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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백가로 나를 바꾸다④)손자(孫子)의 ‘지피지기(知彼知己)’: 적을 아는 공부
입력 : 2022-03-22 06:00:18 수정 : 2022-03-22 06:00:18
평화학의 창시자로 꼽히는 손자의 전쟁관
 
요한 갈퉁이란 학자가 있다. 그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평화학(peaceolgy)’ 연구자다. 그의 노트북엔 세계 주요 분쟁지역의 이슈와 역사와 쟁점과 해결방안이 빼곡이 들어차 있다. 그가 지난 1997년 한국에 왔을 때, 나는 그를 인터뷰하면서, ‘평화학’이란 이 독특한 학문의 창시자로 누구를 꼽을 수 있겠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뜻밖에도 그는 고대 중국의 손자(孫子)를 들었다. “손자는 전쟁을 연구했지만,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최선으로 삼았기 때문에 평화학의 창시자로 꼽을 만하다”는 것이었다.
 
손자는 중국 춘추·전국시기에 벌어진 거대한 논쟁에서 좀 외따로 떨어져 있는 듯 보인다. 그의 사상은 사람의 생사와 국가의 존망이 갈리는 치명적이고 격렬한 군사적 충돌의 한가운데서 나왔다. 그럼에도 그의 사유에서도 고대 중국적 사유양식의 특질은 어김없이 드러난다.
 
신중한 전쟁이 최선
 
《손자병법(孫子兵法)》의 저자 손무의 유년시절과 성장 과정에 대해서는 전해오는 자료가 없다. 때문에 그가 어떤 노력을 통해 병법의 최고봉이 될 수 있었는지도 알기 어렵다. 사마천의 《사기》의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에도 그의 유년기와 성장기에 대한 기록은 없다. 다만 제나라 사람인 손무가 남쪽에 있는 오나라로 가 당시의 오나라의 왕인 합려(闔廬)를 만났을 때의 일화만 소개하고 있다.
 
손자를 만난 합려는 그를 시험에 들게 한다. “그대가 쓴 열 편의 글은 과인이 모두 보았소. 군사 사열을 시험 삼아 해볼 수 있겠소?” 손자가 대답한다. “가능합니다.” 합려가 말한다. “부인들도 사열 훈련을 시킬 수 있겠소?” 손자가 다시 이렇게 대답한다. “가능합니다.” 
 
손자는 합려의 허락을 받아서 궁중에서 미녀 180명에게 사열 훈련을 시킨다. 손자는 이들을 두 개의 부대로 나누고, 임금이 가장 아끼는 궁녀 두 사람을 각각 대장으로 삼는다. 그러고서 궁녀 모두에게 모두 창을 쥐게 하고 명령을 내리지만, 궁녀들은 크게 웃을 뿐 따르지 않는다. 그러자 손자가 말한다. “약속이 분명하지 않고, 명령을 따르는 걸 익숙하게 만들지 못한 것은 장군의 죄입니다.”
 
이어 손자는 또 다른 명령을 내리지만 궁녀들은 다시 크게 웃을 뿐 행동하지 않는다. 그러자 손자는 이렇게 말한다. “약속이 분명하지 않고, 명령을 따르는 걸 익숙하게 만들지 못한 것은 장군의 죄입니다. 그러나 이미 약속이 분명하게 되었음에도 군사들이 군령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부대장의 죄입니다.” 그러고는 두 부대의 대장, 즉 왕이 가장 총애하는 두 후궁을 처형하려 한다.
 
당상 위에서 이를 지켜보던 왕은 크게 놀라 전령을 보내 “처형하지 말기 바란다”는 말을 전하지만 손자가 물러서지 않았다. “신은 이미 명령을 받아 장군이 되었사오며, 장군은 군사 작전에 들어가면, 왕명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고는 두 사람의 궁녀를 처형해버린다.
 
손자는 다음 서열의 궁녀 두 사람을 각각 부대장으로 삼은 뒤, 다시 북소리로 명령을 내린다. 어떻게 되었을까? 궁녀들은 좌우 전후 이동이나 앉고 일어서라는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척척 맞아 떨어진다. 
 
