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삶의 비밀
입력 : 2024-08-12 06:00:00 수정 : 2024-08-12 06:00:00
나는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쇼도시마 섬 산골짜기에서 무릎이 부서져라 페달을 밟는 내내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집에서 에어컨을 켜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흐르는 날씨에 자전거 트래킹이라니. 그것도 타국의 외딴섬 산자락에서. 누가 보더라도 제정신이 아니라 여길 법한 상황 아닌가. 두피와 팔다리는 태양열에 달아올라 화끈거렸고, 장딴지는 터져나갈 것 같았다. 옷은 이미 땀으로 다 젖어 있었다.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은 아니다. 오롯이 혼자만의 여행이 너무도 오랜만이었던지라 무척이나 설레었고, 그런 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계획했다. 무더운 일본으로 떠나긴 하지만 실내 활동 위주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다카마쓰 현 부근에 위치한 나오시마 섬에 방문하기로 했다. 미술관과 박물관이 몰려 있기에 더위도 피하고 예술품도 관람하고 여러모로 좋을 듯 싶었다. 동선과 이동수단까지 타임라인에 맞추어 완벽히 파악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얻어맞기 전까지는 완벽한 계획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만 타려던 배를 놓치고 만 것이다. 그렇게 ‘완벽한’ 계획은 시작도 못한 채 어그러지고 말았다. 다음 배를 기다렸으면 되었을 텐데, 그놈의 조바심이 문제였다. 짧은 일정인지라 1분 1초가 아쉬웠고, 결국 고민 끝에 나오시마 대신 또 다른 인근의 섬, 쇼도시마로 향하는 배에 탑승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보니 쇼도시마는 차마 걸어서는 돌아볼 수 없을 만큼 큰 섬이었다. 섬을 한 바퀴 도는 순환버스 역시 하루에 4대밖에 다니지 않을 정도로 배차 간격이 길었다. 결국 계획에 없었던 자전거를 빌려 간단하게라도 섬을 돌아보기로 했으나 이것이 또 한 번의 패착이었다. 지리도 모르고 아무런 배경지식도 없는 낯선 섬을 자전거로 이동하며 돌아보는 것은 예상보다도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고, 결국은 산골짜기에서 그만 길을 잃고 말았던 것.
 
그렇게 인적도 없는 타국의 산골짜기에 홀로 남게 되자 그만 눈물이 솟구쳤다. 자전거 반납 시간과 섬에서 육지로 나가는 마지막 배편을 맞추는 것조차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날은 덥고, 몸은 고되고, 이대로라면 여유로운 관광 및 휴식은커녕 국제미아가 될 판이었다. 조바심에 간만의 여행을 망쳐버리고 만 스스로가 그렇게 한심하고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냥 다음 배를 탈 걸, 아니었더라면 차라리 순환버스를 기다릴 걸, 아니 차라리 더운데 무리해서 여행을 오지 말걸. 뭐가 그렇게 급해서, 뭐가 그렇게 욕심이 나서. 굽이굽이 끝이 보이지 않는 산길을 자전거로 달리며 수없이 생각했다.
 
흥미로운 건 그렇게 길을 잃고 울며 헤매는 동안 마주한 어떤 풍경이, 그간 살면서 마주한 가장 아름다운 광경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다. 고요하게 떠 있는 섬들 사이로 바다가 해에 반사되어 반짝거리고 있었다. 오직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어떤 카메라로도 담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전에도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다시 마주하기 어려울 광경이 그곳에 있었다. 울다 말고 멈추어 서서 가만히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러는 사이 마음이 조금씩 진정되었고, 이후로 힘을 내어 침착하게 출발지점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에세이집인 <시드니>에서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있다고. 이 두 가지는 서로 등을 맞대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힘들겠지만 그것이 바로 세상의 이치라고 말이다. 돌아오는 길에도 머릿속에 남은 것은 오로지 그날뿐이었다. 사는 동안 어떤 고비의 모퉁이마다 계속해서 떠오를 것 같았던 그날의 기억. 조바심으로 인해 사서 한 고생과, 그것을 통해 마주했던 잊지 못할 풍경.
 
한승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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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범

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