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미래연구원)밀려드는 중국자본, 기업가치 높이는데 활용해야
한국기업 사냥 날로 늘어…국내 '모험자본' 육성도 적극 연구할 때
입력 : 2016-05-02 14:48:30 수정 : 2016-05-02 22:47:39
중국의 한국기업 사냥이 괄목할 만큼 늘어나고 있다. 우리 산업의 핵심 인재들을 확보하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과 인재들은 한국의 서비스업이나 한류 관련 핵심 인재들이어서 더욱 우려를 자아낸다. 과연 이대로 좋은가? 이재우 보고펀드 대표의 진단을 통해 실상과 대책을 알아본다.[편집자]
 
중국의 안방보험은 지난해 9월 동양생명보험을 사들인 후 올해 들어 알리안츠생명까지 인수하며 몸집을 불렸다. 지속적인 경제 침체와 저금리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국내 보험 업계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임을 고려 할 때 거침없는 행보라 아니할 수 없다. 지금 매각의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KDB생명과 ING생명까지 들여다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만일 이 세 보험사를 다 인수하면 총 자산 70조에 육박해 빅3 중 하나인 교보생명의 87조를 바짝 뒤쫓게 된다. 안방보험은 사실 보험사 인수 이전부터 우리은행 지분 인수 등 제1금융권 진출에도 높은 관심을 보여 왔다. 이외에도 핑안그룹, 푸싱그룹이 금융권 진출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중국 자본의 공격적인 한국 투자는 금융권 투자뿐만 아니라 이미 전 산업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다. 중소기업청이 작년 서강대에 의뢰한 연구용역에 따르면 중국 자본은 국내 상장사와 비상장사에 총 2조9606억(2015년9월말 기준)을 투자하고 있고, 총 32개의 피투자사 중 코스닥 20개 등 상장사가 25개이며, 주로 인터넷, 게임, 엔터테인먼트 업종에 집중된 모습을 보인다.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2014년 말 기준 3조7300억달러로 부동의 세계 1위이다. 2위인 일본의 1조2400억달러에 비해 3배, 6위인 한국의 10배도 넘는다. 이런 천문학적인 자금을 바탕으로 글로벌 인수합병(M&A) 시장의 큰 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금융자본만의 인수합병 관련 투자 규모가 300억달러, 기업자본의 인수합병은 440억달러에 달했다. 건수로는 250건이 넘는다. 레노버는 IBM의 PC 부문을 인수했고, 푸싱은 프랑스의 리조트 기업 클럽메드, 그리고 안방보험그룹은 미국 뉴욕의 간판 호텔인 월도프 아스토리아를 손에 넣었다. 이외에도 자원 투자 등 세계 전역에 걸쳐 각종 자산을 사들이는 모습을 보면, 지리적으로 가장 가깝고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감안해 볼 때 우리나라에 대한 투자 규모는 오히려 그리 크지 않다고도 볼 수 있다.
 
재미있는 현상은 중국 자본이 투자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주가가 상승함에 따라 자금뿐만 아니라 주가 상승을 원하는 국내 기업들은 중국 자본에 줄을 대려고 이리 저리 뛰어 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 시장을 통한 대폭적인 매출 확대를 기대할 수 있는 인터넷 게임이나 영화 드라마 제작사 등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화장품 관련 업계는 더욱 그러하다. 한편, 중국 투자자들은 국내 벤처캐피탈사들에 비해 우리 벤처회사들의 지분가치를 월등히 높이 쳐줄 뿐만 아니라 중국 시장 진출 지원이라는 강력한 카드를 내놓으면서 벤처 창업자들이 자기네 쪽 투자를 받도록 끌어 들이고 있다.
 
한국의 인터넷 기반 사업 중 가장 성장이 빠르면서 이른 시간 내에 수익을 만들어 내는 사업은 게임산업이다. 청소년들의 게임 중독과 사행성 우려한 국내의 여러 규제로 인해 성장성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 분야에 텐센트 등 중국 게임 관련 업체들은 중국 내 퍼브리싱 계약, 개발 지원 등 매우 매력적인 조건들을 내걸고 국내 유수의 게임업체들에 투자하고 수익 배분 계약을 맺어 엄청난 이익을 보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중국 자본은 게임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 걸쳐 소수 지분 투자뿐 아니라 경영권 지분 투자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이에 비하면 한국 자본의 활동성은 비교 자체가 불가하다. 동양생명의 경우 중견 보험사 중 가장 뛰어난 실적을 보이며 해마다 순이익과 자산규모 기록을 갱신해 나갔지만, 어떤 금융그룹이나 다른 보험사들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알리안츠생명에 관심을 가질 곳은 더욱 없었을 것이다. 이외에도 채권금융기관이나 사모펀드가 보유하고 있어 매물로 거론되고 있는 대형 기업이 상당히 많지만 선뜻 나서는 원매자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재벌 등 대기업 집단이 근래 M&A에 매우 미온적이다. 이들은 국내외 경제상황이 매우 불투명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조차 비주력 기업들을 매각하고 상위 임원들의 숫자를 대폭 줄이고 있다. 경제민주화의 분위기 속에 소위 이런 재벌 기업이 M&A를 통해 몸집을 불리다가 눈총을 받는 것 또한 부담스러워 한다.
 
