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삼성 합병 반대 주식매수가 상향 이끈 신재연 LKB 변호사
대법서 합병 반대 주식매수청구가 기준 제시한 첫 판례
미국선 델라웨어 대법 판례 따라 가중평균 방식 적용
입력 : 2022-04-25 16:53:23 수정 : 2022-04-25 16:53:23
신재연 변호사. 사진=법무법인 LKB&파트너스
[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합병을 앞두고 누군가에 의해 구 삼성물산 주가가 낮게 의도됐을 가능성, 모든 주주, 시장참여자가 아닌 특정주주, 전문가가 이를 이용하거나 악용했을 가능성을 최대한 배제할 수 있는 시점은 제일모직 상장일 전일인 2014년 12월 17일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2016년 5월30일 서울고법 민사35부(재판장 윤종구)가 결정문에 적시한 내용이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절차상 문제가 없었다고 본 1심의 논리를 뒤집은 것이어서 당시 법원으로선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그로부터 6년여가 지난 이달 14일 대법원은 이 결정을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제일모직 상장일 전일을 기준일로 선택해 자본시장법 시행령에서 정한 방법을 유추 적용해 산정된 가격을 구 삼성물산 주식의 공정 가액으로 판단한 원심의 결론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합병 반대 주주의 주식매수청구가격 기준을 제시한 최초 사례다.
 
8년여 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하며 적정 주식매수가를 받아내기 위해 싸워온 삼성물산 주주 일성신약은 이번 대법원 결정으로 3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회수할 수 있게 됐다. 또 일성신약 주주는 구 삼성물산 주식을 주당 5만7234원이 아닌 6만6602원에 넘길 수 있어 다른 주주들 보다 주당 9368원씩 삼성물산으로부터 더 지급받게 된다.
 
2015년 7월 삼성 미래전략실은 주요 주주인 일성신약의 합병 동의를 얻기 위해 윤병강 회장에게 개인적 보상을 해주겠다고 제시했으나 일성신약은 이 싸움을 법정으로 끌고 갔다. 일성신약의 뒤에는 법무법인 LKB&파트너스(LKB)가 있었다. 긴 싸움을 함께해온 LKB&파트너스 신재연 변호사(사진)를 만나 이번 대법원 결정의 의미를 들어봤다.
 
삼성 제안 거절하고 LKB 찾은 일성신약 창업주
 
처음 이 사건을 가져온 사람은 LKB 대표변호사였다. 그때만 해도 신 변호사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반대 소수주주를 대리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당시 LKB 대표는 신 변호사에게 “범상치 않은 분을 만나고 왔다”며 소송 진행 계획과 팀을 구성하라고 지시했다. 대표가 말한 ‘범상치 않은 분’은 옛 삼성물산 지분의 2% 규모를 쥐고 있던 일성신약 창업주 윤병강 회장이었다.
 
삼성 측은 일성신약의 찬성표를 얻기 위해 법률대리인 김앤장 등을 끼고 협상에 나섰지만 끝내 윤 회장을 설득하지 못했다. 그렇게 매수가격 결정의 무대는 법원으로 옮겨졌다.
 
사진=법무법인 LKB&파트너스

일성신약 변호인단은 LKB 이광범 대표변호사와 신 변호사 주축으로 자본시장법 관련 소송경험이 많은 변호사들 위주로 꾸려졌다. 별도로 회계사들 자문도 구했다. 이들은 삼성그룹 오너일가를 위한 계열사 간 합병에 반대하는 소수주주들이 적정 가격에 자신의 주식을 회사에 넘길 수 있도록 하는 선례를 이번 재판으로 남기자는 데 의기투합했다.
 
신 변호사는 “상장사들 사이 합병비율은 자본시장법과 시행령에 기준일과 그 기준일 이전의 특정기간의 주가를 산술평균해서 정하라고 규정하고 있고, 대법원으로서도 그 예외를 인정하는 것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부분을 어떻게 돌파하느냐가 관건이었다”며 “대법원 판례가 예외를 인정하는 경우, 그러니까 합병을 미리 계획한 사람들에 의해 시장주가가 왜곡돼 있었다는 점을 밝히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고 말했다.
 
주효했던 전략은 자본시장법상 계열사 간 합병 시 기준일을 정해 주식매수가격을 산정하되, 시장주가의 왜곡이 덜한 시점으로 기준일을 바꿔 제시하는 일이었다. 주식매수가 산정 기준일을 변경해야 한다고 재판부를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자본시장법 시행령은 합병을 위한 이사회결의일 이전의 일정기간(1주일, 1개월, 2개월) 시장주가를 산술평균한 가격을 주식매수가격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발표 전부터 시장에선 △제일모직 주식 보유비율이 높은 이재용 부회장 등 오너 일가 이익을 위해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하게 합병비율이 결정되리라는 전망이 우세했고 △삼성물산의 실적부진이 의도됐을 수 있다는 의심이 있었으며 △국민연금은 합병 전 삼성물산 주식을 매도해 삼성물산 주가 하락 요인이 됐다.
 
"삼성물산 주가 왜곡에 소수주주들 손해" 
 
이를 근거로 신 변호사 등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이사회 결의일(2015년 5월26일)이 아닌 그보다 3개월 앞선 2014년 12월 말 제일모직이 상장하던 시점을 삼성물산 매수가 산정 기준일로 삼아야 한다고 재판부를 설득했다.
 
