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게이션)‘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 개인 고찰 담긴 나르시시즘 탐미
박찬욱 스타일·시선, 극단적으로 쏠린 ‘관조’의 결과물…보편 타당하지 않은 사랑
‘헤어질 결심’, 보편 타당한 과정의 사랑 아닌, 결과론적 사랑에 대한 ‘감독 시선’
입력 : 2022-06-23 01:00:02 수정 : 2022-06-23 01:00:02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박찬욱 감독은 관망하고 관조하는 듯한 시선의 영화적 연출 시각을 유지해 왔다. ‘올드보이는 두 남자의 감정충돌에 개입할 듯하면서도 다가서는 걸 거부하며 관객들의 몰입감을 높이는 쪽에 집중했다. 카메라 움직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리를 유지했다. 전체를 내려다 보는 듯한 의식적 시각의 비주얼 전환은 눈에 띄었다. ‘박쥐는 또 어땠나. 가톨릭 사제와 한 여자의 변화에 직접적 개입보단 그들 타락의 상황 자체를 관망하고 관조하는 것으로 일관한다. ‘아가씨에선 동성애란 단어가 태생적으로 담고 흘러 갈 수 밖에 없는 생경함을 오히려 변태적 성욕의 대척점으로 끌어가 거부감 없는 받아 들임으로 만들어 버렸다. 박찬욱 감독은 매번 그랬던 것 같다. 상황을 놓고 그 상황을 지켜보면서 그 상황을 이해하는 쪽에 설 것인지, 아니면 판단 기준 자체를 관객에게 전달할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나도 모르겠다. 답을 알려달라며 질문하는 쪽에 설 것인지. 그 차이에 따라 극 자체 흐름을 좌우하는 스타일로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요구하는 연출자의 고집을 지켜왔다.
 
 
 
헤어질 결심은 그 고집이 정점에 달한 스타일과 흐름이 느껴진다. 자신의 스타일 그리고 시선, 그 두 가지가 가장 극단적으로 몰린 관조의 결과물로 다가온다. 관조 자체가 특정한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것이라면, 박찬욱 감독의 극단적 관조는 말 그대로 자신이 바라보는 것에 대한 고집을 넘어선 아집에 가까운 결정체다. 이건 지금까지 그가 작품 속에서 사랑을 보편 타당한 지점에서 해석하고 바라보게 만들지 않은 경계선을 가리킬 수도 있다. 언제나 그의 작품에선 사랑은 어렵고 타당하지 않아야 했다.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 사진=CJ ENM
 
헤어질 결심은 남자보단 여자의 마음에 치우친다. 남자는 해준(박해일) 그리고 여자는 중국인 서래(탕웨이). 우선 영화는 전반과 후반으로 나뉜다. 사랑은 두 사람이 주고 받는 감정의 흐름이다. 하지만 영화는 과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주는 것을 보여주고 받은 것을 그린다. ‘받는 것이 아닌 받은 것을 담은 이유가 있다. 그게 헤어질 결심이란 제목에 담긴 심증이라 부르고 싶은 이유다.
 
영화 시작과 함께 등장한 한 남자의 죽음. 산에서 떨어져 죽었다. 사망자 아내는 서래. 사건 담당자는 해준. 해준은 직업적 습관에 따라 서래를 의심한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다. 그리고 기억한다. 서래가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것, 담배를 피울 때의 버릇, 웃는 표정. 해준의 머리 속 기억의 방은 이제 서래의 모든 것으로만 가득하다.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 사진=CJ ENM
 
하지만 해준도 누군가에게 관조 당하고 있었다. 의심하는 나로서만 존재해 온 해준에게 그건 역설이었다. 자신의 방에 서래가 가득 차는 동안 자신도 누군가의 방에 가득 차여 가고 있었단 걸 당연히 몰랐다. 서래의 기억의 방에 해준도 가득가득차여 가고 있었다.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 사진=CJ ENM
 
서로의 방에 가득히 차여가는 과정은 이랬다. 해준은 서래를 의심한다. 서래는 자신 주변을 맴도는 해준이 궁금하다. 두 사람 사이엔 자연스럽게 ?’란 감정이 솟는다. 해준은 서래의 모든 것에 ?’란 질문을 한다. 서래 역시 해준의 모든 것에 ?’를 붙인다. 그렇게 두 사람이 사이에서 만들어진 공통점은 생각지도 못한 것을 만들어 낸다. 관심이다. 그들은 서로가 궁금했다. 의심이 관심이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거기서 또 하나의 벽을 넘으려 한다. 해준은 결혼을 했다. 서래도 남편이 죽었지만 결혼했다. 결혼했지만 다른 사람을 사랑해도 될지 두 사람은 궁금하다. 서래는 해준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가 불편하다. 서래는 자신의 손에서 반지를 뺐다. 그 흔적조차 해준은 불편하다. 조금씩 그렇게 비슷해져 가는 중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의심 했었다. 그리고 의심은 관심이었음을 알게 된다. 관심은 이내 불편을 가져왔다. 그런데 불편조차 닮아가는 모습에 이제 두 사람은 온전히 감정을 드러낸다. 결혼했지만 다른 사람을 사랑해도 될지에 대한 질문. 그건 서래가 해준에게 그리고 해준이 서래에게 하는 답이 정해진 질문이다. 사실 너무 간단했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해준에게 자신의 숨결을 불어 넣어 주던 서래의 호흡. 서로 그렇게 숨결을 맞추듯 흠결을 맞춰가면 되는 것이었다. 서래는 남편이 죽었다. 해준은 그런 서래를 의심했다. 거기서 출발한 각자의 흠결은 이제 숨결처럼 한 자리에서 맞춤을 한다. 이제 사랑이라 말하고 싶다.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 사진=CJ ENM
 