산업자본이 이런 가운데 금융자본 중 모험자본이 차지하는 비중 또한 매우 미흡한 상황이다. 사모펀드 약정액이 60조원에 이른다고 하지만 국내 사모펀드의 자금의 원천이 대부분 구조적으로 원금 손실의 부담을 지기 어려워하는 연기금들이다. 이들은 아주 소액만 모험 자본 투자에 배정하고 중저위험 중저수익 투자에 집중 할 수밖에 없다. ING생명, 홈플러스 등 시장에서 수조대의 대형 M&A를 성사시킨 사모펀드의 후순위 기초 모험자본은 모두 외국자본으로 채워지는 것이 현실이다.
 
벤처 투자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국내 벤처캐피탈은 매우 까다로운 심사와 투자절차에 얽매인다. 이들의 자금 원천도 사모펀드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역시 리스크를 지기 어려운 구조의 연기금들이다. 이들 연기금 담당자들은 심한 경우 1년에 6개월을 사후감사로 시간을 보낸다. 여러 투자 중 단 하나의 투자 실패라 해도 매서운 사후감사에 대응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투자판단에 재량을 발휘하기 어려운 시스템이다. 그리고 이런 연기금들의 투자 책임자와 담당자들은 대개 매년 두 가지 기준으로 평가를 받는다. 얼마의 금액을 투자 했는가, 당해 연도의 수익률이 얼마인가? 이런 잣대로 평가를 하면 초기 몇 년간 수익이 없는 순수 모험자본 투자를 최대한 피하고 정책적으로 해야 하는 최소액을 할당할 수밖에 없다. 최종 투자자가 이런 입장인데 그 돈을 받아 집행하는 사모펀드 매니저나 벤처캐피탈 매니저가 달리 운용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더구나 우리나라 벤처캐피탈이나 사모펀드 모두 궁극적 엑시트(투자회수) 시장인 주식시장이 십수년 간 침체를 벋어나지 못하고 있어 투자기업 중 설사 성공적인 투자회수가 이루어진다 해도 그 수익이 다른 실패한 모험자본 투자를 상쇄하기 어려워 더욱 투자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에 반해 중국 자본을 운용하는 사람들은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먼저 우리에 비해 훨씬 더 장기적 시각을 가지고 투자한다. 그리고 시장의 규모가 커서 중국 시장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이거나 사업이면 우리 투자자들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쳐서 투자해 준다. 아직은 투자 초기라서 눈에 띄게 실패한 투자가 없어서인지 모르겠으나, 사후 관리에도 소수지분 투자의 경우 국내 자본보다 유연한 모습을 보인다. 이러고 보니 투자를 받는 기업이나 경영주주의 경우 특히 상장사라면 주가까지 올라가는 마당에 중국 자본을 선호하지 않을 도리가 없지 않을까?
 
중국은 외환보유액이 부동의 세계 1위이고, 이 중에 많은 부분은 해외 투자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중국 기업들이 한국 기업을 많이 따라 붙었다고 하나 제조 기술이나 IT,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식음료 분야 등 아직은 배울 것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니 우리 기업들을 사들여 시간을 벌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상황에서 불투명한 방법으로 중국자본의 투자를 막을 방도도 제한적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자본을 잘 활용해 국내 자본시장을 키우고 기업의 가치를 높일 것인가와, 우리의 모험자본을 육성할 것인가를 보다 다 적극 연구해야 한다. 우리가 자본을 충분히, 그리고 경쟁력 있게 제공하지 못하면서 상업적으로 움직이는 기업과 기업가들에게 무슨 이유로 중국자본 유치를 자제하라고 할 수 있을까?
 
국가미래연구원
 
'별에서 온 그대' 장태유 감독이 중국으로 진출해 만든 첫번째 영화 VIP 시사회가 지난 4월 중국 현지에서 열렸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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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