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금융)프리랜서부터 퇴직자까지…대출 사각지대 해소 시급
재직 증빙 없으면 정책대출도 어려워
가계부채 관리에 신파일러 지원 뒷전
입력 : 2024-05-10 15:26:57 수정 : 2024-05-13 08:27:17
 
[뉴스토마토 민경연 기자] #. 프리랜서로 3년 넘게 일해온 30대 A씨는 신용대출이 필요해 여러 은행을 전전했지만 돌아오는 건 "소득 증빙이 안돼 대출이 안 된다"는 답변입니다. 급여 통장을 이용하거나 예적금 통장을 보유한 은행 등을 찾아갔지만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인터넷전문은행에도 대출 가능 여부 조회를 시도했지만 불가 통보를 받았습니다. 결국 A씨는 본인이 아닌 배우자 명의로 대출을 받아야 했습니다.
 
프리랜서, 소상공인, 주부 등 금융이력이 부족한 '신 파일러((Thin Filer)'가 대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금융권은 수 년 전부터 신파일러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비금융정보를 대출 심사에 적극 활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소득 증빙 등을 기본 심사 요건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무직자를 대상으로 한 비상금 대출도 있지만  일회성에 그치는 수준입니다.
 
신파일러, 소득 있어도 대출 어려워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권 신용대출은 일반적으로 정규직 또는 사업자를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한 시중은행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판매 중단된 상품을 제외하고 현재 판매중인 신용대출은 총 43건입니다. 이 중 사업자나 직장인이 아니어도 이용 가능한 상품은 햇살론15 등 정책대출상품을 비롯해 7건에 불과합니다. 서민금융진흥원의 보증을 받아 진행되는 햇살론도 3개월 이상의 재직 증빙이 필요해 무직자가 이용하기는 어렵습니다.
 
프리랜서, 특수고용노동자, 취업준비생 등 정기적인 소득이 없고 대출거래 실적이 부족한 신파일러는 기존 신용평가로 계산할 시 신용점수가 낮아 은행권 대출에 불리합니다. 주택을 담보로 한 생활안정자금도 정기적인 소득이 없으면 내 집이 있더라도 대출 승인이 불가능합니다. 자영업자 B씨의 경우 폐업신고 후 여유자금이 필요해 주거래 은행에 주택담보 생활안정자금 대출을 문의했습니다. 주택 융자 상환이 완료됐고, 해당 주택에 직접 실거주하고 있어 담보물에 문제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현재 고정적인 소득 증명이 안되면 대출이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B씨는 결국 캐피탈에서 1000만원 가량을 대출받아야 했습니다.
 
무직자 프리랜서에게 은행 대출이 어려워 대출 회색지대 해소가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사진=뉴시스)
  
가계대출이 급증하던 기간 신파일러 대출은 오히려 줄었습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신파일러 대출잔액은 지난 2021년 말 3669억9300만원, 2022년 말 2802억1900만원으로 급감했습니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2893억2800만원으로 소폭 늘어나는데 그쳤습니다. 이들 은행 가계대출잔액의 0.04% 수준에 불과합니다.
 
·저신용자들 '회색지대' 몰려
 
물론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대출 부실 관리가 필요하기는 합니다. 규제 산업이라는 금융업 특성상 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정책에 적극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금융사 부실은 경제 전반의 시스템 위험으로 번질 수 있는 만큼 당국은 규제를 통해 금융사를 관리합니다. 
 
지난 2019년부터 금융당국도 비금융정보 활용을 통해 신파일러의 금융 접근성을 키우겠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지난해 주요 서민금융대출 정책도 저신용자 대상 소액 생계비대출 출시, 최저신용자 특례보증 공급규모 증가, 햇살론 성실상환자 보증한도 증액 등으로, 상대적으로 신용등급은 높지만 재직기간·소득증빙 등 대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이들의 고충을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은 없었습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소득이 있지만 재직 증명이 어려운 특수고용노동자의 경우 소득 증명 방법을 넓히고, 서민금융진흥원 등 정부기관이 대출상품을 다양화해야 하는데 관련 예산이 확보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신용자와 저신용자 사이 회색지대에 속한 차주는 1금융 시스템 상으로는 대출이 불가능하더라도 정책금융이 받쳐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법정최고금리를 조정해 중간지대를 확장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김 교수는 "법정 최고금리가 20%로 내려오면서 대부업의 경우 연체율이 높아 대출 원가를 맞추기 버거워 신규 취급을 아예 안하는 곳도 있다. 저축은행도 법정최고금리가 낮으면 오히려 거래할 유인이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대출 회색지대에 갇힌 이들에게 대출 기회를 늘려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박준태 연구위원은 "복지로 그들에게 도움을 주면 모를까 결국은 빚을 내게 하는 것이다. 당장 10%대 대출을 해주면 없던 돈이 도는 것 같아 좋을 수 있지만 결국 빚의 굴레에 빠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당국에서도 신파일러 등 대출 회색지대에 대한 대책은 아직 부족하다. 사진은 시중은행 대출 간판. (사진=뉴시스)
 
민경연 기자 competiti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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