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의 세상읽기)사람들은 왜 이상한 것을 믿는가?
입력 : 2017-04-07 08:00:00 수정 : 2017-04-07 08:00:00
사람들은 별 희한한 것들을 다 믿는다. 우리 엄마는 12층에 사신다. 어느 날 엄마 집에 갔더니 안방에 침대가 대각선으로 놓여 있었다. "엄마 침대를 왜 이렇게 놨어요." "아니 글쎄, 안방에 수맥이 흐르지 않니. 수맥 피하느라고 이렇게 놨어." "12층인데 무슨 수맥이요. 저 아래 수맥이 흐르는 걸 어떻게 아셨어요?"
우리 엄마는 동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문화강좌에서 수맥탐지를 배우셨고 꽤 고가의 수맥탐지봉을 구입해서 수맥을 찾으셨다. 엄마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드리고 침대를 똑바로 놓자고 말씀드렸으나 돌아온 대답은 이러하다. "으이그, 니네 과학자들이 뭘 안다고 그래. 그냥 놔둬!"
 
세상 사람들은 별 이상한 '거지같은' 것들을 다 믿는다. 버뮤다 삼각해역, 폴터가이스트, 바이오리듬, 창조과학, 공중부양, 염력, 초능력 탐정, UFO, 원격투시, 칼리안 오라, 사후의 생, 임사체험, 영매, 피라미드의 힘, 심령 탐광, 흉가, 영구 동력 기관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과학자들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한참 딸리는지 처음 본 수맥탐지봉 장사꾼의 이야기를 더 신뢰한다. 우리 엄마도 그렇다. (아들을 제외한) 사람들 말을 참 잘 믿는다. 기적, 괴물, 신비를 믿는 대부분의 사람은 사기꾼이거나 협잡꾼, 광신자가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들이다. 심지어 마음도 착한 분들이다.
 
이상한 것들을 잘 믿는 착한 분들은 아이에게 착한 마음씨와 말씨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기 위해 일본인 에모토 마사루가 쓴 <물은 답을 알고 있다>를 읽어주기도 한다. 에모토 마사루는 샬레(둥글고 납작한 투명 유리 그릇)에 물을 떨어뜨리고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거나 '사랑' 또는 '감사'라는 단어를 보여준 후 얼리면 얼음 결정 구조가 아름답고, 헤비메탈 같은 음악을 들려주거나 '망할 놈'이란 단어를 보여준 물의 얼음 결정은 흉측하다고 주장한다. 그가 증거로 제시한 사진이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TV에서도 뉴스와 다큐멘터리로 자세히 소개했다.
 
책이 처음 나왔을 때는 2003년이다. 거의 모든 신문들에 찬사 섞인 서평이 실렸을 때 오직 한 신문에는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의 삐딱한 서평이 실렸다. 그 서평은 이렇게 끝맺는다.
 
"'사랑과 감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이 책의 메시지는 좋다. 그러나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는 근거가 조작된 것이고 해석 또한 엉터리라면, 그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만약 이 책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저자는 각 국의 신과학 지지 모임에만 참석하지 말고 연구 결과를 저명한 과학저널에 제출해 심사 받기를 권한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이 책은 근래에 나온 최악의 '과학' 도서가 될 것이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 책은 1998년에 나온 <식물의 정신세계> 이후 내가 본 최악의 '과학' 도서였다. 앞으로도 이런 책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가 3년 만에 바다 위로 올라온 날 원주의 하늘에 리본 모양의 노란 구름이 끼어서 화제가 되었다. 그러자 리본 구름의 정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물론 가장 쉬운 해석은 비행운(contrail). 하지만 과학자들은 수학적인 계산을 근거로 비행기로는 생길 수 없는 궤적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공군도 그 시간에 비행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그것은 구름이 아니라 캠트레일(chemtrail)이라는 주장이 SNS 상에서 퍼져나갔다. 그들은 우리가 비행운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사실 구름이 아니라 유해 화학물질을 살포한 흔적이라고 주장한다. 우리에게 여태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절대 다수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비밀실험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비밀실험의 목적은 약물의 효능을 대규모로 시험하거나 빈곤국의 인구수를 효율적으로 조절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분쟁지역에서 사용하는 비밀화학병기라는 주장도 섞여 있다.
 
살포한 화학물질이 왜 하늘에 구름 모양으로 남아 있으며 그게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비행운과 건강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기나 하겠는가? 당연히 학계에서 공론화 되거나 검증된 적이 없다. 미스터리 추종자 사이의 '카더라' 통신일 뿐이다. 전형적인 음모론이다. 그런데 이런 음모론은 잘 퍼져나간다.
 
세월호 리본 모양 구름이 생긴 이유에 대해 과학자들은 아직 답을 내놓을 만큼 충분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지 않다. 뭐라고 할 말이 없다. 다만 구름을 보고 다시 한 번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가슴에 품었을 뿐이다.
 
사람들은 왜 이상한 것을 믿는가? 의심하지 않고 그저 믿기 때문이다. 의심은 진실로 가는 첫걸음이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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