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신냉전 인식…한·중 관계 2년 허송세월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 끌어내야
입력 : 2024-05-31 06:00:00 수정 : 2024-05-31 06:00:00
 
3000명의 목숨을 앗아간 미국 역사상 최악의 테러인 2001년 9·11테러 당시 미국 백악관에서 딕 체니 부통령(왼쪽)과 대화화는 조지 W.부시 대통령(사진=뉴시스)
 
선거는 무섭다. 독재국가도 선거는 꽤 신경을 써야 하고, 정상 선거가 치러지는 나라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정책을 180도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만들기 일쑤다.
 
아들 부시(조지 W. 부시) 시절인 2006년 미국 중간선거가 그랬다. '미국 예외주의'에 몰두한 이념의 전사들, 네오콘이 정권의 뼈대였다. 9.11테러에 대한 복수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데 이어 이라크까지 쳐들어갔다. 대량살상무기가 명분이었으나 아무리 이라크를 뒤져도 찾아내지 못했다. 유독 '자유'에 집중한 이들은 아들 부시 대통령을 '자유의 수호자'로, 미군을 '십자군'으로 치켜세웠다. 급기야 이들의 이념 맹종은 유엔 승인도 받지 않고 이라크 침공을 감행하기에 이르렀다.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들 부시는 2003년 봄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을 진지하게 검토했고 국정연설을 포함해 기회가 될 때마다 '무법정권', '최악의 독재국가‘라고 북한을 공격했다. 이란, 이라크와 함께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규정한 것은 그 정점이었다.
 
그러다 공화당은 결국 2016년 11월 중간 선거에서, 12년 만에 상·하원을 모두 민주당에 뺏기는 역대급 참패를 당했다. 그러자 아들 부시는 임기 말까지 함께 가겠다고 공언했던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제일 먼저 내쳤다. 나중에 트럼프 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맡게 되는 존 볼턴 주유엔 대사 등 정부 내 네오콘들도 대거 교체했다. 네오콘은 이렇게 미국 주류에서 사라졌다. 
 
'북한은 악의 축'이라던 아들 부시, 중간 선거 참패 뒤 돌연 '남북미 종전선언' 제안
 
그러나 지방선거 참패 이후 외교적 해결로 방향을 완전히 바꿨다. 급기야 남·북·미 종전선언까지 제안했다. 레임덕에서 벗어나려는 방책의 하나였으나 데드덕 상태로 들어가면서 2년 뒤 대선에서 정권을 민주당에 넘길 수밖에 없었다.
 
아들 부시 임기(2001.01~2009.01) 8년 동안 중국은 경제적으로 미국의 턱밑까지 따라붙었다. 이때 미국은 본격적으로 중국을 견제해야 했으나, 부시 정권이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침공에 몰두하느라 이를 방기한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다는 것이 전반적 평가다.
 
윤석열정부와 오버랩되지 않을 수 없다. '자유'는 윤 대통령에게도 핵심 용어다. 공식연설문에서 1000회 이상 사용했는데, 이는 공산전체주의라는 그가 만든 낯선 조어와 대비하는 의미였다. 외교·안보 기조는 당연히(?) 가치외교, 이념외교였다. 국민의힘 전신인 이명박정부, 박근혜정부도 집권하면서 한·미 동맹 정상화 강화를 내세웠지만,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외교는 소홀히 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 천안문 망루까지 올랐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 공동기자회견 중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의 발언을 경청한 뒤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선 후보 때부터 한·중 협력에 선을 긋는 듯한 모습을 보였던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이를 본격화했다. 취임 이후 첫 해외 일정이 중국을 '체제적 도전자'로 규정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참석이었다.
 
키신저는 1972년 리처드 닉슨이 중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마오쩌둥만이 대만에 대해 협상할 권한이 있었다고 회상한다. "닉슨이 구체적인 주제를 제기할 때마다 마오쩌둥은 '나는 철학자라 이런 주제는 다루지 않습니다. 저우언라이와 키신저에게 맡기시죠'라고 말했죠. 하지만 대만에 관해서는 매우 분명했습니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2023년 6월 ‘이코노미스트’ 인터뷰)
 
대만 문제는 마오쩌둥 이래 현재 시진핑 주석까지 중국의 최고지도자가 '핵심이익 중의 핵심'으로 직접 관장하는 사안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1992년 한중 수교의 전제조건이었던 '하나의 중국 입장 존중'까지 거침없이 헤집었다. 지난해 4월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와 관련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대해 절대 반대한다"며 "역내를 넘어서서 전 세계적인 문제"라고 한 게 대표적이다.
 
취임 이후 처음 '하나의 중국' 언급, 푸틴 취임식에 대사 파견…총선 참패 안 했어도 이랬을까?
 
윤 대통령이 철석같이 따르는 미국은 어떤가. 조 바이든 대통령 등 정부 인사들은 '힘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라는 중국 비판을 '하나의 중국 원칙지지-대만 독립 반대'와 한 세트로 다룬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한 번도 '하나의 중국'에 대해 공식 발언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2년 만인 지난달 26일 한·중·일 3국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 리창 중국 총리에게 처음으로 언급했다.
 
러시아에 대한 외교 패턴도 비슷하다.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비판해 마땅하지만, 윤 대통령이 직접 키이우를 방문해서 '사즉생 생즉사'까지 외쳐야 했을까. 그래 놓고는 2년이 흐른 지난달 7일 푸틴의 5번째 대통령 취임식에는 이도훈 주러 대사가 참석해 취임을 축하했다. 이 정부의 자유주의 연대의 주요 대상국인 미국과 일본은 물론 상당수 유럽국가들의 대사는 불참했는데 말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 4월 총선에서 참패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탄핵 운운이 놀랍지 않은 상황에 처하지 않았다면, 중국과 러시아 외교에서 이런 반전이 가능했을까.
 
지난달 한·중·일 정상회의와 정상회담에서 한·중은 자유무역협정(FTA) 2단계 협상과 13년째 중단된 한중 투자협력위원회를 재개하기로 했다. '한반도 비핵화' 대해서는 합의하지 못해 각자 주장을 병기했다.
 
2년 전, 이 정부 출범 초에 한·중 정상회담을 했더라도 이 정도 합의는 나왔을 것이다. 아니 북한에 대해서는 지금보다는 더 진전된 합의를 이뤄냈을 가능성이 높다. 어설픈 신냉전 인식으로 2년을 허송세월한 것이다. (관련 기사: 남북한만 '신냉전' 주장하는 까닭은) 이번 기회를 명실상부 중국 정상인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으로 연결시켜야 한다.
 
모를 일이다. 윤 대통령이 데드덕을 피하기 위해 어떤 변신을 보여줄지 말이다. '네오콘의 총아' 아들 부시 대통령도 전혀 뜻밖에 북한과 종전선언까지 꺼내지 않았던가.
 
황방열 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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