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잃은 성과주의)①금융당국, 은행 줄세우기 돌입
금융위, 시중은행에 말발 안 통해 은행별 공략 나서
"연봉제도 개편에만 집중…성과주의 당초 취지 무색"
입력 : 2016-10-13 06:00:00 수정 : 2016-10-13 11:09:59
[뉴스토마토 이종용·김형석기자] 금융권 성과주의 확대가 추진된지 1여년이 지났다. 하지만 시중은행 도입이 지지부진한 상황이어서 갈 길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금융공기업에게 통했던 금융당국의 '말발'이 민간 금융사 노조의 높은 벽에 막혔기 때문이다. 그 사이 해외에서는 웰스파고가 무너질 위기에 처하는 등 성과주의 폐단에 대한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은행권 임원들은 인건비 관리 측면에서 성과주의 도입을 여전히 찬성하는 분위기지만 관리자급 직원들의 말만 들어봐도 성과주의 방향이 당초 취지를 잃고 있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금융권 노사가 지리한 명분싸움을 계속하는 동안 연말에는 금융노조위원장 선거가 있는 등 암초가 즐비한 상황이다. <뉴스토마토>는 성과연봉제 현황과 향후 전망에 대해 짚어봤다. (편집자주)
 
금융위원회는 성과연봉제 확대 및 도입이 지지부진하자 사실상 민간 회사들의 줄세우기에 들어간 상태다. 사용자협의회가 산별교섭을 깨고, 개별교섭으로 전환하면서 어느 은행이 먼저 성과연봉제 확대의 스타트를 끊을 것이냐가 관건이 됐다.
 
민간 부문의 성과주의 도입을 조율하는 선장은 표면적으로 하영구 은행연합회장(겸 사용자협의회장)이다. 사용자협의회는 금융당국의 주문을 그대로 잘 이행하고 있다. 하 회장은 사용자단체를 해산시키면서 금융공기업의 사용자협의회 탈퇴 코스를 그대로 밟고 있다. 노조와 강대강 구도를 계속하면서 사실상 사용자단체의 '선장' 역할을 포기한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사용자협의회가 성과주의 도입 속도전을 이유로 사용자대표 자격을 버리고 개별 협상으로 전환시켰다"며 "금융공기업과 마찬가지로 시중은행 가운데 누가 먼저 도입할 것인지 관건으로 이 역시 또 다른 줄세우기가 됐다"고 말했다.
 
지난 8월 금융위원회 산하의 금융공기업 9곳은 줄줄이 성과연봉제 확대를 도입한 바 있다.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이들 대부분은 금융당국의 '시한부 도입 방침'에 쫓겨 노조의 동의 없이 사측이 일방적으로 취업규칙 변경을 결정한 경우다.
 
민간 부분에도 속도전으로 도입될 것으로 여겨졌으나 암초에 부딪혔다. 조선해운업 구조조정과 총파업, 국정감사를 거치다가 3개월이 지나가버렸다. 금융위가 지난 7월 국무회의에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금융사지배구조법)'시행령을 제정하면서 금융회사 전 직원에 대한 성과연봉제 강제도입 논란이 촉발된 바 있다.
 
이 같이 금융당국까지 적극 나서자 금융노조는 반대의사를 표명하며 지난 9월 23일에 총파업을 실행에 옮겼다. 2014년 9월 관치금융 철폐를 요구하며 총파업에 나선지 2년 만의 총파업이었다. 급기야 금융노조는 다음달에도 2차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여기에 국내 금융기관들이 성과주의의 선두주자라고 꼽아온 미국 웰스파고가 불완전 판매에 발목이 잡히면서 성과주의 도입 및 확대에 대한 명분도 약해지고 있다.
 
웰스파고는 직원들이 판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2011년부터 고객 동의를 받지 않은 채 최대 200만개 허위 계좌를 개설하고 고객 계좌에서 40만달러가 넘는 돈을 빼낸 것으로 드러나 큰 파문이 일었다. 이 같은 혐의로 1억8500만달러(약 2060억원)의 벌금을 물게 된 웰스파고는 리테일 직원 대상의 목표할당제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금융개혁에 대한 일반국민들의 평가도 냉소적이다. 금융위가 일반 국민 300명과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금융개혁에 대한 만족도는 일반인이 '보통 이하', 전문가는 '보통 이상'이었다. 최우선으로 추진해야 하는 과제에 대해 전문가들은 26%가 '금융당국의 변화'라고 답했다.
 
한 민간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당국이 그전에 없던 선진정책을 추진하려는 시도는 계속 하고 있지만 답을 정해놓고 촉박하게 추진하려 한다"며 "비대면 계좌개설 등 핀테크 활성화와 성과주의까지 문호를 넓히려고 하지만 금융사의 속도가 더딘 이유"라고 지적했다.
 
은행연합회가 지난 7월 '민간은행 성과연봉제 도입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성과연봉제 도입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앞으로 시중 은행 직원 간 전체 연봉의 최대 40%까지 차등돼 지급된다. 이를 토대로 은행권 사측은 내년부터 성과제를 전면 도입할 방침을 세운 상태다.
 
성과연봉제를 두고 금융권 노사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며 기싸움을 지속하고 있다. 노사는 소통 단절이라는 부정여론에 떠밀려 만남의 기회는 갖겠다는 입장이지만 '명분쌓기'에만 골몰하고 있는 분위기다.
 
사용자협의회 관계자는 "이미 회원사들이 협의회를 탈퇴한 이상 사용자협의회의 권한 밖의 문제"라며 "이미 민간금융사들이 개별협상에 들어간 상황에서 금융노조와의 대화는 채널을 유지하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 금융사들는 지난 8월 성과연봉제 도입을 위해 사용자협의회를 탈퇴했다. 당시 27곳의 회원사 중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 22곳이 탈퇴했다. 최근에는 한국감정원과 주택도시보증공사가 탈퇴해 현재는 신협중앙회와 산림조합중앙회, 한국금융안전 등 3곳만 회원사로 남아있다.
 
은행연합회를 비롯한 시중은행들은 성과연봉제 확대를 지속해 나간다는 입장이지만 내부에서도 이견의 목소리가 있어 쉽게 추진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다른 관계자는 "호봉제 중심의 연공형 임금체계가 인건비를 늘리고 있다는 차원에서 은행장들은 구색에 맞춰 추진하고 있으나 내부적인 동의를 얻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 관리자급 직원은 "성과연봉제 확대의 본래 취지는 일 하는 직원에게 적절한 보상을 주고, 일하지 않는 자의 무임승차를 막겠다는 것인데, 지금은 은행의 연봉제를 손보겠다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 공감을 못 받는 것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이종용·김형석 기자 yong@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 이종용

금융현장의 목소리를 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