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판단 기준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제자백가로 나를 바꾸다⑤)묵자의 정의 '겸(兼)의 공부': 표준을 정하는 공부
입력 : 2022-03-29 06:00:16 수정 : 2022-04-04 15:50:36
모든 투자 상황은 논쟁적이다. 이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자 한다면 스스로 판단 기준(표준)을 정확히 만들 줄 알아야 한다.
 
울분으로부터 시작된 공부
 
묵자(墨子)의 이름은 적(翟)이다. 그는 스스로 천민이라고 밝혔으며 목공 노동자로서 당대 최고의 기량을 지닌 인물로 꼽혔다. 목공 분야에서 당대 최고의 마에스트로로 꼽혔던 공수반(公輸般)이라는 이와 대등한 실력을 겨룰 정도였다. 묵자는 세계 철학사에서 보기 드물게도 가장 낮은 천민 신분, 노동자 신분에서 몸을 일으킨 인물이다. 
 
기록에 따르면 묵적은 수많은 서적을 소장하고 있었고 사람들과 세상을 바로잡는 방도에 대해 늘 밤새워 토론했다. 그는 천민으로서 신분제가 엄격한 당시 사회에 대해 해결할 수 없는 울분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울분은 그가 젊었을 때 초나라 왕을 알현하고자 한 일화에서 읽을 수 있다. 초나라의 신하들은 그가 천민이라는 이유로 초나라 왕을 만나지 못하게 가로막았다. 강대국이던 초나라에서 유세조차 한 번 할 수 없었던 묵적은 다음과 같이 울분을 토해냈다.
 
   하찮은 풀뿌리가 약성을 지니고 있다면 죽어가는 생명도 살릴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천한 사람의 생각이라 하더라도 세상을 바로잡기 위한 사색을 담고 있다면 세상에 크게 쓰일 수 있는 것이다. 대왕이 생명이 위독하면 하찮은 풀뿌리라 하더라도 약초를 다려 먹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신분이 천하다고 하여 내 생각과 말조차 듣지 않는다는 것은 크게 잘못된 태도다.(《墨子》)
 
묵적은 자신이 천한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신분제로 고착된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고민해왔는데 자신의 생각조차 말해볼 기회를 얻지 못함에 대해 크게 분노했다. 그래서 그 뒤로는 왕후장상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유세하는 것을 포기한다. 직접 민중을 조직하는 운동가로 나선다. 묵자는 세계에서 최초로 자신의 이념을 실천하기 위해 사상적 동지들을 규합해 조직원으로 만든 최초의 활동가로 꼽아도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
 
묵자의 울분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울분 없이 사는 삶은 세상에 무관심한 삶이다. 세상의 부조리와 불합리, 부정의를 보며 울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게 인간이다. 이런 울분은 실천과 공부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묵자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이후 묵자는 공자가 정립한 유학을 ‘정의롭지 않은 별애(別愛)’라고 비판하며, 세상 사람들을 두루 사랑하라는 ‘겸애(兼愛)’설을 주장해 유학과 대등할 정도의 세력으로 성장한다. 비록 묵자 학파는 짧게 성했지만 묵자는 제자백가 중에서는 유가에 맞먹는 사상을 남긴 대단한 철학자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묵자(墨子·BC470~BC391?)는 춘추전국시대 때 사상가로, 차별하지 않고 두루 대하여 사랑하는 '겸'의 사랑을 주창했다. (사진=뉴시스)
 
얼마든지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다
 
육체노동자인 묵자가 왜 굳이 공부를 했는지 이해가 잘 안 될 수 있다. 게다가 솜씨도 좋은 목수였다면 그 분야에서 인정받고 많은 부와 명성을 쌓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묵자는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야말로 더 많은 사람들을 먹이고 살리는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묵자가 오려(吳慮)라는 은둔자와 나눈 대화가 있다. 오려는 노나라의 남쪽 산골짜기에서 겨울엔 질그릇을 굽고 여름엔 농사를 지으며 스스로를 순임금과 견주며 살던 사람이었다. 묵자는 일부러 그를 찾아간다.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오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의로움, 의로움하는데, 어찌 그걸 말로 할 수 있겠습니까?” 묵자는 이렇게 되묻는다. “선생님께서 말하는 의로움이란 힘이 있으면 이로써 남을 위해 수고하고, 재산이 있으면 이로써 남에게 나누어주는 걸 말합니까?” 오려가 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러자 묵자가 말한다.
 
