이 가장 큰 문제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에는 미술품의 공정가격을 결정하는 곳이 없다"며 "부르는 게 값"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어떤 갤러리에서 1억원짜리 작품을 100억원에 파는 것도 가능하고, 반대로 100억원 작품을 1억원에 팔 수도 있다"면서 "이런 식으로 차익이 생기고 비자금을 만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강남 E갤러리 관계자도 "'검찰이 특정 갤러리를 압수수색해도 웬만한 재벌들은 거래 때 변호사가 다 관여하기 때문에 법망에 걸릴 일이 없다"고 말했다. 재벌들이 미술품을 사들여 비자금을 조성해도 검찰이 쉽게 잡아내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인사동 F갤러리 관계자는 "한때 각광받던 아트펀드도 미술품 가격이 제멋대로라는 점에 착안해 재벌들의 비자금 창구로 쓰였다"고 말했다.
 
일부 재벌들은 미술품 거래와 정보 교환을 목적으로 사교 모임까지 만들기도 한다. 강남 G갤러리 관계자는 "홍라희 관장을 비롯해 효성의 송광자 여사, 한진의 이명희 여사, 한화의 서영민 여사 등이 자주 어울린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며 "2014년 세빛섬이 개장하고 나서 나들이를 같이 가기도 하고, 강남 쪽 갤러리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강남 H갤러리 관계자는 "재벌 사모님들은 정식으로든 취미로든 미술을 공부한 사람들이 많아 갤러리 관장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분들이 많고 서미갤러리도 이런 식으로 엮였다"며 "영세한 갤러리가 비싼 가격에 작품을 사서 돈이 모자라면 사모님들이 뒤에서 돈을 빌려주기도 하고 우르르 몰려다니며 미술품도 사들인다"고 설명했다.
 
강남 I갤러리 관계자는 요즘 재벌이 눈독을 들이는 곳은 홍콩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홍콩에서 열리는 아트페어(미술품 박람회)에 몇해 전부터 유명 재벌가 사모님들이 나타나 화제가 됐다"며 "꼭 재벌 사모님이 아니어도 측근이 아트페어를 찾아 미술품을 수집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외국에서 구매한 작품은 국내로 들여오지 않고 해외에 있는 별장으로 옮겨지거나 거래 또는 선물용으로 쓰이기도 한다는 게 이 관계자의 주장이다.
 
최병호·윤선훈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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