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부산행, 누가 막고 있나
"정무적 쟁점" 민주당 '길막'…수도권-부울경 의원 이견 뚜렷
산은 수뇌부, 타당성 미제시…공 떠넘기고 눈치만
입력 : 2024-05-31 06:00:00 수정 : 2024-05-31 15:57:05
 
[뉴스토마토 김한결 기자] KDB산업은행은 지역 균형발전이란 대의를 앞세워 부산 이전을 추진 중입니다. 하지만 지난 21대 국회에서 산업은행법 개정이 무산돼 차질을 빚고 있습니다. 국회의원들간 정쟁, 지역 구도 등에 막혀 있습니다. 한편으론 산업은행도 대다수 구성원들이 미적거리는 등 정치권에 책임을 떠넘겨 놓고 한발 물러선 분위기입니다.
 
문 정부서 시작된 '부산행' 논의…22대 국회서 공방 되풀이?
 
31일 정치권에 따르면, 한국산업은행법 제4조(본점 및 지점 등의 설치) 1항을 개정하는 법안은 22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될 전망입니다. 산업은행 본점을 부산으로 이전하기 위해선 법 개정, 즉 국회의 동의가 필수인데 21대 국회에선 정무위원회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산은 부산 이전의 큰 그림은 전 정부에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2020년 문재인정부 당시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 346곳의 지방 이전을 검토했습니다. 산은을 비롯해 IBK기업은행, 수출입은행, KBS, EBS 등이 검토 대상에 올랐습니다.
 
이후 지난 대선에선 윤석열 당시 후보가 산은 부산 이전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이재명 후보도 공공기관 이전을 약속했습니다. 다만 이 후보는 구체적인 기관명까진 언급하지 않았는데요. 대선 레이스 당시 산은 노조와는 이전 반대를 구두 약속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이동걸 전 산은 회장은 지난 2022년 5월 사의를 표명하면서 산은 부산 이전을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그는 "지역균형 발전 취지에 누가 동의하지 않겠나"라면서도 "다만 국가 전체 발전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지속 가능해야 한다"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수도권 대 부울경…핵심은 '정무적 쟁점'
 
겉만 보면 국회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산은 부산 이전을 주장했습니다. 국민의힘은 물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도 산은 부산 이전 내용을 담은 산은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총 4개 법안이 정무위 소위에 올라왔지만 정무위 전체회의엔 한 건도 오르지 못했습니다.
 
21대 국회에서 본점 이전을 핵심으로 한 산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의원은 서병수(국민의힘), 박재호, 송기헌, 김두관(이상 민주당) 의원입니다. 서병수, 박재호 의원의 지역구는 부산입니다. 김두관 의원은 경남 양산, 송기헌 의원은 강원 원주입니다. 이밖에 발의자에 함께 이름을 올린 의원들 대부분은 수도권 외 지역구입니다.
 
부산 이전 반대 목소리는 일부 수도권 지역구 의원들에게서 나왔습니다. 특히 정책위의장을 맡고 있는 김민석 민주당 의원(서울 영등포)이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야당에서만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해 4월 기자간담회에서 "형식논리적인 국토균형발전 명분 때문에 국책은행을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것은 국가적 견지에서 보면 자해적인 결과로 귀결된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부울경과 서울, 수도권 사이의 시각이 첨예하게 엇갈라는 것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지난해 11월 21일 정무위소위 회의록을 참고하면, 산은 부산행의 핵심은 '정무적 쟁점'으로 파악됩니다. 당시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은 "법적, 실무적인 내용은 더 이상 논의할 부분이 없고 정무적으로 판단해서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측면에서 바라봐 민주당이 동의해주길 부탁한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김종민(당시 민주당) 소위원장은 "균형발전을 위해 (산은 부산 이전이)필요하다면 '메가서울' 같은 건 하지 말았어야 한다"며 "메가서울을 추진하면서 은행 하나 (부산에)보내는 게 어떻게 균형발전인가? 정책적인, 정무적인 진정성이 필요하다 본다"고 발언, 결국 이 사안이 정치적 갈등임을 드러냈습니다.
 
산은 수뇌부, 부산 이전 타당성 검토 '외면'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 타당성 검토가 부실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오기형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1월 "산업은행에서 1·2단계 용역을 하겠다고 말했지만 최근까지도 기본적인 타당성 검토를 안 했다"며 "효율성 검토만 하고 용역을 설명하러 (국회에)왔다가 지적받은 후 아무 말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습니다.
 
산은은 지난해 부산 이전과 관련한 1단계 연구용역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전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한 이 보고서에는 △산은의 전 기능과 조직을 부산으로 이전하고 본점 중심의 정책금융을 수행하는 '지역성장 중심형' 방안과 △부산 본점에 전 기능을 완비하되 여의도에서도 가능하도록 함께 배치하는 '금융수요 중심형' 방안이 제시됐습니다.
 
이어 2단계 용역에선 부지 조성 등과 같은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다뤄질 예정이었는데요. 법 개정이 막힌 탓에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습니다. 산은 관계자는 "1단계 용역 결과만 국회에 설명했고 2단계 용역은 아직 진행하지 않고 있다"며 "산은법 개정과 연계해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새로운 22대 국회에서 산은법이 개정된다고 해도 타당성에 대한 내용은 2단계 용역에 포함돼 있지 않아 비판을 피할 수는 없을 전망입니다. 오 의원은 지난해 10월 정무위 국정감사 자리에서 타당성을 검토하지 않은 것을 두고 강석훈 산은 회장을 비판했지만, 강 회장은 "공공기관으로서 정부가 결정한 정책의 비용 편익을 분석하기는 어렵다"고 답했을 뿐 부산 이전 시 실질적인 파급효과 등을 설명하는 데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한편, 산은 노조 측은 지난해 7월 한국재무학회와 함께 재무적 파급효과를 산출해 타당성을 검토했습니다. 산은 기관 자체로만 봤을 때 부산 이전 시 발생하는 손실은 7조39억원, 국가경제 재무 손실은 15조4781억원으로 추산됩니다. 기존 산은의 연수익 업무 부서별 배부→업무 부서별 영향 요인 반영→부산 이전 시 예상 손실 도출하는 방식으로 추산한 결과입니다.
 
여야에서 발의한 개정안이 정쟁, 수도권 대 지방 의원간 대립에 막혔고 산은 측의 용역은 타당성 검토를 외면한 채 노조만 수치를 들고 나온 상황입니다. 정치권과 강 회장 등 산은 핵심 수뇌부들이 말로만 부산행을 외치고 실질적인 해결 방안 모색은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번 국회에서는 정치 논리에 밀려 지역 균형발전이란 대의가 뒷켠으로 밀려나지 않고 중점 논의돼야 한다는 의견이 비등하지만, 여야간 대타협이 없이는 한 발 내딛는 것도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산업은행 직원들은 산은 부산 이전을 두고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김한결 기자 alway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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