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동성 동반자도 건강보험 피부양자 인정
대법원, 18일 동성부부 법적권리 최초 인정…사회보장제도 '큰 걸음'
동성혼 논란에도 성적 지향으로 인한 차별은 헌법상 평등원칙 위배
입력 : 2024-07-22 15:23:46 수정 : 2024-07-22 15:23:46
[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동성혼을 법적으로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세계적으로 오랫동안 이어져 왔습니다. 동성혼을 합법화한 나라도 많이 있는데요. 우리나라는 여전히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지난 18일 대법원은 동성 동반자에 대한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인정 여부가 문제 된 사건에서 동성 동반자가 피부양자로 인정된다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이성이 사실혼 관계에 있는 경우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인정되는데요. 동성 동반자 집단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관계인데도 동성 동반자를 피부양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로 헌법상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는 겁니다.
 
동성 연인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과 관련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료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한 소성욱씨와 김용민씨가 1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원고인 소성욱씨는 동성인 김용민씨와 2019년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결혼 후 소씨가 퇴사하자 김씨가 사실혼 관계 인우보증서를 첨부해 국민건강보험공단(공단)에 소씨의 피부양자 자격취득 신고를 했고, 동성임을 간과한 직원이 신고를 수리함으로써 소씨가 피부양자가 된 겁니다. 이 사실이 약 8개월 후 언론에 보도되자 공단은 피부양자 정보를 삭제하고 소씨를 지역가입자로 소급해 전환한 후 8개월분 건강보험료 등을 부과했습니다. 소씨는 이에 불복해 보험료 부과 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한 겁니다.
 
1심은 △사전통지가 필요하지 않은 사안이어서 절차적 하자가 없고 △혼인은 남녀의 결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동성의 결합을 사실혼 관계로 인정할 수 없는 점 △국민건강보험제도의 재정건전성을 고려해야 하는 점 △최저보험료를 내면 모든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점 △평등원칙 위반으로 볼 수 없는 점 등을 들어 소씨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하지만 2심은 1심 판결을 깨고 소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소씨의 권익을 제한하는 처분임에도 사전통지나 의견제출의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을 절차적 하자로 인정했습니다. 실체적 판단에서는 소씨와 김씨를 사실혼 관계로 인정할 수는 없지만, 이성 사실혼 관계 집단과 동성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이라고 했는데요. 공단이 이성 사실혼 관계 집단에 대해서만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고, 동성 동반자 관계인 집단에 대해서는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을 달리 취급하는 차별 대우에 해당해 처분이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한 겁니다.
 
대법원 역시 2심 결론이 타당하다고 봤는데요. 헌법 제11조 제1항의 평등원칙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자의적으로 다르게 취급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고, 입법이나 법의 적용에서 합리적 근거가 없는 차별을 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특히 행정청은 합리적 이유 없이 국민을 차별해서는 안 되는데요(행정기본법 제9조). 행정청의 내부준칙이나 행정관행을 통한 행정행위에도 역시 헌법상 평등원칙이 적용되는 겁니다.
 
공단은 내부준칙을 제정해 사실혼 관계에 있는 사람을 피부양자로 인정하고 있는데요. 대법원은 사실혼 관계에 혼인신고를 전제로 한 규정은 유추 적용할 수 없으나, 부부재산 등 부부의 생활공동체라는 실질에 비춰 인정되는 것은 사실혼 관계에 적용할 수 있다고 보는 판례 법리에 따르면 공단의 내부준칙이 타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성 사실혼 관계 집단과 동성 동반자 집단은, △동거·부양·협조·정조의무를 바탕으로 부부공동생활에 준하는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형성하는 점 △사실혼 관계에 있는 사람은 피부양자 인정을 위해 두 사람의 결합을 증명하는 보증인 2명의 인우보증서를 제출하는데, 동성 동반자도 이러한 내용의 인우보증서를 제출할 수 있는 점 △동성 동반자도 동반자 관계를 형성한 직장가입자에게 주로 생계를 의존해 스스로 보험료를 납부할 자력이 없는 경우 피부양자로 인정받을 필요가 있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위와 같은 두 집단에 대한 공단의 차별은, △주로 성적 지향에 따른 것으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법 앞에 평등할 권리를 침해하는 차별행위이고, 그 침해의 정도도 중한 점 △동성 동반자를 피부양자로 인정해도 전통적 가족제도를 해치거나 법적 안정성, 제3자의 권리를 침해할 소지도 없는 점 △사회보장제도와 관련한 피부양자 인정에서 형평성 유지라는 측면과 민법 내지 가족법상 ‘배우자’의 범위 문제는 다른 국면에서 논의가 가능한 점 △동성 동반자의 피부양자 인정으로 인해 건강보험의 재정건정성을 해친다고 볼 수는 없는 점 등에 비춰볼 때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차별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은 지난 40여년간 건강보험의 피부양자 제도가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시행됐고, 건강보험은 헌법상 국민의 보건에 관한 보호 의무 실현을 위해 국가가 마련한 가장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이라고 지적했는데요. 이런 측면에서 오늘날 가족 결합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고, 이를 토대로 국민 삶의 질과 건강을 향상함으로써 사회통합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봤습니다.
 
대법원은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에 관한 전원합의체 결정(2020스616)이나, 동성인 군인 사이 성행위 등을 처벌하는 군형법 사건의 전원합의체 판결(2019도3047) 등을 통해 성소수자가 겪는 부당한 차별을 시정하고 있는데요. 사법부가 차별적 상황을 시정할 수 있는 권한은 제한적입니다. 법률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권한만 있으므로 법률의 가능한 해석 범위 안에서만 판결할 수 있는 겁니다.
 
동성혼 허용과 같은 성소수자 차별 문제는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므로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광범위한 입법재량이 있는 국회가 나서서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부터 차근차근 철폐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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