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태의 경제편편)재정지출에 한도를 설정해야
입력 : 2022-06-08 06:00:00 수정 : 2022-06-08 06:00:00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세계적 공급망 차질이 계속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억눌려 있던 소비 수요는 점차 되살아난다. 이 때문에 석유류와 가공식품, 외식 가격 등등이 줄줄이 오르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거의 13년9개월 만에 가장 높은 5.4%까지 치솟았다.
 
물가 급등을 초래한 요인이 잦아들 가능성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당분간 5%대 상승률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머지않아 한계에 도달한 후 상승세가 꺾일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도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아직은 희박해 보인다. 오히려 6%대로 올라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물가안정이 지금 가장 다급한 경제정책의 과제로 대두됐다. 물가 안정세를 잡아야 한다는 데 정부와 한국은행 등 경제정책 당국의 의견이 일치한다. 한국은행은 금리를 꾸준히 올려왔다. 지난달에도 기준금리를 연 1.50%에서 1.75%로 올렸다. 이에 따라 가계대출 증가세가 꺾이는 등 일단 긍정적인 신호도 나타나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은행의 금리인상만으로 물가가 안정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경제정책도 보조를 맞춰야 한다. 재정팽창을 되도록 억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정부는 취임하자마자 사상 최대 규모의 추가경정 예산을 편성했다. 그것도 국회 심의 과정에서 애초에 정부가 편성한 59조4000억원에서 62조원으로 늘어났다.
 
지금처럼 물가 불안 심리가 팽배할 때 거액의 예산을 편성해 지출하는 것은 사실 무리한 일이다. 이미 지난 2년여 동안 코로나19 사태를 치르면서 극단적 저금리가 유지돼 온 결과 시중 유동성이 풍부하다. 그리고 그 과잉유동성이 끊임없이 물가 불안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그런데 거액의 재정지출이 더해지니 물가 불안 심리에 기름을 붓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자영업자들의 손실을 보상해야 할 필요성과 불가피성이 너무 분명했다. 따라서 이번 추경예산에 대해서는 아무 이의가 제기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게다가 이번 지방선거 과정에서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저마다 사회간접자본 증설이나 신규 추진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런 공약이 모두 당장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두고두고 재정에 부담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물론 정부가 타당성을 제대로 심사해 최대한 방어해야 한다. 그렇지만 정치적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면 이 역시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사실 이번 추경예산 편성하는 과정에서도 시급하지 않은 예산이 슬그머니 적지 않게 들어갔다. 필요하다면 내년 본예산에 반영하면 되는데, 굳이 넣었다. 맑은 물에 흙탕물을 쏟아부은 것이다.
 
반면 앞으로 저출산과 고령화 진행에 따라 복지 수요는 꾸준히 늘어난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나 복지를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따라서 복지 부문의 지출 증가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만약 이런 요구를 모두 반영시키려고 한다면 재정지출은 한없이 늘어난다. 따라서 적절한 선에서 억제해야 한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아주 큰 일이 없는 한 추경예산을 올해는 또 편성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추경 편성을 자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할 것 같지 않다.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재정지출의 증가폭을 해마다 일정 비율 이하로 묶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이를테면 3% 또는 5% 등으로 못 박거나 아니면 경제성장률을 바탕으로 한도를 설정하자는 것이다. 그래야 사회변화에 따라 꼭 필요한 지출을 하되, 무리한 SOC 투자 등 불요불급한 지출을 막을 수 있다. 그래야 국가부채 증가세도 꺾을 수 있다. 재정지출의 구조조정 역시 자동으로 실현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물가가 안정돼 있을 때는 다소 융통성을 발휘할 수도 있다.
 
그런 기준이 확립되면 앞으로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두고두고 준칙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윤석열정부가 먼저 합리적 기준을 만들고 5년 동안 실행하면 좋을 듯하다. 그렇게 유익한 선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단지 정부·여당이 일방적으로 기준을 세우면 곤란하다. 먼 훗날까지 내다보는 긴 안목으로 여야가 함께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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