하지만 이들이 느끼는 사랑의 끝은 파국이다. 당연하다. 자연스럽지 못한 과정이었다. 매끄럽지 못한 흐름이었다. 의심이 관심으로 변하고 관심이 불편을 만들어 싹을 틔운 사랑은 온전치 못하다. 박찬욱의 사랑은 그렇게 또 어렵고 타당하지 않게 끝을 맺는다. 밀물에 무너지는 높다란 모래성은 조금씩 조금씩 쓸려 나간다. 차츰차츰 쌓여 올린 감정의 파고는 역설적으로 흘러오는 밀물에 소리 없이 무너지고 쓸려가는 보잘것없는 무엇일 뿐이다.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 사진=CJ ENM
 
박찬욱 감독이 쌓아 올린 헤어질 결심감정은 그래서 위태롭다. 흔치 않은 감정 속에서 가장 흔한 감정을 끄집어 내는 과정은 특별하면서도 특별할 것 없는 결과물에 도달한다. 가장 보편 타당한 사랑의 감정을 위해 박찬욱 감독이 선택한 과정과 방식은 쌓아 올린 감정의 붕괴에서부터 시작되는 일방적이고 결과론적인 완성의 도출이다. 사랑이란 감정이 주고 받는소통의 과정이라면 박찬욱의 세계관에선 주고 받은것에 집중할 뿐이다. 과정이 아닌 결과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세계관은 언제나 항상 잔인함이 앞선 감정의 결을 현실에 주입시키려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 사진=CJ ENM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 반을 해준의 의심이 사랑으로 치환되는 과정과 붕괴로 마무리되는 흐름을 서스펜스로 채우는 데 집중한다. 히치콕의 여러 영화 그리고 자신의 앞선 작품에서 보여 준 수 많은 흐름과 과정의 느낌으로만 가득 채웠다. 색채와 감정의 채움이 박찬욱이란 인장을 너무 강하게 담아낸 공간으로만 다가온다. 반면 중반 이후는 오롯이 서래의 시선으로 끌고 간다. 박찬욱 스타일이라 하기엔 상당히 생경하다. 박찬욱 감독이 그렇게 밝힌 헤어질 결심멜로색채가 오히려 이 지점에서 더 강하게 다가온다. 물론 그 안에서도 박찬욱의 인장은 너무 강해 이질감이 느껴진다. 그의 멜로에선 포근함보단 강렬함과 야릇함의 경계만 느껴진다.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 사진=CJ ENM
 
해준과 서래, 두 사람의 자의식이 만들어 내는 감정 흐름과 결을 위해 138분이 흘러간다. 이 시간 을 절반씩 잘라 나눴다. 한쪽은 해준 그리고 나머지는 서래. 그 외에 나머지 인물 역할은 해준과 서래 두 사람의 자의식이 만들어 낸 죄책감일 뿐이었다. 해준과 서래는 나머지 인물들에 대해 그들은 존재하고 또 고로 그것뿐이다고 전하고만 있다.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 사진=CJ ENM
 
이 정도라면 헤어질 결심은 결국 앞서 말한 것처럼 주는 것받는 것의 개념에서 등장하는 보편 타당한 과정의 사랑이 아닌, ‘주는 것받은 것’, 즉 결과론적 사랑을 향한 박찬욱의 개인적 고찰이 담긴 나르시시즘의 탐미일 뿐이다. 그의 시선이 언제나 강력한 인장을 띄고 있음을 기억한다면 헤어질 결심자체가 그리 놀랍지 않단 것과 이 영화의 멜로가 기대보단 진하게 다가오지 않는단 이견도 나름 설득이 된다. 개봉은 오는 29.
 
P.S 김신영의 캐스팅은 이 영화의 가장 큰 흠결이다. 그의 연기에 흠을 잡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칸 영화제 감독상 트로피보다 국내 흥행에 더 관심이 기울어진단 박찬욱 감독 바람이라면, 김신영의 존재감은 헤어질 결심의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가장 완벽한 실수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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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범

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