“저는 일찍이 계산해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농사지어서 천하의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겠는지를. 제아무리 풍년이 든다 해도 겨우 농가 한 집의 수확량에 해당할 겁니다. 이걸 천하에 고루 나눈다고 하면 한 사람 앞에 좁쌀 한 됫박도 돌아가게 할 수 없을 겁니다. 설사 좁쌀 한 됫박씩 세상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 치더라도, 그걸로 천하의 굶주린 이들을 배부르게 할 수 없음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는 제가 베틀을 돌려서 천하 사람들을 입힐 수 있겠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최선을 다한다면 여염집 아낙네가 짜는 만큼의 베를 짜낼 수 있겠지요. 그걸 천하에 고루 나눈다면 한 사람 앞에 헝겊조각 하나씩 돌아가게 하기도 힘들겠지요. 설사 사람들에게 헝겊조각 하나씩 돌아가게 한다 한들 그걸로 세상의 헐벗은 이들을 따뜻하게 하기에 역부족임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저는 제가 갑옷을 입고 예리한 병장기를 들고 각국의 환란을 구할 수 있겠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습니다. 잘돼야 전투에서 사내 한 사람의 몫을 감당하겠지요. 한 사람의 전투원이 싸워서 대군을 막아낼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겠지요. 저는 이런 일에 종사하는 게 통치계급을 설득하고 평민들과 선비들을 설득하는 것만 못하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묵자는 공부의 효용을 정확하게 꿰뚫어 본 인물이다. 특히 묵자는 공부가 사람과 사람을, 사람과 세상을, 세상과 세상을 서로 물들게 하는 일이라는 점을 간파했다. 묵자는 실을 염색하는 것을 보며 이런 말을 남긴다. “쪽빛에 물들이면 쪽빛이 되고, 황색에 물들이면 황색이 되는구나. 염료가 바뀌면 그 색깔 또한 변하는구나. 다섯 가지 염료를 넣으면 다섯 가지 색깔로 변하는구나. 그러므로 무엇에 물드는 일은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子墨子言見染絲者而嘆曰: 染於蒼則蒼, 染於黃則黃。所入者變, 其色亦變; 五入必而已則爲五色矣。故染不可不愼也! <所染>) 
 
‘나’라는 사람은 무엇과 가까이 하느냐, 어떤 위치에 있느냐 따라 완전히 다른 존재로 바뀔 수 있다. 타고난 나, 정해진 나, 바뀌지 않는 나라는 것은 없다. 어떤 공부를 하느냐에 얼마든지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다. 
 
세상의 표준(三表)을 배우라
 
간혹 ‘이런 건 살아가는 데 쓸모도 없는데 왜 배워야 하나’라는 항변이 마음 속에서 치솟아 오를 때가 있다. 무엇은 배워야 하는 것이고, 무엇은 배우지 않아도 되는 것인지, 이 기준을 스스로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공부는 누군지도 모르지만 남이 시켜서 하는 일이 되고,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일로 여겨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런 항변에 대답해주는 사상가도 묵자다. 묵자는 ‘표준’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묵자가 말한 표준이란 무엇을 말할까?
 
   컴퍼스에 들어맞는 것을 동그라미라고 하고, 컴퍼스에 들어맞지 않는 것을 동그라미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므로 동그라미와 동그라미가 아닌 것은 모두 정확히 알 수 있다. (中吾規者, 謂之?, 不中吾規者, 謂之不?。是以?與不?, 皆可得而知也。<天志> 中)
 
목수와 도공의 철학자 묵자다운 통찰이다. 왜 표준이 필요할까? 기준이 있어야 정확히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컴퍼스(規)’라는 기준이 있다면, 어떤 물체나 그림이 원형인지 아닌지, 얼마나 찌그러졌는지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 묵자는 자신의 노동의 경험에서 자연히 세상에서 사태를 정확히 판단하고 인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법도, 표준, 기준이 필요함을 잘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리공담(空理空談)’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 소용이 없는 헛된 말이라는 뜻이다. 공부가 깊어지면 반드시 대립하고 모순하는 논리를 판단할 수 있는 척도, 법도, 표준, 기준이 필요하다. 그런 것이 없다면 말은 그럴싸해 보이나 아무 소용이 없는 공리공담의 유혹에 쉽게 빠지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많은 일들 중 어떤 것이 의미있는 일인지, 어떤 것이 무의미한 일인지를 헷갈려한다. 그 기준이 없다면 자기 중심을 잡기가 매우 힘들 것이다. 이 기준을 묵자는 ‘표준’이라는 개념으로 제시한 것이다. 
 
만약 ‘좋은 국가를 만들다’고 할 때 좋은 국가가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 표준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좋은 국가라는 개념이 법으로 규정돼 있지 않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좋은 국가’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 ‘표준’이 있어야만 ‘정의’도 있는 것이다. 때문에 묵자는 자신의 표준을 ‘정의’로도 설명한다. 
 
