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피로 쓴 "어머니시여"…영등포시장역에 무슨 일이
블리자드 디아블로4 출시 기념 '헬스테이션' 행사
손전등으로 칠흑같은 어둠 속 이교도 범죄 수사
작품 무대 '성역'의 잔혹하고 비참한 분위기 재현
괴담에 초점 둬, 본작 모르는 성인도 참여 독려
입력 : 2023-05-19 10:00:00 수정 : 2023-05-19 10:44:38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달리는 전철 창문에 비친 사람의 그림자, 안내 방송에 뒤섞인 여자 목소리···. 날이 더워지면서 '유령 승강장' 괴담이 서울을 떠돕니다. 지난 17일, 괴이한 현상의 진원지인 영등포시장역 지하 4층으로 내려가 봤습니다.
 
이날 오전 11시. 지하 2층에 마련된 임시 현장 상황실에서는 괴담 제보를 보도하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뒤엔 악마 소환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마법진 그림이 빨간 실 사이로 어지럽게 붙어있었습니다.
 
17일 영등포시장역 지하 2층에 마련된 임시 현장 상황실. 괴현상을 보도하는 뉴스 화면 뒤로 사건 단서들이 붙어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악마 숭배 집단의 유치한 장난에 수사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지 묻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실종자 얼굴과 끔찍한 살해 현장 사진 위에 붙은 '제물' 포스트잇을 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 곧이어 뉴스가 끝나고 특별 수사본부장의 안내 방송이 나왔습니다.
 
"현재까지의 상황으로 미뤄 보아 이 사건은 악마, 이교도, 제물, 이 세 가지 키워드와 아주 큰 연관이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수사본부장은 사건 현장에 피로 적힌 특정 문장이 누구의 말인지, 바닥에 뿌려진 빨간 꽃잎은 누구 흔적인지, 희생자 시신은 누구를 위한 제물인지, 누가 왜 이런 일을 꾸몄는지 등 여섯 가지 의문을 해결해달라고 했습니다.
 
현장 인솔 요원을 따라 내려간 지하 4층은 칠흑같이 어두웠습니다. 손전등으로 바닥을 비추는 순간, 참혹한 범행의 흔적이 어둠보다 깊은 공포를 일으켰습니다.
 
이윽고 떨리는 빛이 벽에 닿았고, 거대한 혈서가 수사단을 내려보며 말했습니다. "죄악은 타고난 권리다."
 
천사 이나리우스와 함께 인간 세상 ‘성역’을 만든 릴리트의 망언 “죄악은 타고난 권리다”가 영등포시장역 지하 4층에 적혀 있다. 악마를 숭배하는 (게임 속) 이교도 소행으로 보인다. (사진=이범종 기자)
 
그렇습니다. 여기는 디아블로 세계의 인간 세상 '성역'에 돌아온 인류의 어머니이자, 증오의 군주 메피스토의 딸 '릴리트' 추종자들이 다녀간 곳입니다.
 
디아블로 세계에서 인류는 천사와 악마의 혼혈 자식입니다. 천상과 지옥의 전쟁에 환멸을 느낀 천사 이나리우스와 연인 릴리트가 도피처로 성역을 만들었고, 여기서 태어난 자식이 네팔렘입니다. 이후 이나리우스가 세계석이라는 물질로 네팔렘의 힘을 약화한 결과가 오늘날의 인간입니다.
 
릴리트는 일련의 사건으로 추방됐다가 최근 악마 소환 의식으로 성역에 돌아왔습니다. 그는 교회에서 설교하는 목사 뒤에 나타나, 자녀들에게 죄악을 권했습니다. 이에 감화된 인간들이 웃으며 목사를 해치는 장면이 오픈 베타 기간에 공개됐습니다. 이후 이나리우스가 자신을 따르는 자식들과 릴리트에 맞서는 내용이 펼쳐질 전망입니다.
 
죄 짓고 어머니 찾는 이교도의 벽 글씨가 영등포시장역 지하 4층 곳곳에 적혀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조사단이 발걸음을 옮길수록 성역의 참담한 분위기가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디아블로 1편에서 게이머를 벌벌 떨게 했던 도살자(부처)의 방을 떠올리게 하는 사건 현장, 언제 열릴지 모르는 관이 즐비한 복도를 지나면서 이교도의 벽 글씨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구원은 빛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 "어머니의 말씀을 따라라" "빛은 거짓이다" "어머니시여"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악마를 숭배하는 이교도 소행으로 보이는 범행 현장. 디아블로 1편 초반 게이머를 떨게 한 도살자의 방을 연상케 한다. (사진=이범종 기자)
 
수사 막바지에 이르자, 희생자가 눕혀진 제단을 찾았습니다. 1편에서 레오릭 왕의 둘째 아들 알브레히트 왕자를 납치한 대주교 라자루스를 처단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희생자를 발견했던 상황이 떠올랐습니다.
 
곧이어 시신에서 흘러내린 피가 바닥에 파인 소환진을 채웠고, 저 멀리 맞은편 벽에 불이 켜졌습니다. 머리 없는 자식을 끌어안은 릴리트의 동상입니다.
 
그런데 동상 앞에 늘어선 예배 의자에 누군가 앉아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신원을 확인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해골이었으니까요.
 
이후 붉은 빛을 내뿜는 차원문을 찾았지만 이교도가 전부 떠난 뒤였습니다.
 
허탈함도 잠시. 이상 현상을 감지한 본부가 낸 경보음에 수사단은 서둘러 현장을 빠져나왔습니다. 서울에 다녀간 이교도는 지금도 성역에서 악마 소환 의식을 멈추지 않고 있을 겁니다.
 
제단 위에 제물로 바쳐진 희생자 맞은 편에 릴리트 동상이 있다. 왼쪽 예배 의자에 누군가 앉아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이달 19일부터 다음달 11일까지 영등포시장역에서 '디아블로4' 브랜드 체험존 '헬스테이션(Hellstation)'을 운영합니다. 작품 특유의 참담하고 절망적인 세계관을 현실에서 느낄 수 있게 만든 공간입니다.
 
헬스테이션은 매주 금~일요일 하루 14회 운영됩니다. 만 18세 이상 누구나 디아블로 공식 이벤트 웹사이트에서 신청하면 추첨을 통해 체험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디아블로4는 실시간 액션 롤 플레잉 게임 장르를 정립한 '디아블로' 시리즈 차기작으로 다음 달 6일 출시됩니다. 이번 작품은 윈도우즈 PC와 콘솔 판으로 출시되고 모든 플랫폼에서 이어 할 수 있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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