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성추행…성인지감수성 판결 주목해야
법원, 성추행 사건 판결서 성인지감수성 관련 내용 반영
입력 : 2024-05-20 14:47:50 수정 : 2024-05-20 14:47:50
[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2017년 미국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의 여파로 유명인들의 성추행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피해자들이 미처 말 못 하고 숨겨만 왔던, 일부 직장의 조직문화 중 일부라고 치부하며 당연하게 여겨왔던 성추행 사건이 공론화됐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성추행 사건과 시비는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일반인들 사이의 성추행도 만연합니다.
 
지난 5일 전남 여수시에서 한 손님이 여성 직원의 가슴을 손으로 만진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어린이날을 맞아 엄마의 일터를 찾아온 직원의 아이가 그 장면을 목격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분을 샀습니다. 심지어 아이는 엄마가 당한 일의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성추행은 강죄추행죄…10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 벌금
 
성추행은 강제추행죄로 많이 처벌되는데요. 강제추행죄는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법익으로 하고, 폭행·협박으로 사람을 추행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벌합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2023년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강제추행죄에서의 '폭행·협박' 의미를 변경하기도 했습니다.(2018도13877). 강제추행죄가 성립하는 기준을 완화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종래의 판례는 강제추행을 이른바 '기습추행'(폭행 행위 자체가 추행에 해당하는 것)과 '폭행·협박 선행형'(폭행·협박이 추행보다 시간적으로 앞서 수단으로 행해진 것)으로 나누고, 폭행·협박의 의미를 다르게 판단했습니다. 기습추행에서는 폭행·협박이 상대방의 의사를 억압할 정도임을 요하지 않고, 폭행·협박 선행형에서는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이 요구된다고 판시했습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강제추행죄의 폭행·협박이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로 강력할 필요는 없고, 상대방의 신체에 대해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폭행)하거나 일반적으로 볼 때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해악을 고지(협박)하는 것으로 변경한 겁니다.
 
서울시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사진=김민승 법률전문기자)
 
대중교통이나 공연장 등 공중이 밀집한 장소에서도 성추행이 많이 일어나는데요. 공중이 밀집한 장소에서 사람을 추행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됩니다. 공중밀집장소 추행죄 역시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법익으로 하고, 폭행·협박 없이 한 추행도 처벌합니다.
 
아동이나 청소년에 대한 성추행은 매우 강력하게 처벌됩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아동·청소년은 19세 미만인 자를 말하는데요. 13세 미만 미성년자를 강제추행하면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고, 13세 이상의 미성년자를 강제추행하면 2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10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됩니다.
 
대법원, 강간죄 판결서 "'성인지감수성' 잃지 않도록 유의" 판시
 
그런데 대법원은 2018년 강간죄에 대한 판결에서, 법원이 성폭행·성희롱 사건을 심리할 때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2018도7709). 이후 '피해자답지 않음'을 이유로 피해자의 진술이 배척되는 일도 줄었는데요. 성추행 사건의 특성상 피해자의 합리적이고 일관된 진술과 주변 정황에 의해 혐의 인정이 잘 되는 편입니다.
 
지난 1월 대법원은 또 한 번 성인지감수성에 관련된 판결을 했습니다. 공중밀집장소 추행 사건이었습니다(2023도13081). 성범죄 사건의 심리에서 성인지적 관점을 유지해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면 안 되지만, 이것이 성범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제한 없이 인정해야 한다거나 그에 따라 공소사실을 무조건 유죄로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형사법의 대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을 강조한 겁니다. 성범죄의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증거를 종합해 볼 때 공소사실에 관해 합리적 의심이 있는 경우에는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추행 혐의로 재판을 받다가 무죄로 판명되고 고소인이 무고죄로 처벌받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요. 법원이 균형 있는 심리와 판결을 통해 억울한 피해자나 가해자가 생기는 것을 방지해야 할 것입니다.
 
2018년 대법원이 지적했듯이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가해자 중심의 문화와 인식, 구조 등이 남아있는데요. 상대방에 대한 인격적인 존중에서 비롯되는 올바른 성 관념 형성을 위해 성교육과 사회적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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