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에 대한 탐구가 성찰의 깊이를 좌우한다
(제자백가로 나를 바꾸다③)노자(老子)의 '위도일손(爲道日損)': 매일 덜어내는 공부
입력 : 2022-03-15 06:00:00 수정 : 2022-03-15 08:39:01
우리가 공부를 하는 까닭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을 보기 위해서다. 모든 위대한 발견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본 것이다. 가령 천동설이 지배하던 시대에, 해가 뜨고지는 걸 보면서,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게 아니라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주장을 내놓기란 쉽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현상에 굴복했다면 지동설은 등장할 수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 이상을 탐구하는 일은 모든 공부의 난제이다. 자연과학만 그런 게 아니라 인문학도 마찬가지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탐구
 
살아가면서 누구나 언젠가는 불현듯 '사람을 보는 눈을 좀 길러야겠다'는 자각이 닥쳐온다. 이는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정말 중요한 것은 육안만으로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미성년의 시기에 겉모습이 모든 게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기란 쉽지 않다. 성년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은 누구나 타인에 대한 '인지 부조화'를 겪는다. 곱고 착하게 생겼다고 해서 반드시 행동이나 생각이 단정하지는 않다. 또 전혀 비호감 외모라고 해서 꼭 악당인 것도 아니다. 우리는 잘생긴 악당에게 무수히 봉변당하고, 투박한 외모를 지닌 선인에게 무수히 구제를 받고 나서야 비로소, 외모와 그 사람의 덕이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다.
 
외모만 그런 게 아니다. 가령 힘과 용기도 겉보기와 실질이 일치하지 않는다. 힘이 장사라도 반드시 용기 있는 사람인 것은 아니다. 또 약골이라도 용기가 없는 건 아니다. 우리는 역사에서 천하장사가 부당한 권력에 머리를 숙여 압제자의 앞잡이 노릇을 한 사례와, 나약한 이들이 폭압적 권력에 용감히 저항한 사례를 무수히 많이 보아왔다.
 
인지 부조화는 우리의 스승이다. 타인의 겉모습이 그 사람의 덕과 품성과 일치하는 건 아니라는 인지 부조화를 뼈저리게 겪어야,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을 볼 줄 아는 것이 우리의 성숙의 척도임을 깨닫는다. 천문학에서 천동설이 지동설로 전환을 맞이했듯, 우리 인생에서도 한번쯤은 이런 전환을 맞이해야 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이를 더해가는 일만이 아니라, 인생에서 안목의 전환을 만드는 일이다. 인문학 공부란 인지 부조화를 극복하는 공부이다. 이를 통해 눈에 보이는 현상 너머까지 시야를 확대하는 일이다.
 
'차별과 혐오 없는 세상을 향해'. 지난해 9월 서울 동작구 대방역 인근 여의대방로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오체투지를 하던 모습. (사진=연합뉴스)
 
괴물학에서 인간학으로
 
고대 중국에서도 제자백가의 시대 이전은 괴물학의 시대였다. 가령 전설적인 태평성세인 요순시대에는 개처럼 생긴 괴수인 '혼돈', 날개가 달린 호랑이 형상의 '궁기', 사람 머리에 호랑이 몸집을 한 괴수 '도올',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탐욕의 괴물 '도철'이라는 '네 가지 흉악한 괴물(四凶)'이 있었다. 기록을 보면, 순임금은 요임금의 신하로 있을 때 이 사흉을 제압한 뒤, 이들을 동서남북 사방으로 유배시켜 그곳에서 요괴를 방어하도록 했다(《春秋左傳》文公 18年)고 한다. 이건 또 무슨 판타지 소설 같은 얘기일까?
 
사흉 이야기에는 당시 고대 중국인들의 세계관이 투영되어 있다. 좀 더 시기를 내려오면 고대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거처하는 땅을 중원(中原)이라고 부르고, 그 중원의 사방은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의 네 오랑캐가 둘러싸고 있다고 설명한다. 혼돈, 궁기, 도올, 도철이라는 사흉은 네 방향에 거처하는 오랑캐들의 선조다. 이건 가장 오래된 괴물학이다.
 