그것을 본 손자는 왕에게 전령을 보내 보고하기를 “군사들의 훈련이 끝났습니다. 왕께서 내려와 보셔도 됩니다. 왕께서 이들을 부리고자 하신다면, 물이나 불이라도 뛰어들도록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나라 왕의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왕이 말한다. “장군은 그만하고 숙소로 돌아가 쉬도록 하시오. 과인은 내려가서 보고 싶지가 않소이다.” 손자가 대답한다. “임금께서는 다만 그 말씀만 좋아하시고, 그 실질을 쓰실 수 없으십니다.” 이에 합려는 손자가 용병술에 능하다는 걸 알고, 장군으로 삼는다.(《史記》 <孫子吳起列傳>)
 
이같은 일화를 접하고서 손자를 전쟁광으로 볼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손자는 군사행동은 국가의 큰일로서, 백성의 삶과 죽음이 갈리는 일이요, 나라의 존속과 패망이 갈리는 길이므로,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고 보았다.(兵者, 國之大事, 死生之地, 存亡之道, 不可不察也。 (《孫子兵法》 <計>)
 
손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쟁을 오래 끌어 나라를 이롭게 한 경우는 지금까지 있지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군사행동의 해로움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군사행동의 이로움을 충분히 이해할 수가 없는 법이다.(夫兵久而國利者, 未之有也。故不盡知用兵之害者, 則不能盡知用兵之利也。 《孫子兵法》 <作戰>)
 
손자는 전쟁의 해로움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가 전쟁을 제대로 이끌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앞에서 살펴본 손자의 일화는 자신의 유능함을 증명하기 위해 과도한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생사를 내걸어야 전쟁을 앞두고 병법을 단지 ‘말이나 의견’ 정도로 취하려 했던 군주의 눈을 뜨게 한 것이다.
 
지피지기의 공부법
 
살아가다보면 마치 전쟁터에 있는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어떤 시험에서 탈락하면 인생이 아예 박살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무엇인가를 이루고 싶은 일이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런 절실함이 없으면 일이, 공부가 잘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오왕 합려가 손자의 병법을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절실했다면 그런 장난 같은 시험에 들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그만큼 절실한 것이어야 한다.
 
손자의 병법 전체를 관통하는 것도 바로 ‘아는 것의 중요성’이다. 무엇을 알아야 하는 것일까? 바로 상대를 알고, 나를 알아, 전체를 보는 것이다. 바로 ‘지피지기(知彼知己)’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밝은 임금과 현명한 장수가 전장에 나아가면 반드시 승리를 거두고 여느 사람들보다 뛰어난 공을 이루는 까닭은 그들이 (적의 상황을) 먼저 알기 때문이다. 먼저 아는 것은 귀신에게 빌어서 가능한 게 아니고, 다른 일을 미뤄 유추해 아는 것도 아니며, 별자리 따위를 헤아려 아는 것도 아니다. 반드시 사람으로부터 취하여 적의 실정을 아는 것이다.(明君賢將, 所以動而勝人, 成功出於衆者, 先知也。先知者不可取於鬼神, 不可象於事, 不可驗於度, 必取於人, 知敵之情者也。 《孫子兵法》 <用間>)
 
여기서 “반드시 사람으로부터 취하여 알아야 한다”고 손자가 강조한 부분이 중요하다. 많은 오류들이 ‘짐작하는 것’과 ‘아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나온다. ‘소문’과 ‘사실’을 확인하지 않으려고 하는 데서 많은 오류가 일어난다. 
 
손자의 공부론인 ‘지피지기’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어가 보기로 하자. 손자는 다섯 가지 기준으로 판단하고 조사해보라고 말한다. 첫째는 길(도: 道)이고, 둘째는 하늘[天]이고, 셋째는 땅[地]이고, 넷째는 장수[將]이고, 다섯째는 법[法]이다. 
 
그 나라의 임금이 길을 제대로 따르고 있는지, 즉 임금으로서 해야 할 도리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 날씨를 비롯하여 때의 흐름을 아는 것, 전쟁이 벌어질 지형이 어떻게 되어 있으며 유리함과 불리함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아는 것, 전쟁터에서의 법령이 제대로 행해지고 있는지를 아는 것. 이런 것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알아야 할 것들이 점점 구체적으로 늘어난다. 
 
