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한의사 초음파진단기 사용, 의료법 위반 아니야"
전원합의체, 무죄 인정·판결 변경…새 기준 제시
입력 : 2022-12-22 16:27:35 수정 : 2022-12-22 17:10:59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한의사가 초음파진단기를 한의학적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의료법상 금지한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로 볼 수 없어 처벌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22일 진료 중 초음파진단기기를 사용해 환자 신체 내부를 촬영한 혐의(의료법 위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유죄를 인정해 벌금 8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취지로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사건의 쟁점은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 결과를 한의학적 진단에 참고하는 방법으로 진료행위를 한 것이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의료법 27조 1항은 '의료인은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면서 이를 어길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가운데) 등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2일, 한의사의 초음파진단기기 사용이 의료법 위반인지 여부에 대한 판결을 선고하고 있다. 사진=대법원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 개념 쟁점
 
종전까지 대법원은 △한의사의 해당 의료기기 사용에 대해 법이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지 △해당 의료기기 등의 개발·제작 원리가 한의학의 학문적 원리에 기초한 것인지 △해당 의료기기 등을 사용하는 의료행위가 한의학 이론이나 원리의 응용·적용에 해당하는지 △한의사가 해당 의료기기 등을 사용하더라도 보건위생상 위해 우려가 없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의료법 위반 여부를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번 판결에서 "의료행위의 가변성과 학문적 원리·과학기술 발전 등에 비춰 종전 판단 기준은 새롭게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의료기기 사용 금지에 대한 법적 규정 외에 한의사가 의료기기를 진단 보조수단으로 사용할 경우 '통상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지를 새 기준으로 제시했다. 또 전체 의료행위에서 한의사가 해당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한의학적 의료행위 원리의 응용·적용과 명백히 무관하지 않는 이상 허용된다는 기준도 제시했다. 
 
재판부는 이에 따라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취지의 법률 규정이 없는 점 △초음파 투입에 따라 인체 내에 어떠한 부작용이 보고된 바 없고 임산부나 태아를 상대로도 안전하게 사용되고 있는 점 △한의사가 진단의 정확성과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보조적 진단수단으로 현대 과학기술에서 유래한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것을 한의학적 원리와 배치되거나 무관하다고 볼 수 없는 점 등을 인정해 A씨의 행위는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헌재 결정 당시와 현재 사정 많이 달라져"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은 앞서 헌법재판소가 2012~2013년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본 결정에 다소 배치되는 것이다. 재판부는 그러나 "그 당시와 비교할 때 현재 한의과 대학의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에 관한 의료행위 전문성 제고의 기초가 되는 교육 제도·과정이 지속적으로 보완·강화되어 왔다"고 지적했다. 
 
또 "의료계에서 초음파 진단기기는 인체 내부를 보는 소위 '제2의 청진기'로 인식될 만큼 범용성·대중성·기술적 안전성이 담보되고 있어 이를 한의사에게 진단 보조도구로서 허용하는 것은 의료법 1조에서 정한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헌법 10조에 근거한 의료서비스에 대한 국민의 선택권을 합리적인 범위에서 보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다만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은 한의사로 하여금 침습정도를 불몬하고 모든 현대적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취지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에 관한 새로운 판단기준에 따라 한의사가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형사처벌의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라면서 "이번 판결을 의료법에 규정된 이원적 의료체계를 부정하는 취지로 확대해석하거나  한의원의 초음파 검사료가 국민건강보험의 대상이 된다는 취지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A씨는 2010년 3월부터 2012년 6월까지 초음파진단기기로 환자 신체 내부를 촬영한 뒤 자궁내막 상태 등을 진료한 혐의로 기소돼 1, 2심에서 벌금 80만원을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초음파 진단기기는 판독에 관해서 서양의학의 학문적 원리에 기초하여 개발·제작된 것이고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 자체로 인한 위험성은 크지 않지만 진단은 중요한 의료행위이기 때문에 환자 상태를 정확히 판독하지 못하면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상의 위험을 발생시킬 우려가 있다"면서 유죄로 판단했다. 이에 A씨가 상고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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