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에서 한경협으로…4대그룹 나란히 복귀
22일, 전경련 임시총회…명칭변경·한경협 흡수통합 방안 의결
류진 신임 회장 "어두운 과거 깨끗이 청산…엄격한 윤리 기준 실천"
4대그룹, 회비 규모 고심…전경련 "논의된 바 없어"
입력 : 2023-08-22 15:57:04 수정 : 2023-08-22 18:15:05
 
 
[뉴스토마토 신지하 기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55년 만에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으로 명칭을 바꿨습니다. 삼성·SK·현대차·LG 등 4대그룹도 국정농단 사태로 탈퇴 선언을 한 지 6년 8개월여 만에 새 단체로 복귀했습니다. 다만 정경유착 우려가 가시지 않아 회비 납부 등 4대그룹의 실질적 합류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22일 전경련은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임시총회를 열고 한경협으로의 명칭 변경과 산하 연구기관이었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의 한경협 흡수 통합 등을 포함한 정관 변경안을 의결했습니다. 한경협이 기존 한경연 회원사들을 넘겨받으면서 삼성 등 4대그룹의 일부 계열사가 한경협 회원사에 포함됐습니다.
 
한경협 명칭의 공식 사용은 내달 주무관청인 산업통상자원부 승인 후부터 사용 가능합니다. 이번 개정안에 통합하는 기관의 회원 지위를 승계한다는 조항을 신설, 4대그룹이 법적으로 한경협 회원이 되는 시점은 산업부의 정관 개정 승인 이후입니다.
 
한경연에는 삼성 계열사 5곳(삼성전자·삼성SDI·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증권), SK 4곳(SK㈜, SK이노베이션·SK텔레콤·SK네트웍스), 현대차 5곳(현대차·기아·현대건설·현대모비스·현대제철), LG 2곳(㈜LG·LG전자)이 남아 있었습니다. 다만 삼성증권은 최근 논의 끝에 한경협에 복귀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날 한경협 회장으로 공식 취임한 류진 풍산그룹 회장은 "주요 7개국(G7) 대열에 당당히 올라선 대한민국을 목표로 삼겠다"며 "글로벌 무대의 퍼스트 무버가 되는 게 기업보국의 소명을 다하는 길이고, 이를 개척해 나가는 데 앞으로 출범할 한경협이 앞장서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어두운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고 잘못된 고리는 끊어내겠다"며 "단순한 준법 감시 차원을 넘어 높아진 국격과 국민 기대에 부응하는 엄격한 윤리 기준을 세우고 실천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전경련 신임 회장으로 선임된 류진 풍산그룹 회장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열린 임시총회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전경련, 복귀한 4대그룹에 회비 얼마나 요구할까
 
전경련이 다시 재가입한 4대그룹에 예전과 같은 수준의 회비를 요구할지 주목됩니다. 다만 전경련 복귀에 대한 여론이 긍정적이지는 않은 상황으로 4대그룹이 회비 납부와 회장단 참여 등 실질적 의미의 가입에 대한 의사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전경련 관계자는 4대그룹의 회비 납부와 관련해 "정해진 바 없고 아직 논의된 바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4대그룹이 과거 전경련을 탈퇴한다고 했을 때 산하 기관인 한경연도 탈퇴하는 게 상식적인 일"이라며 "이들 그룹이 한경연보다 전경련에 회비를 훨씬 많이 낸 만큼 이번 통합의 의미는 결국 4대그룹에 과거 전경련에 납부했던 수준으로 돈을 내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4대그룹이 낸 회비는 결국 정부와 재계 사이의 정경유착 통로 역할에 사용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4대그룹이 전경련을 탈퇴하기 이전인 2015년 회원사들이 전경련에 납부한 회비는 연간 500억원 수준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4대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이상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삼성이 100억원, SK와 현대차, LG가 각각 50억원 규모의 회비를 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전경련은 자체 건물과 연구소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자금력 측면에서 부족함은 없어 보인다"며 "회비 증액을 요구하려면 어떤 용도로 사용할 것인지, 회원사들을 위한 전경련의 발전 방향 등에 초점을 맞춰 4대그룹을 비롯한 회원사를 잘 설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회원사들에게 걷은 회비를 과거처럼 불법 또는 정당하지 못한 방향으로 지출할 것이라는 세간의 우려를 말끔히 제거하지 못한다면 회비 증액은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이름 바꿔도 정경유착 해소 안돼…시각 엇갈려
 
전경련이 한경협으로 이름을 바꿔 새로운 출발을 선언했지만 기대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를 의식한듯 전경련은 정경유착 등을 차단하기 위한 내부통제시스템인 윤리위원회 설치를 정관에 명시적으로 규정했습니다. 위원 선정 등 윤리위원회 구성과 운영사항 등 시행세칙 마련도 조만간 확정할 계획입니다. 사무국과 회원사가 지켜야할 '윤리헌장'도 이날 총회에서 채택했습니다.
 
김 교수는 "한경협이 과거 전경련과 달라지려면 기업과 정치권이 서로 부정한 거래에 빠져들지 않도록 더 높은 수준의 감시 체계가 필요하다"며 "각자 영역에서 법과 원칙에 따른 정도 경영을 할 수 있고 이를 잘 유지한다면 기업과 한경협 모두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경협이 과거 전경련처럼 정치 권력과 결탁한 과거 근행을 근절할지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이 더 우세합니다. 앞서 지난 18일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는 전경련의 혁신 의지 등 정경유착 재발 가능성에 우려를 표했습니다.
 
준감위는 "현재 시점에서 한경협이 과연 정경유착의 고리를 완전히 단절하고 환골탈태할 수 있을 지 확신을 가질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또 삼성이 전경련에 복귀하더라도 정경유착이 발생할 경우 즉시 탈퇴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준감위가 낸 입장에 대해 박 교수는 "삼성 준감위가 정경유착이 발생할 시 한경협 탈퇴를 권고한 것은 이를 사전에 막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내비친 셈"이라며 "이번 한경협 출범은 기업과 정치 권력 간 은밀한 거래를 다시 열심히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엽합은 4대그룹의 전경련 복귀 자체를 반대했습니다. 경실련은 "4대그룹이 전경련에 다시 가입할 어떠한 명분도 없다"며 "전경련이 자발적으로 해산해 새로운 시대에 맞는 미래지향적인 단체로 재설립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참여연대는 이날 전경련 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경유착과 재벌특혜, 대기업 감세와 규제 완화로 우리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전경련과 한경협은 즉각 해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신지하 기자 ab@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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