아는 것이 힘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는데, 손자의 말대로라면 ‘아는 것으로 이미 승부가 결정된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손자의 가르침은 특히 ‘나를 아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 위태롭지 않고, 적을 모르고 나를 알면 한 번 이기고 한 번 지며,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매번 싸울 때마다 반드시 위태롭다.”(知彼知己, 百戰不殆; 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不知彼不知己, 每戰必殆。 (《孫子兵法》 <謀攻>)  
 
지난 2016년 서울 현대차그룹 양재동 사옥을 방문한 중국 스타이펑 전 장쑤성 성장(왼쪽)이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에게 '손자병법'을 전달하고 있는 모습. 장쑤성은 손무가 손자병법을 완성한 곳으로 유명하다. (사진=현대기아차 제공·뉴시스)
 
적을 알고 나를 아는 소통의 기술
 
손자의 이야기에는 재미있는 대목이 많다. 그 중 하나가 “지혜로운 장수는 적에게서 먹기에 힘쓴다”는 것이다.(《孫子兵法》 <作戰>) 이 말은 군량미를 수송하는 일이 엄청난 노역이던 고대 전쟁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손자의 병법에는 이런 전쟁물자 조달의 어려움을 염두에 두고, 적국에 들어가면 현지에서 군수물자를 조달할 것을 강력히 권장하는 내용이 나온다. 
 
손자가 말하는 ‘전쟁’ 전체를 공부에 대한 은유로 읽기에는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때문에 손자가 말하는 ‘적(敵)’을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마련인 ‘논적(論敵)’으로 해석해보겠다.
 
‘논적’이란 내가 받아들인 논리에 반대하는 논리를 펼치는 이들을 말한다. 공부를 하다 보면 이런 논적을 수용하고 포용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늦깎이로, 혼자 공부하는 이들의 경우는 더욱 어렵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지점이다.
 
논적은 내가 못 보고 있는 허점과 빈틈을 채워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현명한 자는 자신의 적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고 했고, 벤저민 프랭클린은 “너의 적들을 사랑하라. 그들은 너에게 너의 결핍을 말해주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공부에 몰두하다보면 때로 아집에 빠지기 쉽다. 내가 좋아하고 집중하는 일일수록 그럴 위험이 크다. 이럴 때 가까이에 든든한 논적이 있다면 이런 위협을 제거해줄 수 있다. 
 
나를 알고 적을 알라고 하는 손자의 ‘지피지기’ 공부법의 핵심은 결국 ‘소통’이다. 흔히 손자의 핵심 메지시를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신중한 손자가 그런 말을 했을 리 없다. 이 자리에서 원문을 정확하게 알고 넘어가도록 하자. 원문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然)”이다. 
 
나를 아는 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상대와의 대화를 통해서 나의 욕구와 목적을 더 정확하게 파악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손자가 강조한 ‘지피지기’를 전쟁터에서 우리의 일상으로 가져온다는 것은 바로 소통하기에 겁내지 않고,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을 오히려 가까이 두며, 이 과정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알아내는 힘을 키운다는 것이다.
 
독단에 빠지지 않고 상대방의 존재를 존중하고 탐구하며, 그로부터 지혜를 얻어낼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손자가 말한 ‘지피지기’ 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은 “자기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않는다(勿施於人, 己所不欲)”라고 한 공자의 황금률과도 통할 수 있는 사유다.
 
이상수 철학연구자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철학과 대학원에서 주역 연구로 석사를, 제자백가의 논리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겨레신문 기자를 거쳐 웅진씽크빅 중국법인장, 서울시교육청 대변인을 지냈다. 공자·노자·장자·손자·순자·한비자 등 제자백가의 사상과 철학에 대한 강의와 글쓰기를 하고 있으며, 고전의 현재적인 번역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원효·김만중·정약용 등 한국철학 연구에 빠져있다. 저서로 <아큐를 위한 변명> <한비자, 권력의 기술> <바보새 이야기> <오랑캐로 사는 즐거움> 등이 있다.
 
(표=뉴스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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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나볏

뉴스토마토 김나볏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