괴물학이란 자신을 중심에 두고 자기 주변의 다른 존재를 괴물로 만드는 망상을 말한다. 인류의 모든 겨레는 주변의 타자와 만나면서 예외 없이 괴물학을 만들어냈다. 고대 중국인들만 주변의 겨레들을 오랑캐라고 부른 게 아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을 '헬라스'라고 부르고 주변 겨레들을 '야만인'이란 뜻에서 '바르바로스'라고 불렀다. 고대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야웨라는 신이 선택한 선민이며, 주변 겨레들은 모두 우상숭배자로 취급했다. 모든 자기중심주의는 괴물학을 만들어낸다.
 
괴물학이 겨레의 바깥을 향한 것만은 아니다. 괴물학 숭배자들이 보기에는 종족 내부에도 괴물은 늘 존재한다. 그들이 정해놓은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모든 이른바 '비정상적인' 존재들은 괴물 취급을 당한다. 옛 이야기를 하나 읽어보자.
 
노나라 희공 21년 여름, 크게 가물어서 희공이 무당과 천상바라기를 불태워 죽이려 했다. 장문중이 말했다. "무당과 천상바라기를 태워 죽이는 것은 가뭄에 대한 대비책이 아닙니다. 성곽 수리, 씀씀이 절약, 모든 백성들이 농사일에 힘쓰고 각자 자기 본분을 다하도록 권하는 것이 힘써야 할 일입니다. 무당과 천상바라기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늘이 그들을 죽이려 했다면 그들을 태어나지도 않도록 했을 것입니다. 만약 무당과 천상바라기가 가뭄을 일으킬 수 있다면, 그들을 불태워 죽임으로써 가뭄이 더 심해질 것입니다." 임금이 장문중의 말을 따랐다. 그 해에 비록 가뭄은 들었지만 백성들이 크게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春秋左傳》 僖公 21年)
 
무당, 천상바라기, 이런 이들은 사회 안에서 괴물 취급당하는 존재들이다. 무당은 기우제를 주관하는 사제로서 가뭄을 해결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불태워죽이겠다는 것이다. 가뭄을 제대로 방비하지 못한 군주의 책임 전가를 위한 고전적인 속죄양이다. 천상바라기란 척추 측만증에 걸려서 얼굴이 하늘을 향하고 있는 장애인을 말한다. 가뭄이 들었을 때 천상바라기를 불태워 죽이겠다는 이유는 더욱 황당하다. 천상바라기가 하늘을 향해 얼굴을 치켜들고 있기 때문에 상제가 비를 내리려다 그의 코에 비가 들어갈 것을 걱정해 비를 내리지 못한 결과 가뭄이 들었다는 것이다. 지극히 허무맹랑한 얘기지만 다 문헌에 나오는 이야기들이다.[《春秋左傳》 僖公 21年에 대한 두예(杜預)의 주석 참고]
 
희생양이든 괴물이든 일시적으로 현상을 호도할 수는 있지만,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되지 못한다. 이 맹목적인 괴물 만들기의 허망함과 허위를 깨달은 이들로부터 인문학은 여정을 시작했다. 위 이야기에 등장하는, 무당과 천상바라기를 불태워 죽이는 일에 반대한 장문중은 최초의 인문주의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맹목적으로 가뭄이 들면 무당과 천상바라기를 불태워 죽여야 한다고 생각할 때, 그 일상적 광기에 반대하는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괴물'들과 함께 불태워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마녀 사냥의 시대인 중세 유럽에서 마녀에 대한 화형에 반대하는 일과 마찬가지였다.
 
괴물학은 인간의 이성이 유년기일 때의 일인 것만은 아니다. 전대미문의 유대인 대량 학살을 낳은 히틀러의 인종주의는 현대에도 괴물학이 성행하고 있다는 대표적인 증거이다. 타인에 대해 이해하려하지 않는 이들은 타인을 괴물로 만든다.
 
인문학은 괴물학과 싸워온 투쟁의 기록이다. 괴물학은 타자를 괴물로 만들지만, 인문학은 타자를 탐구한다. 무당과 천상바라기와 마녀를 불태워죽이는 이들은 괴물학의 신봉자들이지만, 인문주의자는 그 광기와 싸우는 이들의 이름이다. 인문학은 낯선 존재인 타자에 괴물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대신 그 낯섦에 호기심을 품고 그 정체를 탐구한다.
 