   만사 가운데 정의보다 귀한 것은 없다. 지금 어떤 사람에게 말하기를 ‘그대에게 모자와 신발을 줄 테니 대신 그대의 손발을 자르자고 한다면 그대는 따르겠는가?’라고 한다면, 반드시 따르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런가? 모자와 신발이 손발보다 귀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말하기를 ‘그대에게 천하를 줄 테니 대신 그대의 목숨을 가져가겠다고 한다면 그대는 따르겠는가?’라고 한다며 반드시 따르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런가? 천하가 자기 몸보다 귀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 한 마디를 다투느라 서로 죽이는 데에까지 이르니, 이는 정의가 그 몸보다 더 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하기를 ‘만사 가운데 정의보다 귀한 것은 없다’고 하는 것이다.(萬事莫貴於義。今謂人曰: ‘予子冠履, 而斷子之手足, 子爲之乎?’ 必不爲。何故? 則冠履不若手足之貴也。又曰: ‘予子天下, 而殺子之身, 子爲之乎?’ 必不爲。何故? 則天下不若身之貴也。爭一言以相殺, 是貴義於其身也。故曰: 萬事莫貴於義也。<貴義>)
 
‘겸해서 취하라’는 가르침
 
묵자의 사상 가운데 가장 빛나는 부분은 무엇일까? 나는 ‘겸(兼)’ 한 글자로 나타낼 수 있을 것 같다. 묵자는 ‘효제(孝弟 : 어버이와 연장자를 잘 섬김)’를 내세운 공자의 가르침을 ‘별애(別愛)’이라고 비판했다.대신 묵자는 이 세상의 모든 어버이와 연장자를 똑같이 더불어 사랑하는 ‘겸애(兼愛)’을 내세웠다. 이 겸애를 설명하기 위해 묵자는 ‘겸(兼)’과 ‘별(別)’이라는 두 개념을 정의한다. ‘별’은 치우친 사랑을 말한다. 반면 ‘겸’은 두루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묵자는 ‘두루 대하지 않는 것’은 어질다고 말할 수 없으며, 정의도 아니라고 말한다. 
 
   두루 하면 어진 것이고 정의로운 것이다.(兼則仁義矣)
 
묵자는 이렇게 겸과 별을 대비시키면서 당시의 선비들을 ‘겸사(兼士)’와 ‘별사(別士)’로 나누기도 했다. 자신과 같이 자기와 남의 구별을 두지 않는 사해동포주의를 주창하는 선비는 ‘겸사’이고, 자기 자신, 자기 집안, 자기 나라만의 이익을 앞세우는 사람을 ‘별사’라고 했다. 이 때문에 묵가를 ‘잡가(雜家)’라고 분류하기도 한다.
 
묵자가 말하는 두루 아우른다는 ‘겸’의 개념은 나아가 ‘구별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다’는 의미로 나아간다. 묵자의 ‘겸’을 이렇게 해석할 때, 이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하는 훌륭한 공부 방법론이 된다.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모순된 상황에 대해 지혜로운 해결책을 제시하는 방법을 찾게 한다. 
 
이 ‘겸’의 방법론이 모순하는 사태를 무조건 이해할 수 있다는 억지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창과 방패처럼 어떤 상황에서는 모순처럼 보이는 사태도 겸해서 사용할 수 있는 관점을 발견하기 위한 방법론이다. 우리는 이미 이와 같은 관점의 유용성을 과학의 분야에서 발견한 바 있다. 바로 빛이 입자인가 파동인가 하는 논쟁이다. 이 논쟁은 오랫동안 과학계를 들끓게 했다. 여기에 상대성이론을 정립한 아인슈타인이 빛 입자설과 파동설을 ‘겸’하여 “빛은 파동이자 입자”라고 말해 이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묵자가 사유한 ‘겸(兼)’의 방법은 후대에 전국시대 사상의 1차 종합자라 불리는 순자(苟子)와 백가쟁명(百家爭鳴)을 종합한 ‘잡가’의 결정판인 《여씨춘추(呂氏春秋)》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상수 철학연구자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철학과 대학원에서 주역 연구로 석사를, 제자백가의 논리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겨레신문 기자를 거쳐 웅진씽크빅 중국법인장, 서울시교육청 대변인을 지냈다. 공자·노자·장자·손자·순자·한비자 등 제자백가의 사상과 철학에 대한 강의와 글쓰기를 하고 있으며, 고전의 현재적인 번역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원효·김만중·정약용 등 한국철학 연구에 빠져있다. 저서로 <아큐를 위한 변명> <한비자, 권력의 기술> <바보새 이야기> <오랑캐로 사는 즐거움> 등이 있다.
 
(표=뉴스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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