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도의 밴드유랑)해리빅버튼, 클래식과 결합한 K-하드록
‘정규 3집 '빅피쉬(Big Fish)'…영화와 음악이 만날 때
부드러워진 '록 음악계 야수'…"인간성 회복에 대한 이야기"
입력 : 2023-07-21 00:00:00 수정 : 2023-07-21 00: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선 굵은 기타리프가 장대한 수평선을 너울거리면, 신기루처럼 사라질듯 하다가도 손에 잡힐듯 다가오는 기억들. 이어지는 현악기의 기분 좋은 미풍은 거친 하드록을 이렇게도 세련되고 예쁜 사운드의 미학으로 건축할 수 있다는 것.
 
"독립영화를 틀어주는 조그만 시네마 같은 곳에서 이번 음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더라면 어땠을까 합니다. 아늑한 영화관 의자에 나란히 앉아 삶의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눌 수 있는 곳이면 더 없이 적당하지 않을까 해요."
 
러시아-독일 등 해외 투어 이어온 K-하드록 대표 밴드이자 한국 록 음악계의 야수, 해리빅버튼이 정규 3집 '빅피쉬(Big Fish)'로 돌아왔습니다. 고전부터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영화’를 모티프로 한 콘셉트 앨범으로, 지난 2020년 시즌1 '더티해리(Dirty Harry)'의 연작입니다. 최근 본보 기자와 만난 리더 이성수(보컬·기타)는 "오랜 시간 묻혀 있던 영화로부터 나의 이야기와 연결되는 고리를 찾아나가다 보니 결국 악상이 그려졌다. ‘사랑과 저항’의 이야기들, 구체적으로는 ‘인간성의 회복에 대한 이야기’가 앨범을 관통한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K-하드록 대표 밴드이자 한국 록 음악계의 야수, 해리빅버튼이 정규 3집 '빅피쉬(Big Fish)'로 돌아왔다. 사진=해리빅버튼
 
앨범 커버에 그려진 슬레이트를 '딸깍' 치면, 머릿 속으로 영사기가 흘러갈듯 합니다. '티탄(Titane)', '혹성탈출(Planet of the Apes)', '델마와 루이스(Thel-ma & Louise)',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Only Lovers Left Alive)'…. 앨범과 동명의 타이틀곡 '빅피쉬(Big Fish)'는 실제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 스토리와 겹쳐낸 음악. 무거운 중저음역대 깁슨 기타를 슬로우템포로 연주하고, 현악 5중주를 사운드의 기본 바탕에 깔아 감성적인 면을 부각시켰습니다. "제가 어느덧 돌아가실 적 아버지 나이가 됐더라고요. 영화를 보다 문득 아버지와 함께 하지 못했던 순간들, 서서히 잊혀가던 기억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떠올랐습니다. 해변가 모래사장에서 아무 생각없이 몸을 축 늘어 뜨리듯 편안한 상태로 연주해봤습니다."
 
이번 음반부터는 본래 클래식 학도였던 베이시스트 우석제, 해리빅버튼의 원년 멤버였던 드러머 최보경으로 체제를 개편했습니다. 춤을 추는 듯한 드럼 셔플 리듬들의 그루브와 클래식 콘트라베이스를 뜯듯이 연주하는 베이스로 밋밋한 연주를 벗어났다고. "드림시어터나 딥퍼플 같은 예전 하드록 밴드도 클래식에서 영감을 받았잖아요. 특히 딥퍼플 명곡 '스모크 온 더 워터'는 베토벤 '운명'을 거꾸로 한 것이죠. (베이스의 경우) 피치가 살짝 불안하면서도 울림이 클 수 있는 소리들이 앨범 사운드를 확장시킨 것 같아요."
 
K-하드록 대표 밴드이자 한국 록 음악계의 야수, 해리빅버튼의 정규 3집 '빅피쉬(Big Fish)' 녹음 현장. 사진=해리빅버튼
 
수록곡 '티탄(Titane)'의 경우, 차가운 금속성의 사이키델릭한 신스 사운드로 자동차를 사랑하는 캐릭터를 표현하되, 결국엔 따뜻한 '디즈니 가족영화' 같은 느낌을 줬습니다. 인간 답게 살기 위해 '노'라고 외치는 주인공에 영감받아 저항의 메시지를 스트레이트한 헤비메탈 사운드로 '혹성탈출(Planet of the Apes)'을 표현하고, 절벽을 향해 날아가다 멈추는 주인공들이 꿈의 세계('멕시코')에 도달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델마와 루이스(Thel-ma & Louise)'를 썼습니다. "멕시코 전통 밴드 마리아치를 도입부에 넣거나('델마와 루이스'), 처음과 끝을 사이렌 소리로 사회 경종을 표현('혹성탈출')해봤습니다. 수록곡 부분 부분 실제 영화에서 쓰인 짤막한 대사들이 나오는데 영화 보신분들은 그런 걸 캐치하는 게 재미있는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전작에 이어 영국 메트로폴리스의 존 데이비스(John Davis)가 마스터링을 맡아 세계적인 사운드로 완성해냈습니다. 밴드 사운드 원형을 왜곡 없이 보존시키는 식의 마스터링으로 평판이 높은 데이비스는 이들을 줄곧 '야수와 같은 록음악! (Rock Like a Beast!)'이라 평가해왔습니다. "이번에는 어메이징한 사운드라고 칭찬해줘서 기분이 좋았어요. 하나의 콘셉트 아래 이제껏 시도 하지 않던 사운드에 도전했고, 새로운 챕터를 열었다고 생각했는데 알아봐준 것 같았거든요."
 
'듣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는 해리빅버튼은 마지막으로 "실내와 실외, 두 공간에서 번갈아 들으면 좋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혼자 있는 어두운 영화관 같은 공간에서 자막 하나 하나를 정독하듯이 여러가지 감정들을 곱씹으면서 감상하는 방법도 좋을 것 같고요. 또 하나는 굉장히 광활한 공간에서,.이를 테면 바다가 펼쳐진 곳이나, 대형 록 페스티벌에서 정말 큰 스피커로 함께 듣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K-하드록 대표 밴드이자 한국 록 음악계의 야수, 해리빅버튼의 정규 3집 '빅피쉬(Big Fish)' 녹음 현장. 사진=해리빅버튼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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