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게이션)‘잠’, 다른 방식 다른 차원의 공포
한 남자와 한 여자, 부부를 통해 그려진 일상의 공포 속 ‘전이’
“공포는 만들어지는 것일까 자라나는 것일까”란 ‘질문의 무게’
입력 : 2023-08-21 07:00:22 수정 : 2023-08-21 07:00:22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믿으면 존재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깜깜한 골목길, 혼자 걷습니다. 이상하게도 뒤에서 누군가 쫓아오는 느낌입니다. 뒤를 돌아봅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다시 걷습니다. 그러나 분명 뒤에 누가 있습니다. 고개를 돌립니다. 눈에 보이는 건 어둠뿐입니다. 근데 그 어둠 속, 뭔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보이지 않으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합니다. 존재하는 무엇에 대한 존재감이 느껴집니다. 누구나 한 번쯤 겪어 본 경험입니다. 일종의 감각적 강박의 일종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 어둠 속 우리가 모르는 무엇이 실재할 수도 있습니다. 존재에 대한 인식은 우리가 인식하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인식이 만들어 낸 공포의 허상일지. 그건 알 수 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상황 속에 놓인 주체의 감각입니다. ‘난 분명히 느꼈다고 한다면 그 존재는 반드시 그곳에 있는 겁니다. 그 존재가 그곳에 실재하건 그렇지 않건. 그건 중요한 요소가 아니게 됩니다. 이 지점까지 오면 존재의 핵심, 즉 존재가 실재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이 경계의 선을 넘어간 뒤입니다. 거기서부터는 다른 영역의 해석이 됩니다. 도대체 저 존재는 날 왜 따라오는 걸까. 왜 내게 뭘 원하는 걸까. 내게 어떤 이유와 목적을 두고 다가오는 걸까. 존재의 실재 여부는 이미 사라진 뒤입니다. 이 같은 흐름을 관통하는 가장 큰 질문 하나.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의 실체. 그 실체의 시작은 어디서 왔을까. 나일까, 아니면 저 어둠 속 실재한다 믿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하게 반드시 존재한다 믿게 된 존재일까. 영화 이 해석하는 공포의 근원적 질문입니다.
 
 
 
은 공포, 그 자체의 감정적 본질 또는 체득의 과정이 담은 실체적 진실 그 자체에 지금까지 어떤 장르적 공포보다 리얼하게 다가섭니다. 별다른 수식과 수사 그리고 은유와 영화적 미장센을 배제하고 바라봅니다. 때문에 체험이 아닌 체득에 더 가깝습니다. 우리 모두가 어제 혹은 오늘 아니면 내일 반드시 겪게 될 예측을 보여주는 것만 같습니다.
 
영화 '잠'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신혼 부부 현수(이선규)와 수진(정유미). 두 사람이 사는 곳은 오래되고 낡은 아파트. ‘오래되고 낡은이란 공간적 의미는 이 영화의 장르적 수사에서 큰 의미를 갖진 않습니다. 오히려 감정적 흐름을 주도하는 일종의 영화적 맥거핀으로 다가옵니다. 어제와 다르지않은 오늘입니다. 그런 날의 밤. 곤하게 잠을 자던 남편 현수가 갑자기 일어나 침대에 앉습니다. 현수는 잠을 자는 것인지 아니면 잠에서 깬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수진의 질문에 알 수 없는 말 한 마디를 던집니다. ‘누군가 들어왔다라는. 이 영화 연출을 맡은 유재선 감독 의도일 텐데, 이 대사 한 마디가 영화 전체의 흐름을 주도하는 또 다른 맥거핀이 됩니다. 공간적 상징이 감각의 흐름을 이끈 맥거핀이라면 이 대사는 관객의 감각을 통제하는 맥거핀입니다.
 
영화 '잠'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만삭의 수진은 다시 잠에 빠진 현수를 뒤로 하고 거실로 나섭니다. 하지만 아무도 없습니다. 소리가 나는 곳에는 키우던 애완견만 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갑니다. 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날수록 현수의 수면 중 이상 증세는 심해집니다. 병원 진단 결과 (REM) 수면행동장애’. 일종의 몽유병’. 현대인에겐 생각보다 흔한 병 이랍니다. 약물 치료와 수면 요법 치료를 통해 증상을 완화 시킬 수 있답니다. 그럼에도 수진은 걱정입니다. 얼마 뒤 태어날 아이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수의 증상은 더 심해지기만 합니다. 급기야 끔찍한 상황까지 벌어집니다.
 
