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중국에서도 제자백가의 시대 이전은 괴물학의 시대였다. 가령 전설적인 태평성세인 요순시대에는 개처럼 생긴 괴수인 '혼돈', 날개가 달린 호랑이 형상의 '궁기', 사람 머리에 호랑이 몸집을 한 괴수 '도올',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탐욕의 괴물 '도철'이라는 '네 가지 흉악한 괴물(四凶)'이 있었다. 기록을 보면, 순임금은 요임금의 신하로 있을 때 이 사흉을 제압한 뒤, 이들을 동서남북 사방으로 유배시켜 그곳에서 요괴를 방어하도록 했다(《春秋左傳》文公 18年)고 한다. 이건 또 무슨 판타지 소설 같은 얘기일까?
사흉 이야기에는 당시 고대 중국인들의 세계관이 투영되어 있다. 좀 더 시기를 내려오면 고대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거처하는 땅을 중원(中原)이라고 부르고, 그 중원의 사방은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의 네 오랑캐가 둘러싸고 있다고 설명한다. 혼돈, 궁기, 도올, 도철이라는 사흉은 네 방향에 거처하는 오랑캐들의 선조다. 이건 가장 오래된 괴물학이다.
괴물학이란 자신을 중심에 두고 자기 주변의 다른 존재를 괴물로 만드는 망상을 말한다. 인류의 모든 겨레는 주변의 타자와 만나면서 예외 없이 괴물학을 만들어냈다. 고대 중국인들만 주변의 겨레들을 오랑캐라고 부른 게 아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을 '헬라스'라고 부르고 주변 겨레들을 '야만인'이란 뜻에서 '바르바로스'라고 불렀다. 고대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야웨라는 신이 선택한 선민이며, 주변 겨레들은 모두 우상숭배자로 취급했다. 모든 자기중심주의는 괴물학을 만들어낸다.
괴물학이 겨레의 바깥을 향한 것만은 아니다. 괴물학 숭배자들이 보기에는 종족 내부에도 괴물은 늘 존재한다. 그들이 정해놓은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모든 이른바 '비정상적인' 존재들은 괴물 취급을 당한다. 옛 이야기를 하나 읽어보자.
노나라 희공 21년 여름, 크게 가물어서 희공이 무당과 천상바라기를 불태워 죽이려 했다. 장문중이 말했다. "무당과 천상바라기를 태워 죽이는 것은 가뭄에 대한 대비책이 아닙니다. 성곽 수리, 씀씀이 절약, 모든 백성들이 농사일에 힘쓰고 각자 자기 본분을 다하도록 권하는 것이 힘써야 할 일입니다. 무당과 천상바라기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늘이 그들을 죽이려 했다면 그들을 태어나지도 않도록 했을 것입니다. 만약 무당과 천상바라기가 가뭄을 일으킬 수 있다면, 그들을 불태워 죽임으로써 가뭄이 더 심해질 것입니다." 임금이 장문중의 말을 따랐다. 그 해에 비록 가뭄은 들었지만 백성들이 크게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春秋左傳》 僖公 21年)
무당, 천상바라기, 이런 이들은 사회 안에서 괴물 취급당하는 존재들이다. 무당은 기우제를 주관하는 사제로서 가뭄을 해결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불태워죽이겠다는 것이다. 가뭄을 제대로 방비하지 못한 군주의 책임 전가를 위한 고전적인 속죄양이다. 천상바라기란 척추 측만증에 걸려서 얼굴이 하늘을 향하고 있는 장애인을 말한다. 가뭄이 들었을 때 천상바라기를 불태워 죽이겠다는 이유는 더욱 황당하다. 천상바라기가 하늘을 향해 얼굴을 치켜들고 있기 때문에 상제가 비를 내리려다 그의 코에 비가 들어갈 것을 걱정해 비를 내리지 못한 결과 가뭄이 들었다는 것이다. 지극히 허무맹랑한 얘기지만 다 문헌에 나오는 이야기들이다.[《春秋左傳》 僖公 21年에 대한 두예(杜預)의 주석 참고]
희생양이든 괴물이든 일시적으로 현상을 호도할 수는 있지만,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되지 못한다. 이 맹목적인 괴물 만들기의 허망함과 허위를 깨달은 이들로부터 인문학은 여정을 시작했다. 위 이야기에 등장하는, 무당과 천상바라기를 불태워 죽이는 일에 반대한 장문중은 최초의 인문주의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맹목적으로 가뭄이 들면 무당과 천상바라기를 불태워 죽여야 한다고 생각할 때, 그 일상적 광기에 반대하는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괴물'들과 함께 불태워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마녀 사냥의 시대인 중세 유럽에서 마녀에 대한 화형에 반대하는 일과 마찬가지였다.
괴물학은 인간의 이성이 유년기일 때의 일인 것만은 아니다. 전대미문의 유대인 대량 학살을 낳은 히틀러의 인종주의는 현대에도 괴물학이 성행하고 있다는 대표적인 증거이다. 타인에 대해 이해하려하지 않는 이들은 타인을 괴물로 만든다.
인문학은 괴물학과 싸워온 투쟁의 기록이다. 괴물학은 타자를 괴물로 만들지만, 인문학은 타자를 탐구한다. 무당과 천상바라기와 마녀를 불태워죽이는 이들은 괴물학의 신봉자들이지만, 인문주의자는 그 광기와 싸우는 이들의 이름이다. 인문학은 낯선 존재인 타자에 괴물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대신 그 낯섦에 호기심을 품고 그 정체를 탐구한다.
선진 시대의 도가 사상은 그 시대의 선진적인 사상이었다. 그들은 자연 현상에 대해서 천명이니 상제니 들먹이면서 신비화하지 않고 음양(陰陽)의 조화와 부조화, 기(氣)의 움직임으로 설명하려고 했던 학파였다. 음양의 조화와 부조화, 기의 움직임과 같은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것으로서 자연현상을 설명하려는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도가 사상이 나왔다. 이런 이들이 무당과 천상바라기를 불태워 죽이는 일에 찬성할 리 없다. 장문중은 이런 선진적인 소신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 목숨을 걸고라도 무당과 천상바라기를 불태워 죽이는 악습에 반대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