선진 시대의 도가 사상은 그 시대의 선진적인 사상이었다. 그들은 자연 현상에 대해서 천명이니 상제니 들먹이면서 신비화하지 않고 음양(陰陽)의 조화와 부조화, 기(氣)의 움직임으로 설명하려고 했던 학파였다. 음양의 조화와 부조화, 기의 움직임과 같은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것으로서 자연현상을 설명하려는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도가 사상이 나왔다. 이런 이들이 무당과 천상바라기를 불태워 죽이는 일에 찬성할 리 없다. 장문중은 이런 선진적인 소신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 목숨을 걸고라도 무당과 천상바라기를 불태워 죽이는 악습에 반대할 수 있었다.
 
배움은 매일 더해가지만, 실천하는 일은 매일 덜어낸다
 
《노자(老子)》에는 알쏭달쏭한 구절이 하나 나온다. 
 
배움은 매일 더해가지만, 길을 실천하는 일은 매일 덜어낸다. 덜어내고 또 덜어내어 인위적으로 무엇을 함이 없는 지경에 이른다. 인위적으로 무슨 일을 하려고 들지 않지만 그러나 하지 못함이 없다.(《道德經》48章)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노자의 이 발언은 공부에 대한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하는 중요한 방법론을 내포하고 있다.
 
노자는 주(周)나라 왕립도서관장이자 '사관(史)'이었다. 당시 사관은 역사의 초고만 쓰는 사람이 아니라, 크고 작은 정책을 결정하기 위해 천자의 자문에 응하는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다. 그런 인물이던 노자는 주나라의 도(道)가 쇠퇴했다며 서역으로 은둔한다. 노자가 중국 주나라와 서역 사이의 관문인 함곡관(函谷關)을 나가려 할 때, 관문지기 윤희(尹喜)란 이가 노자를 알아보고 이렇게 청한다. "당신은 우리 시대의 최고 지성인데 이렇게 은둔해버리면 당신이 간직해온 지혜가 사라져버리지 않겠습니까"라며 글을 간청하자, 노자가 오천 글자를 남기고 소를 타고 떠났다는 설화가 전해온다.
 
다시 노자의 공부법으로 돌아가보자. 노자는 "배움은 매일 더해가지만, 길을 실천하는 일은 매일 덜어낸다(爲學日益, 爲道日損)"이라고 했다.
 
노자는 매일 덜어냄으로써 '무위(無爲)'의 상태에 도달하는 방법론을 말한다. 이 구절은 《주역》의 더함에 관한 괘인 '익괘(益卦)'와 덜어냄에 관한 괘인 '손괘(損卦)'의 철학과 연결되어 있다.
 
두 괘 모두 자신의 기득권, 자기의 유리함, 자신의 지식을 내려놓고 겸허하게 새로운 지혜를 받아들이라고 권하는 괘다. 즉, 기존의 것을 덜어내는 일이 새로운 더함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비움으로써 채우고 덜어냄으로써 더하라"는 명제는 노자가 말하는 공부의 핵심이다. 
 
지금까지 누려왔던 기득권, 지금까지 안주해왔던 악습과 관행, 이런 모든 것들을 내려놓는 일은 말만큼 쉽지는 않다. 이런 악습과 관행과 기득권을 내려놓음으로써 새로운 배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거리의 도서관'. 시민들이 서울북페스티벌 당시 서울도서관 외벽에 놓인 책꽃이의 책을 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상수 철학연구자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철학과 대학원에서 주역 연구로 석사를, 제자백가의 논리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겨레신문 기자를 거쳐 웅진씽크빅 중국법인장, 서울시교육청 대변인을 지냈다. 공자·노자·장자·손자·순자·한비자 등 제자백가의 사상과 철학에 대한 강의와 글쓰기를 하고 있으며, 고전의 현재적인 번역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원효·김만중·정약용 등 한국철학 연구에 빠져있다. 저서로 <아큐를 위한 변명> <한비자, 권력의 기술> <바보새 이야기> <오랑캐로 사는 즐거움> 등이 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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