그는 “사실 시장주가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등의 치밀한 전략에 의해 왜곡돼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며 “하지만 그로 인해 이재용 부회장 등 지배주주들이 이익을 본만큼 삼성물산 소수주주들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 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그래서 합병에 반대해 주식매수를 청구한 일성신약과 그 관계자들을 대리해 법원에 주식매수가격결정을 신청하고, 합병무효 소송도 제기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 사례가 인정된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서울고법 결정이 날 때까지 그 주장(기준일 변경)이 받아들여질지 솔직히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며 “쉽지 않았지만 다행히 서울고법에서 시장주가가 왜곡됐음을 인정했고, 가격산정 기준일을 저희 주장에 따라 제일모직 상장일을 기준으로 해 주식매수가격을 산정해줬다”고 밝혔다.
 
이후 국민연금의 부적절한 개입, 삼성그룹이 제일모직 주가부양 과정에서 자본시장법 등을 위반한 정황 등이 박영수 전 특별검사와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재판부에 ‘주식매수가 산정 기준일’ 변경 제시
 
신 변호사는 “(당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비율이 지배주주일가에게 유리하게 하기 위해서는 삼성물산의 주가가 낮고, 제일모직의 주가를 높여야 했는데 그 작업은 오래전부터 계획돼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이른바 실행의 착수 시점은 제일모직의 상장시점이 아니었나 싶다”고 설명했다.
 
2014년 12월 상장 직후부터 제일모직에 대한 호재성 공시와 언론보도 등이 나온 반면 삼성물산은 주택사업 철수 등 악재성 보도가 잇따른 배경으로 해석된다. 실제 제일모직 주가는 상장 이후 줄곧 상승한 반면 삼성물산의 주가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에 따라 LKB는 시장주가의 왜곡이 제일모직의 상장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이뤄졌다고 봤다. 제일모직의 상장일을 기준점으로 잡아 그 이전의 시장주가를 평균 산술하는 것이 그나마 공정한 가격이 될 것이라는 게 신 변호사 등 LKB의 판단이었다.
 
"미국, 기업 합병 시 순자산가치 등 반영"
 
LKB가 재판부를 설득하는 과정에선 ‘미국 델라웨어 가중평균’ 방식도 제시됐다. 신 변호사는 “한국에서 예외를 인정하는 기본원칙은 있었지만 예외적인 방법으로 합병 반대주주의 주가를 결정한 사례가 거의 없었다”며 “미국에선 시장주가가 공정한 가격을 산정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는 비판이 많았고, 그래서 여러 주에서 시장가치에 순자산가치, 수익가치를 함께 고려하여 주식가격을 산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수주주 보호를 중요하게 여기는 미국에선 델라웨어 주 대법원 판례에 따라 기업 순자산가치, 시장가치, 수익가치에 적절한 가중치를 부여해 가중평균 값을 매겨 주식매수가격을 결정한다.
 
그는 “합병, 물적분할, M&A 등의 과정에서 이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측은 항상 지배주주들이기 때문에 지배주주들이 이익을 보는 구조로 설계될 수밖에 없다”며 “그 결과 소수주주들은 지배주주들이 이익을 본만큼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배주주들은 이런 작업들을 하기 위해 자본시장법 등 관계법령을 검토하고, 그 법령이 정한 기준에 맞으면서도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방법으로 절차를 진행한다”면서 “그런데 이번 결정으로 자신들의 계획과 달리 법원이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을 것이고, 그렇다면 더 조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동원산업-동원엔터 합병비율 소수주주에 불리"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자본시장에 큰 후유증을 남겼다. 경영권 승계과정을 밟는 기업들은 이 사례를 벤치마킹해 오너 일가에 유리한 방식으로 합병비율을 왜곡하고, 이 과정에서 소수주주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잇따라 발생했다.
 
최근에는 동원그룹이 추진 중인 동원산업-동원엔터프라이즈(비상장사) 합병 계획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유사 사례로 꼽힌다. 동원산업 소수주주들은 합병에 반대하며 소송 등을 준비 중이다. 동원산업-동원엔터프라이즈 합병비율은 1대 3.8로 산정됐다.
 
이에 대해 신 변호사는 “(동원산업-동원엔터) 합병비율이 지나치게 소수주주에게 불리하게 산정된 것 같다”며 “특히 동원엔터의 경우 비상장회사라서 그 평가가 정당하게 된 것인지 반드시 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소수주주 보호 위한 제도적 보완 필요" 
 
그러면서 한국 자본시장에 소수주주 권익 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물적분할이나 M&A 과정에서 소수주주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며 “회사의 유망한 사업 분야를 보고 투자했는데 그 부분을 다른 회사로 분할 상장해버리면 모회사의 주식을 산 사람들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음에도 주식매수청구 등 관련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LG화학이 배터리부문을 LG에너지솔루션으로 분사(물적분할) 상장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 같은 물적분할 상장으로 회사는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는데 성공했지만 모회사인 LG화학 주식을 보유한 개인투자자들은 손실을 입었다.
 
신 변호사는 “M&A 등 과정에서 지배주주들은 막대한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는데 반해 소수주주들의 주식은 헐값이 되는 경우가 많다”며 “소수주주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상화폐 시장에 대해선 “시장의 일탈을 규제하면서도 시장을 육성할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봤다.
 
그럼에도 이번 법원 결정과 같은 판례가 정립된다면 한국 자본시장도 점차 소수주주를 위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게 신 변호사의 시각이다.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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