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티메프 재발 방지책'…"정산주기 단축 신중해야"
티메프 사태 초래한 '규제 사각지대'
정산 기한 며칠로?…갈피 못 잡는 규제
"중소업체 어려워질 수도…자금 유용부터 막아야"
입력 : 2024-08-12 16:31:31 수정 : 2024-08-12 17:41:36
 
[뉴스토마토 김성은 기자] '제2의 티메프 사태'를 막기 위해 정부와 정치권이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업체에 대한 정산 기한을 도입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정산 기한에 대해서는 갈피를 못 잡고 있습니다. 정부는 대규모유통업자보다 짧은 수준으로 정산 기한을 설정하겠다고 공언한 상태입니다.
 
전자상거래법을 적용받는 이커머스 업체의 경우 법에서 정한 정산 기한이 없다는 '규제 사각지대'가 티몬·위메프의 대규모 미정산 사태 원인으로 지목됨에 따라 정산 기한을 법제화하려는 것입니다. 다만 전문가들은 정산 기한만 단축 도입하는 어설픈 규제로 중소 업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12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천준호 민주당 의원은 지난 2일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티몬, 위메프 등과 같은 통신판매중개자가 입점 판매자에게 판매대금을 정산하는 날을 구매 확정일로부터 7일 이내 또는 배송이 완료된 날로부터 10일 이내로 정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정산 지연 시 공정거래위원회가 정한 이율에 따라 이자를 지급하도록 했습니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은 정산 주기를 구매 확정일로부터 영업일 기준 5일 이내로 정하는, 이른바 '티메프 재발 방지법'을 발의했습니다. 정산 지연 기간에 대한 이자 지급과 더불어 금융회사가 판매대금을 별도 관리해 통신판매중개자가 중간에서 대금을 유용하는 일을 규제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통신판매중개자가 허가 또는 등록 취소·말소되거나 해산 결의, 파산선고 등을 받은 경우 별도 관리하는 판매대금을 판매자에게 우선 지급하도록 했습니다.
 
박정현 민주당 의원은 정산 기한을 구매 확정일로부터 30일 이내,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구매 확정일로부터 10일 이내의 가능한 짧은 기한을 정산 기한으로 한 티메프 재발 방지법을 각각 제안했습니다.
 
(인포그래픽=뉴스토마토)
 
현행법상 상품을 직접 판매하는 매출 1000억원 이상 또는 매장면적 3000㎡ 이상의 대규모유통업자에 적용하는 정산 기한은 40일에서 60일로 정해져 있습니다. 특약매입거래·위탁 상품은 판매마감일 기준 40일, 직매입 상품은 상품수령일 기준 60일 이내입니다. 하지만 전자상거래법을 적용받는 이커머스 업체에 대해서는 별다른 정산 기한 규제가 없습니다.
 
이 부분이 티메프 사태를 야기한 원인입니다. 티몬과 위메프의 모회사인 큐텐그룹이 이런 허술한 법망을 악용해 판매자에게 지급해야 할 대금을 유용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정부는 지난 7일 발표한 '위메프·티몬 사태 추가 대응방안 및 제도개선 방향'을 통해 이커머스 업체의 정산 기한을 도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대규모유통업자보다 짧은 수준으로, 구체적인 기한은 업계와 전문가 의견을 반영해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중소 업체에 '독' 될 수도"
 
전문가들은 정산 기한 도입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사태 수습을 위한 규제 도입에 집중한 나머지 정산 기한을 급하게 단축할 시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예를 들어 정산 기한을 최대 60일 이내라는 데드라인은 필요하지만 너무 짧은 정산 기한은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기존에 구축된 시스템이 무너져 일부 업체들은 피해를 볼 수 있고, 추후 판매자로부터 떼는 수수료를 늘릴 수도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판매자가 입점 플랫폼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있고, 플랫폼에 따라 제공하는 서비스는 각각 다르다. 정산 기한도 그중 하나라고 보면 된다"면서 "정부가 가이드라인은 정하되 시장 기능을 믿고 가야 하는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지난 5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앞에서 티몬 피해자 모임 회원들이 환불을 촉구하는 릴레이 우산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산 기한 단축보다 자금 유용을 막기 위한 확실한 안전장치 마련이 더욱 시급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커머스 플랫폼 업체는 물건값의 10%가량 혹은 그 미만의 수수료를 받아 회사를 운영하는데, 회사 운영이 빠듯한 중소 업체는 자금 흐름이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며 "결국 자금력이 뒷받침되는 대형 플랫폼 업체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그러면서 "티메프 사태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금 유용"이라며 "이 부분에 신경을 쓰고, 정산 주기 단축 도입은 시장 상황을 면밀히 파악한 후 이뤄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커머스업계가 티메프 사태로 인한 피해를 우려하는 가운데 자체적인 정산 주기 단축 현상도 포착됩니다. 11번가의 경우 지난 11일부터 열흘간 진행하는 프로모션에 참여하는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배송완료 다음날 정산금의 70%를 먼저 지급하고 구매확정일 다음날 나머지 30%를 정산하는 '11번가 안심정산'을 도입했습니다.
 
한 이커머스업체 관계자는 "플랫폼 사업은 신뢰를 기반으로 운영돼 왔다"면서 "티메프 사태로 플랫폼 사용에 대한 고객과 판매자의 불안감이 높아진 만큼 이를 불식시킬 수 있는 방안을 자체적으로 내놓는 추세"라고 말했습니다.
 
김성은 기자 kse5865@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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