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적 지역대결…승자독식의 적대적 공생
22대 총선 득표율 차 5.4%포인트, 의석수 차이는 1.8배
"공천 받으면 당선, 지역 기득권이 선거제 개혁 방해꾼"
입력 : 2024-05-10 17:37:12 수정 : 2024-05-10 18:21:48
[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87년 체제의 한계는 제왕적 대통령제만이 아닙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과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은 1개 지역구에서 한 명만 당선되는 '소선거구제'에 합의했습니다. 이후 단순다수대표제를 골자로 하는 소선거구제는 한국 정치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문제는 '승자독식' 구도입니다.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87년 체제 이후 끊임없이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정치권 안팎에선 "거대 양당 구도를 깨는 게 정치 혁신"이라며 선거법 개정에 대한 당위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에서 각각 출구조사 결과 발표를 시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득표율 모순 '소선구제'…양당 '기득권 지키기'
 
10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지역구에서 민주당은 161석, 국민의힘은 90석을 확보했습니다. 
 
그런데 양당의 지역구 득표수를 모두 더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가 나옵니다. 총선 유효 투표수 2923만4129표 가운데 민주당은 1475만8083표를, 국민의힘은 1317만9769표를 얻었습니다. 비율로 따지면 민주당이 50.48%, 국민의힘이 45.08%로 득표율은 5.4%포인트 차이에 그칩니다. 하지만 의석수 차이는 약 1.8배에 달합니다. 
 
보수세가 강한 부산·울산·경남(PK)에서의 결과는 더욱 극단적입니다. 민주당은 후보를 낸 17곳에서 80만7990표(44.98%)를 득표했고, 국민의힘은 96만6831표(53.82%)를 득표했는데 의석수는 민주당 1석 대 국민의힘 16석입니다. 민주당이 유일하게 승리한 전재수 의원의 부산 북구를 제외하면 PK에서 민주당을 찍은 표 모두 사표가 된 셈이죠. 
 
이 같은 결과가 나타난 건 1위가 받은 표를 제외한 모든 표가 사표가 되는 단순다수대표제의 소선거구제를 유지한 영향입니다. 지역구에서 2등 이하에 투표하는 모든 표가 사표가 되는 모순이 발생하는 겁니다. 
 
국회가 모순적 선거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건 적대적 공생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거대 양당 때문입니다. 양당의 극단적 대립 관계가 역설적으로 서로의 입지에 도움이 되는 상황인데요. 영남과 호남이라는 지역 기반을 가진 양당이 갈등과 지역구도를 유발하고, 사실상 제1당을 주고받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또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가 선거제도 개편을 논의한다고 하지만, 주도권이 양당에 있는 만큼 '승자독식' 구조의 선거제도 개혁은 매번 용두사미로 끝났습니다.
 
조해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정치관계법 개선 소위원회 소위원장이 지난해 3월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허영, 김영배 의원, 조 소위원장, 정희용 국민의힘 의원, 심상정 정의당 의원. (사진=뉴시스)
 
"선거제 개혁 방해한 국힘에 '부메랑'으로"
 
국민의힘은 최근 총선에서 연달아 3번을 패배했습니다. 4년 전 21대 총선에서도 지역구 득표율 차이는 8.4%포인트에 불과했는데 민주당에 163석을 내줬습니다. 국민의힘은 84석에 그쳤습니다. 
 
하승수 전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본지와 통화에서 "그동안 국민의힘은 선거제도 개혁 논의 자체를 방해해 왔다고 볼 수 있는데, 사실상 이번 선거 결과를 보면 소선거구제의 폐해가 국민의힘에 '부메랑'으로 돌아간 셈"이라며 "어떻게 보면 현재의 선거제도가 앞으로 여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이어 "하지만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영남 기득권으로 인해 선거제도 개편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여당의 철저한 내부 혁신과 반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황우여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지난 7일 SBS라디오에 출연해 "사실 5%포인트밖에 지지 않았는데 (의석수는) 워낙 차이가 나니까"라며 "김진표 국회의장이 제시했던 광역 중대선거구제 같은 것도 면밀히 검토했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언급한 바 있는 중대선거구제는 선거구를 광역화해 한 선거구에서 2명 이상의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제도입니다. 
 
21대 국회 정개특위 여당 위원인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도 본지에 "대도시 권역에 대한 중대선거구제 논의에 진전이 없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며 "3대 권역별 비례대표제도 도입해 볼 여지가 있었으나 무산돼 차기 정개특위에서 논의해 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간 정개특위는 지역구 의원은 한 선거구에서 1명씩 선출하되 지지율에 비해 지역구 의석수가 낮은 정당에 별도의 비례대표 의석을 보충하는 '독일식정당명부제'와 앞서 언급한 '중대선거구제', 전국을 3~6개의 권역으로 나눠 영·호남으로 나뉜 지역구도를 깨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을 논의해 왔는데요. 22대 국회 정개특위에서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에는 22대 국회 주도권을 쥔 민주당의 '개혁 의지'가 선거제도 개편의 핵심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하 전 공동대표는 "사실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선거제도 개혁 논의에 반대 뜻을 밝힌 건 민주당의 수도권 의원들"이라며 "민주당이 수도권에서도 압도적인 의석을 가져가면서 호남과 수도권에도 민주당의 기득권이 형성되고 있는데, 승자독식 구조의 선거제도 개편을 위해서는 민주당 내부에서부터 '개혁적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 한동인

싱싱한 정보와 살아있는 뉴스를 제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