영화 '잠'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여기까지 흘러가자 얘기는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방향을 틀어 버립니다. 외부적 요인이 개입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제 이 순간부터 남편 현수를 통해 벌어지는 이상 증세는 더 이상 아내 수진을 지배하는 공포의 근원적 문제가 아니게 됩니다. 이제 공간적 흐름의 주도권, 즉 공포의 실체는 현수 다시 말해 사람을 통해 지배되고 전염되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주변 공기 전체를 지배하는 진짜 공포가 됩니다. 일상을 통해 불 붙어 버린 폭발의 도화선에 불꽃이 튀면서 화염을 터트리고 결과적으로 방아쇠에 불을 당겨 버립니다.
 
영화 '잠'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에서 눈 여겨 봐야 할 지점은 공간과 사람 그리고 전이의 과정입니다. 우선 공간, 즉 집은 가장 편안하고 온전히 보호 받아 마땅하다 느껴야 할 곳입니다. 하지만 에선 어느 순간 가장 위험하고 가장 공포스러운 곳이 됩니다. ‘속에 그려진 집이 담고 있는 음침하고 눅눅하고 어둑하며 폐쇄적인 느낌은 그래서 장르적 특색을 온전히 뿜어내는 재료적 맥거핀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이 공간에서 보이지 않는 감정적 공포의 자생력은 온실 속 화초의 생육처럼 빠르고 거침 없습니다.
 
영화 '잠'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두 번째는 자체의 의인화된 캐릭터입니다. 현수는 깨어있는 동안에는 부족함 없는 완벽한 남편입니다. 자상하고 가정적이며 또한 가장 이상적인 모습입니다. 하지만 잠에 빠진 그는 다른 인물이 됩니다. 깨어 있는 자아와 내면 속 숨은 또 다른 자아의 충돌이 외부로 드러나지 않게 막아주는 일종의 보호막처럼 그의 일상은 의도적이라 할 정도로 포장된 모습 그 이상입니다. 현수의 모습에서 속 비밀을 캐내려 드는 관객의 의도가 역으로 이 영화의 캐릭터적 맥거핀입니다. 그래서 현수가 영화 시작과 함께 던진 누군가 들어왔다란 대사가 담은 관객의 감각 통제력은 상당한 힘을 느끼게 합니다.
 
영화 '잠'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사실 세 번째가 의 핵심일 듯합니다. 전이의 과정입니다. ‘에서 공포의 실체는 영화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현수의 수면 중 이상 증세입니다. 증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지면서 아내 수진을 걱정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우리도 모르는 전이의 시작이었습니다. 전염이 아닌 전이, 즉 이동된다는 표현을 쓴 것. 그게 에 담긴 비밀일 것입니다. ‘속에서 그리는 공포는 이미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외부에서 어떤 사건과 이유를 통해 전염된 것인지. 두 가지 관점의 차이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영화에서 전이로 해석을 내린다면 공포는 스스로가 만들고 스스로가 키워서 결국 스스로를 잠식 시켜버리는 질병 그 자체입니다. 수진이 느낀 공포는 온전히 그리고 완벽하게 이 과정의 흐름 속에서 자생해 버렸습니다. 앞서 첫 번째와 두 번째 요인이 결합해 수진 내면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던 공포의 싹에 단 물한 방울을 떨궈 준 것뿐이었습니다.
 
영화 '잠'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첫 번째와 두 번째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모두 의 결말부에 이르는 하이라이트 시퀀스를 통해 융합하면서 공포의 근원적 존재감에 대한 본질적 해석을 내놓습니다. 영화 을 통해 본다면 공포는 분명 전염이 아니라 전이입니다. 공포는 그렇게 우리 안에 분명 존재하는 또 다른 나일 뿐입니다. 그래서 공포를 내면의 나와 일치시키는 과정을 결정하는 것. 그 과정의 실체가 영화 속에 담겨 있습니다. 물론 그 과정, 적극 추천 하진 않습니다. 상상 이상으로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영화 '잠'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 공포를 다른 방식의 다른 차원으로 끌어 냈습니다. 그 결과물이 반드시 당신을 빠지게 만듭니다. 96일 개봉. 러닝타임 94.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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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범

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