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재명 '전화통화'…'단독' 아닌 '여야 대표' 회담(종합)

윤 "당이 안정되면 여야 대표들과"…민주당 "형식·절차 뭐가 중요한가"

[뉴스토마토 장윤서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신임 당대표가 빠른 시일 내에 만나기로 했다. 이 대표는 민생을 위해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속히 만나야 한다며 ‘형식·절차’에 구애받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회담이 성사된다면 지난 21대 대통령선거 이후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윤 대통령 측에서 ‘여야 당대표’라는 단서를 유지하면서 의례적 수사에 그칠 공산도 커졌다. 지난 대선에서 이 대표를 상대로 불과 0.73%포인트 차이로 신승을 거둔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6개월 만에 169석의 거대 야당 대표로 재기한 이 대표를 만나는 것이 퍽 부담인 모양새다.

 

이재명 민주당 신임 당대표가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을 접견,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표면상 ‘화기애애’했던 윤석열·이재명 통화…“민생입법 협력”

 

이 대표는 30일 오전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의 예방을 받고 윤 대통령의 축하 난을 전달받았다. 축하 난에는 ‘축 취임’이라고 적혔다. 이날 윤 대통령과의 통화도 이뤄졌다. 비공개로 전환된 뒤 이 수석이 즉석에서 윤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고,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직접 통화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이에 이 대표도 “좋다”고 응하면서 두 사람의 전화 통화는 성사됐다. 두 사람은 3~4분간 통화를 이어갔다.

 

윤 대통령은 먼저 이 대표에게 “(당대표)당선을 축하드린다”며 “당 대표직을 수행하시는 데 있어 도울 일이 있으면 저도 돕겠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경제가 어려운데 민생입법에 초당적인 협력을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도 민생입법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화답하는 등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문재인 전 대통령 내외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이 대표는 당대표로 선출된 다음날인 지난 29일 문 전 대통령 예방을 위해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았다. 당내 계파 갈등을 치유하고 통합을 강조한 행보였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에게 평산마을의 경호 구역을 확대해 준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그간 문 전 대통령 부부와 마을 주민들은 극우 유튜버 등의 욕설 시위에 시달리다 최근에는 흉기마저 등장하는 등 안전에 큰 위협을 받았다. 극우 유튜버들의 행태를 묵인한다는 여론 질타가 이어졌고, 김진표 국회의장이 직접 윤 대통령에게 해당 문제 해결을 건의하자 사저 경호가 기존 100m에서 300m로 확대했다. 이 대표는 또 “성공한 대통령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는 덕담도 건넸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인 3월 7일 부산 중구 창선삼거리와 경기 안산 단원구 안산문화광장 앞에서 각각 유세를 열고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이재명 “빠른 시일 만나자”…속내는 동상이몽

 

이번 통화에서 두 사람은 “빠른 시일 내 만나자”는 데 의견을 일치했다. 표면상으로는 이 대표가 지난 29일 ‘영수회담’을 제안한 데 대해 윤 대통령이 화답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단독 회담 가능성은 극히 줄어든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당이 안정되면 가까운 시일 내에 여야 당대표님들과 좋은 자리를 만들어 모시겠다”고 말했다. 우선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이 극심한 내분에 시달리고 있다. 국민의힘이 위기를 수습, 지도체제를 확립하더라도 여야 당대표들과 만나는 방식으로 추진할 의사도 분명히 했다.

 

이 수석도 예방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가)총재가 아니니까 ‘영수’라는 표현은 맞지 않다”며 “당대표 만남이라고 해서 이런 일들을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수석에 따르면 이날 통화에서도 ‘영수회담’이라는 표현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 대표 제안대로 '독대' 형식을 취할지도 결정되지 않았다. 이 수석은 “그 부분은 앞으로 조율을 해야 할 것 같다”며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결국 두 사람이 마주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데다 형식과 절차 합의도 남게 되는 등 최종 성사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 대표를 불편해하는 윤 대통령의 의중이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지난 대선에서 불과 0.73%포인트 차이로 승부가 결정난 이 대표가 169석의 제1야당 대표로 재기해 국정운영의 ‘협력 대상’이 된 점이 못내 껄끄러울 수 있다. 게다가 윤 대통령이 이 대표와 단독으로 만나게 될 경우 ‘윤석열 대 이재명’의 대선 구도가 재연되는 등 이 대표의 차기 대선 행보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반면 이 대표 입장에서는 윤 대통령과의 회동이 불리할 것이 없다. ‘민생’을 위해 경쟁자였던 윤 대통령과 ‘협력’한다는 이미지도 강화할 수 있고, 자신에게 제기된 사법리스크에서 시선을 돌리는 효과도 일부 기대할 수 있다. 박성준 민주당 대변인도 “(이 대표는)국민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대통령과 민주당 대표가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왔다”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형식이나 절차가 뭐가 중요한가”라고 ‘단독 회담’을 고집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장윤서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