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행정청 과실로 타인 신분 생활…본인 주민등록번호 교부해야"
"불이익 부담할 필요 없어"…원고 승소로 판결
입력 : 2020-06-08 06:00:00 수정 : 2020-06-08 09:40:21
[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행정청의 부실한 처분으로 계부 자녀의 신분으로 살아왔다면 원래 본인의 이름에 따른 주민등록번호와 주민등록증을 교부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재판장 이상훈)는 하모씨가 서울 동대문구청장을 상대로 낸 주민등록번호·주민등록증 부여 거부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8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 신청에 대한 심사에서 원고를 '하OO'로 인정하기 충분하고, 피고는 이 사건 신청에 따라 '하OO'에 대한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하고, 주민등록증을 교부할 의무가 있다"며 "피고는 이 사건 신청을 수리해야 할 의무가 있고, 이를 거부한 처분은 위법해 모두 취소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하씨는 모친 최모씨와 부친 하모씨 사이에서 태어나 '하OO이 1993년 11월 출생했다'는 내용으로 본적지인 전남에서 출생신고가 이뤄졌고, 하씨의 주민등록지를 담당하는 동대문구 A동장에 주민등록번호 부여를 요청하는 등기우편이 발송됐다. 하지만 하씨의 주민등록번호는 앞부분 6자리만 부여됐고, 뒷부분 7자리가 부여되지 않은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최씨는 이혼한 후 유모씨와 결혼해 자녀를 낳았고, 유씨는 당시 주민등록지를 담당하는 B동장에 '1993년 9월 유OO을 낳았다'는 내용으로 출생신고를 했다. 자녀 유씨의 주민등록번호는 정상적인 7자리가 부여됐다.
 
하지만 유씨의 대한 호적부가 작성되는 과정에서 신고서류를 검토한 관할 법원은 '유OO의 어머니인 최씨의 호적상 93년생인 하OO이 등재돼 있어 동일년도에 출생한 유OO은 출생등록할 수 없다'는 사유로 반려해 유씨에 대한 호적부가 작성되지 않았다. 이후 유씨에 대한 주민등록번호가 삭제되거나 최씨에 호적에 등재된 하씨와 통일하는 조처가 이뤄지지 않아 유씨의 주민등록번호는 남았다. 하씨는 출생 후 계속해서 최씨와 계부 사이의 자녀인 유씨의 신분으로 '유OO'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로 살았고, 유씨는 2010년 11월 사망했다.
 
하씨는 2018년 말 자신의 주소를 관할하는 동대문구청장에게 "하OO와 유OO이 동일인이므로 유OO의 주민등록증을 반환받고, 하OO에게 주민등록번호 부여하고, 주민등록증을 교부해 달라"고 신청했다. 동대문구청장은 하씨의 신청을 거부하는 처분을 했다. 이에 하씨는 "최씨가 계부 유씨와 재혼하면서 원고를 유씨의 친자처럼 키우기 위해 이들의 친자인 '유OO'으로 출생신고를 했고, 관할 행정청이 후속 조처로 취했어야 할 '유OO'에 대한 주민등록번호 삭제를 이행하지 않아 원고가 행정상 '하OO'의 신분과 '유OO'의 신분을 갖게 됐다"며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하씨에 대한 주민등록번호와 주민등록증을 교부 대상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1차 출생신고로 '하OO'에 대해 호적법과 구 주민등록법에 의한 신고가 이뤄졌다"며 "'하OO'에 대해 출생연월일을 기초로 하는 주민등록번호 앞자리가 부여된 사정에 비춰 달리 행정청이 '하OO'을 주민으로 등록하는 것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구 주민등록법 입법 목적에 배치되는 등의 장애 사유가 있었다고 볼 만한 정황도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유전자 검사 결과에 따르면 원고가 최씨의 친자임은 과학적으로 99.9% 이상"이라며 "최씨의 가족관계등록부상 최씨의 친자인 1993년생인 '하OO'과 2004년생인 '유OO'이고, 이 기재 또한 명백한 반증이 없는 한 강한 추정력이 발생하므로 최씨의 자녀인 사람은 '하OO'이거나 '유OO'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관계 서류상 원고의 초등학교 입학 시기는 2000년 3월이므로 원고가 2004년생인 '유OO'일 가능성은 없다고 할 것이고, 그 결과 원고를 '하OO'로 추단함이 합리적이다"라고 지적했다.
 
또 "'유OO'의 주민등록에 대해 호적법과 구 주민등록법이 예정하는 처분이 이뤄지지 못했고, 비록 이후 원고가 '유OO'의 주민등록을 바탕으로 법률관계를 형성했다고 하더라도 주민등록제도를 관할하는 행정청과의 관계에서 그러한 상황의 불이익을 원고가 부담해야 한다고 볼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주민등록법상의 신고로 갈음할 수 있는 구 호적법상의 신고가 있었는데도 주민등록번호가 부여되지 않은 결과는 법령이 예정하지 않은 이례적인 결과이고, 구 호적법에도 시장 등에게 부실한 신고 등에 대해 최고·직권 조치를 취할 권한이 있었음을 고려하면 '하OO'에 대한 주민등록 시 주민등록번호가 부여되지 않은 근거는 피고가 입증해야 한다"며 "또 그러한 후속 조치 결여를 입증하지 못한 데에 대한 불이익 또한 피고가 부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행정법원. 사진/서울행정법원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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